“나도 자네처럼 옛 추억이
그리워서 이곳을 찾게 됐지. 벌써 1년이군. 어쩌면 더 됐을지도? 그때 내 모습이 지금 딱
자네 모습이었던 것 같아. 어쨌든 정원의 꽃은 전부 시들었네. 자네도
봐서 알겠지만 이 정원에 남은 건 선인장뿐이야. 정원사도 모두 사라졌지. 다른 정원에서 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남은 건 저놈인데
맨날 똑 같은 말만 반복하는 놈이야. 비록 인형이지만 이 정원을 관리하는 놈은 저놈이 확실하지.”
“저 인형이요? 이 정원을?”
“정원의 꽃은 정원사가 가꾼다네. 한때 이곳엔 정말 많은 꽃이 피었지만 이제 아무도 꽃을 심지 않아. 정원사가
없으니까. 우리는 항상 그들과 소통 했었는데… 그들은
늘 새로운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했어. 예쁜 꽃이 피었고, 우리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네. 자네가 가진 그 꽃도 그 중 하나겠지? 물론 자네는 씨앗을 받았을 거야.”
“네. 처음 여기에서 처음으로 받은 씨앗이에요. 처음엔
뭔지도 모르고 받았는데 갑자기 싹이 튼 거에요! 그땐 기분이 너무 좋고, 또 이곳 생활이 너무 즐거워서 정신 없이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갑자기 꽃이 폈죠.”
“정말 좋았겠군. 나는 내가 직접 키운 건 아니라서… 내겐 그럴 기회가 없었지. 자네가 참 부럽네.”
남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나름 사정이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정원이 변하기 시작한 건
아마 그날부터였어. 항상 우리들에게 나눠주던 꽃을 팔기 시작했네. 아, 물론 한번씩 나눠주기도 했어. 하지만 그 수가 점점 줄었고, 나중엔 더 이상 나눠주지 않았네. 우리들은 새로운 꽃을
갖기 위해서 돈을 지불해야 했어. 자네도 알다시피 꽃은 참 아름답지. 정원에는 많은 꽃이 있지만 자신이 가꾼 꽃은 하나지 않는가.”
“그렇죠. 그래서 이 꽃은 제게 가장 소중한 꽃이에요.”
“시간은 흘렀고, 사람들은 떠나갔어. 아직 조금 남아있지만 언젠간 다 떠나버릴지도
몰라.”
“저 방금 돌아왔는데 꽃도
피울 수가 없다니 슬프네요. 그런데 저 정원사는 꽃은 안 팔고 선인장은 파는 것 같던데 그건 무슨 소리죠?”
“아, 선인장. 꾸준히 팔고 있다네. 가격도
비싼 편이지만 많이 팔리는 편이지. 선인장에서도 꽃은 피거든. 물론
쉬운 일이 아니라서, 선인장을 산 사람 중 대부분이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가시에 찔리고 만다네.”
“이런… 정원은 이제 더 이상 정원이 아니네요. 사막 같아요.”
“그런 말은 수도 없이 들었네. 하지만 정원이 정원 같지 않더라도 이곳이 정원임은 분명해. 그것이
내가 이곳에 다시 왔고, 자네가 이곳에 온 이유가 아닌가?”
“듣고 보니 그렇네요.”
“한번 둘러보게. 꽃은 사라졌지만 정원 구조는 똑같으니까, 좋았던 옛 기억들을 되새길만한
것들이 반드시 있을 거야. 남아있는 사람들도 굉장히 좋은 분들이시지.
도움이 될걸 세.”
“정말 고마워요. 아니길 바라지만 떠나시는 거죠?”
모험가는 옅게 미소 지으며 남자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그리고 꽃을 하나 꺼내 남자의 손에 쥐어주었다. 남자는
이제 뭐냐는 눈빛을 보냈다.
“15주년 꽃이라네. 정원에서 마지막으로 나눠준 꽃이지. 자네 말대로
나는 이제 떠나. 복귀선물이라고 생각하게. 돌아온
것을 환영하네.”
둘은 헤어졌다. 남자는 정원 더 깊은 속으로 들어갔고, 남자가 보이지 않을 때쯤 모험가는 막 정원사 앞을 지나갔다. 긴
여정을 끝내고 마침내 정원을 떠나려고 한다.
“저희 정원을 방문에 해주셔
정말 감사 드립니다. 안녕히 가세요.”
모험가는 걸음을 멈췄다. 지금이라도 돌아설까? 돌아선다면
후회하지 않을까? 돌아서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까? 돌아섰을
때 다시 결심할 수 있을까?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했다. 그는 정원사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저희 정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자네가 정말로 인형이든, 아니면 인형인척 하는 거든 상관없어. 잘 들어. 오늘 나는 떠나지만, 다시 돌아온 사람이 있었어. 사람들은 계속 떠나가겠지만, 찾아오는 사람들도 분명이 있을 거야.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지도 몰라. 그게 내가 될 수도 있고, 내일 당장일 수도 있어. 그만큼 여긴 정말 소중한 곳 이였으니까. 그러니까 꽃을 다시 피워주게.”
“꽃은 다 시들었지만 선인장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판매 기간이 아닙니다.”
“향기가 진한 꽃 한 송이만
피워주게. 사람들이 다시 이곳을 찾을 수 있게. 길을
잃지 않고 정확히 찾아 올 수 있게.”
“지금은 선인장을 판매하는
기간이 아니기 때문에 다음 번에 이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곧 크리스마스야. 부탁하네.”
모험가는 돌아섰다. 그리고 사라졌다. 그는
도적이었다. 홀로 남은 정원사는 언제나
그랬듯 중얼거렸다.
“그렇습니까?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한 점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에 또 이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원사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은 턱 끝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땅 위를 적신 작은 량의 눈물은 매일 아침 정원을 밝히는 햇볕보다 몇 배는 따뜻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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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에
다시 어둠의전설을 시작해서 12월까지 모험가의 단편 소설을 연재 했습니다.
그 당시 어둠의전설은 운영이
멈춘 상태였고, 그 아쉬움을 이 '정원'에 담았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험이 나를 부른다."
- 모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