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 모험가 -
아슬론 마을의 샘을 기억하시나요? 그렇다면 샘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아시겠군요. 두 모자는 항상 서로를 그리워하며 살았답니다. 연락이라곤 간간히 찾아오는 방문객의 도움으로 간략한 안부와 간식거리를 전달하는 게 전부였어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샘에게 어머니의 소식을 전해주던 방문객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더니 이제는 거의 사라져버렸습니다. 샘은
걱정이 되었어요. 어머니의 안부가 너무 궁금했지요. 혹시
잘못된 게 아닐까? 편찮으신 게 아닐지 불안감은 계속 커지고 결국 샘은 귀향을 다짐했습니다. 그 동안 조금씩 저축해둔 돈을 몽땅 털어서 배표와 귀향 길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했지요. 그리고 어머니께 드릴 선물도 사고, 그래 봤자 한 개 뿐인
가방의 지퍼를 잠근 것으로 어머니를 만날 준비가 끝났어요.
가방을 메고 항구에 간 샘은 들뜸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어요. 조금만 더 있으면 배를
타고 어머니가 계시는 대륙에 갈 수가 있으니까요. 어쩌면 샘도 뛰쳐나가고 싶었을 지도 모릅니다. 늘 반복되는 삶은 지루하지요.
“마이소시아는 어떤 곳일까?”
어린 시절 어머니와 헤어져 아슬론에 오게 된 샘에게는 마이소시아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었어요. 이번
귀향 길은 샘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모험과도 같았지요. 문득 샘은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안부를 전해준 사람이 떠올랐어요. 버섯모자와 귀마개를 차고 다니는 그는 샘에게 말했지요.
‘모험이 나를 부른다.’
어쩌면 이 말이 샘이 귀향을 결심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샘의 마음에는 굉장히 와 닿는 말이었거든요. 샘은 무심코 그 말을 모방했습니다.
“엄마가 나를 부른다.”
어쩜 이렇게 끔찍한 말을 할 수가 있는 거지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좀더 의자에 앉아 뻐기고 싶지 않으신가요. 하지만
그러시면 안됩니다. 배가 곧 출발하거든요. 샘은
서둘러 배를 탔습니다. 아쉽지만 아슬론과는 잠시만 안녕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도 잠시 곧 육지가 보일 겁니다. 이 배는 쾌속선이니까요. 바다위로 뛰어오르는 돌고래를 구경할 틈도 없이 항해가 끝날 겁니다. 물론
그 전에 끝날 수도 있고요. 예를 들면 오랜 항해로 쌓인 피로가 선장을 잠재우고 전방에 솟은
암초를 정면으로 들이받거나, 바다괴물의 습격을 받는다면 말이지요. 바다괴물은 매우 무섭습니다. 샘 같은 경우는 바다괴물의
공격 한번이면 바로 저승길이지요. 전투능력이라곤 하나도 없는 그에게는 도망만이 살길입니다. 하지만 배는 좁았고 결국 샘은 죽고 말았습니다. 온몸이
시뻘건 죽음의 신 뮤레칸을 볼 수 있었죠.
“크하하하하하!”
천지를 울리는 뮤레칸의 웃음소리.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뮤레칸은 소문난 도둑놈입니다. 샘은
어머니께 드릴 선물을 조금 빼앗겼습니다. 하지만 샘은 괜찮았습니다. 죽음 따윈 두렵지 않았지요. 샘이 준비한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자신이고, 그에겐 ‘리턴
스피릿’이 있기 때문입니다. 샘은 다시 배로 돌아갔습니다. 배가
마침 항구에 도착했지요.
어머니의 집은 남의 우드랜드 20존입니다. 샘의
기억이 맞다면 남의 우드랜드 20존 까지는 매우 멀고도 험한 길 입니다. 또 위험하지요. 샘은 어차피 뮤레칸에게 빼앗길
선물 차라리 텔레포트 깃털을 샀으면 좋았을걸, 괜히 아쉬웠어요.
