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가고일>
- 모험가 -
나는 악마다. 이마위로 솟아난 뿔, 거대한 날개, 강력한 손톱, 찬란하게 빛나는 회색피부는 나의 상징이다. 길게 솟은 나의 뿔은 힘을 나타내고, 펼친 날개가 하늘을 덮는다. 영혼마저 열려버릴 나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볼 자는 세상에 없으며, 나의 권능은 내 꼬리의 그림자조차 밟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게 나다.
차가운 어둠의 적막 속에서 뜨거운 불길이 요동치고 이승에서 가져온 미련과 슬픔과 아픔을 떼버리지 못한 채 고통 속에서 울부짖는 수많은
영혼들이 가득한 곳. 이곳은 지옥. 나는
이곳의 정상에 있는 자, 지옥을 다스리는 킹 가고일이다.
무료하다. 지루하다. 이곳은 그런
곳이다. 끊임없이 울어대는 영혼들의 울부짖음은 이제 너무 익숙하다. 하긴 오래 전부터 관심이 없었지. 오히려 관심을
가지는 게 이상한 거야. 내가 왜 하찮은 영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나는 지옥의 지배자가 아닌가. 이렇게 쓸데없는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지. 기억해버렸어. 나의
꿈을. 그래, 나는 분명 지옥을 평화롭게
다스리고 싶었다. 분명 그랬지. 아주 어린
시절의 꿈. 그때 그 야심. 생각났다. 나의 이름. 나는 메핏이였다.
베이비드라의뼈로 우려낸 사골국물은 정말 일품이였다. 순식간에 나는 성장했다. 작은 악마라고 무시 받았던 내가 진정한 악마로 거듭났고 제일먼저 모르윈을 때려눕혔다. 얼마나 통쾌했었나. 그날의 영광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지옥에 들어와 수없이 싸운 날들. 그리고
승리했던 나. 나는 언제나 승리했다. 딱
한번 빼고.
놈은 강했고 나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놈의 뿔과 날개는 나의 것보다 월등히 컸다. 나의 공격에도 놈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는 나의 이름을
물었고, 나는 알려주었다. 나는 기억도 못할 정도로 처참히
고통 받았고, 마침내 지옥 밖으로 던져졌다. 그는 모르윈의
형이었다.
그때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적어도 아직은 꿈을 꾸고 있었을
거야. 하지만 나는 희망을 발견했다. 그것을
얻은 나는 다시 지옥에 돌아가 놈과 싸웠고 승리했다. 하지만 가장 영광스럽던 그날 이후로 나의
삶은 멈췄다.
내 삶에 의미란 없다. 그저 나는 지옥을 지배한다. 지옥을
지배하며 누군가가 지배하게 하지 않는다. 어쩌면 모르윈이 도전해올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모르윈의 적이고 형을 죽인 원수니까. 하지만
괜찮다. 늘 그랬듯이 나는 언제나 승리한다. 딱
한번 맛본 패배도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내 손에 쥔 작살은 나를 더 이상 패배하게 하지 않는다.
오늘도 쓸데없는 생각을 해버렸다. 왜 또 그런 걸까.
“…아”
이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나는 끊임없이 생각했을 것이다. 아까부터 거슬리는 이 목소리는
뭘까.
“…니아.”
이것은 절규가 아니다.
“…모니아.”
모니아? 그래. 모르윈의 형 이였지. 모니아였어. 모르윈이 형을 찾고 있는건가? 아니, 모르윈은 지옥에 없을 텐데... 그렇다면
어디서 들리는 목소리지?
“소모니아!”
이승의 햇살은 따뜻하다. 녹색 풀과 나무들이 무성하고 생명이 가득하다. 이곳도 그렇군. 약간 다르긴 하지만… 인간이라는 종족이 원래 이렇게 많았었나? 이곳은
아슬론이 아니야. 이곳이 어디지? 그보다
도대체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싸늘해. 적응되지
않아. 이 느낌 정말 오랜만이야.
“어? 킹 가고일이다!”
“오! 가고일!”
인간들이 내 주변으로 모여든다. 그렇다. 내가
바로 지옥의 지배자 킹 가고일 메핏이다!
“매드소울!”
크허허헉! 뭐지!
“달마신공!”
크와아악! 인간들이 갑자기 날 공격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감히 나를! 이 킹
가고일을!!!
“암살격!”
“구양신공!”
으아아악! 너무 강력해! 내가
이렇게 당하다니…! 고작 인간 따위에게!!!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죽이지 말구, 힐 좀 주세요. ㅋㅋㅋ”
“홀리쿠라노!”
갑자기 힘이 솟아난다. 후후후. 쉽게
쓰러질 내가 아니지. 각오하라 인간들이여! 내의
무서움을 보여주마! 이 작살로 너희들의 목숨을 취해주마! 먼저
가장 날 건든 너부터!
온 힘을 다해 나는 인간전사에게 작살을 찔렀다. 너를 지옥의 불구덩이에 천년만년 태워주리라!
“ㅋㅋㅋㅋㅋㅋ이게 날 치네?”
“ㅋㅋㅋㅋㅋㅋ 죽여버리세요.”
뭐지! 뭐지! 어떻게 된 거지! 끄떡도 하지 않아! 말도 안되! 분명 킹 가고일도 한번에 꿰뚫은 작살이다! 그런데
이 인간에게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다니!
작살
레벨: 11
내구도: 100000/100000
무게: 1
공격력(S): 13m13
공격력(L): 153m210
(작살은 서쪽대륙에서 강한
힘을 발휘한다.)
말도 안돼! 말도 안돼! 이건
말도 안 된다고!
“크래셔!”
시야를 가득 메운 칼날 바람은 순식간에 나를 에워싼다. 하늘을 가리는 건 나의 날개뿐만은
아니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험이 나를 부른다.”
- 모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