“자, 서두르자!”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비록 맨티스에게 죽고 늑대에게 물리며, 고블린의 도끼에 찍히고 서럽게 죽음을 반복했지만 리턴 스피릿 덕분에 한발한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버섯괴물은 모험이 나를 부른다던 방문객을 떠오르게 해주었고 날개 달린 요정은 오래 전 방문객의 손을
잡고 도망친 그년과 매우 닮았습니다. 반짝이는 불빛에 홀려 다시 깨어났을 때 샘은 외딴 집
앞에 서있었습니다.
네.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군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샘은 선뜻 손잡이를 잡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자연스럽게 말할까? 언제는 어머니와
말 한마디나 해보았나? 들어가자마자 꽉 끌어안고 울어버릴까? 이런
만남은 일전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어렵습니다. 일단
부딪치면 될 텐데 우리는 왜 시작 앞에서 항상 망설일까요.
똑똑똑!
결국 저질렀습니다. 도망갈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입니다. 샘은 터질 것만 같은 감정을 도저히 조절할 수 없었습니다. 오만
가지 생각이 스쳐갑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는군요. 만남이 두려운 건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가만히
둘 수 없는 손 때문에 빼앗긴 가방이 아쉽습니다. 무슨 일인지 주변에 몬스터도 없습니다. 다 어디로 갔을까요. 항상 필요한 때 보이지 않는
법이지요.
문이 열렸습니다.
생기를 잃은 눈동자 아래 겹겹이 새겨진 주름위로 흘러내리던 눈물은 이제는 다 말라버린 채 수분기 없이 갈라진 쭈글쭈글한 어머니의 얼굴엔
온갖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우드랜드 20존에
사는 사람치고 근심 없는 사람이 어딧겠지만 말이지요. 그보다 더 큰 건 역시 아들에 대한 걱정이겠지요. 아마 방금 까지도 아들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뭘 하겠어요? 가만히 생각하다가 그리움 속에 간직한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곤 어울리지
않는 웃음을 지었겠지요. 그리고 오랜만에 찾아온 방문객에게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 방문객이 아들일 줄은 상상도 못했고요. 어머니는
기억합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서 훌쩍 커버렸다고 해도 잊지 못합니다. 손은 입을 가리고 말랐던 눈물은 다시 흘러내립니다. 무슨
말이 필요하지요? 둘은 꼭 껴안았습니다.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여러분도 늦기 전에 얼른 뛰어가세요. 어머니의 부름은 끔찍한 게 확실하지만 늦게 가면
화낸답니다. 코드라도 뽑으면 어쩌려고요?
“엄마 배고파요. 밥 주세요.”
집 나가면 가장 생각나는 건 역시 엄마 다음으로 집밥 아닐까요? 샘은 항상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이 먹고 싶었습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배
많이 고프지? 금방 차려줄게. 뭐 먹고
싶니?”
“아무거나요.”
어머니는 샘이 샌드위치를 좋아하는걸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배고픈 아들을 위해 서둘러
주방에 들어가 재료를 꺼내고 정성스럽게 샌드위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완성된 속을 꽉꽉 채운
샌드위치를 접시에 담아 기다리고 있을 아들에게 가져갔지요.
“오래 기다렸지?”
대답이 없었습니다. 대답뿐 아니라 아들의 모습까지도 사라졌지요. 무슨 일일까요. 설마 우드랜드 20존에서 샘이 납치를 당했나요? 생각해보면 그것이
가장 일리 있는 말이지만요. 어머니의 얼굴에 다시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그녀의 손에는 아들이 남긴 쪽지가 들려 있군요.
“아니다, 내가 미안하다… 고맙다, 샘...”
어머니는 주저앉았습니다. 그녀의 손을 떠난 쪽지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리턴 스피릿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몸이 사라져가는군요.
꼭 다시 오겠습니다.
사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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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험이 나를 부른다.”
- 모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