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잤을까? 눈을 뜨지 않고 한참이나 가만히 누워 있었다.
끼익--
내 귀로 방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뚜벅- 뚜벅- 뚜벅-
그리곤 문 앞에서 부터 나를 향한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리안?"
난 살며시 눈을 떠 보았다.
한참이나 눈을 안떠서인지 바로 앞이 보이진 않았다. 조금 시간을 기다리자 점점 시야가
확보되어갔다. 그리고 내 앞에 서 있는 그녀가 보였다.
"리리아..."
"말하지말아요."
그녀는 그 말을 내뱉고 조용히 나로부터 반쯤 돌아서 오른편에 있는 작은 창가로 다가갔다. 그리곤 창문을 활짝 열었다. 곧 차가운 아침 바람이 방안으로 들어닥쳤다. 그녀는 조용히 그 바람을 쐬더니 문득 뒤돌아서 창가에 살짝 기대어 앉아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카류리안 당신을 원망 하진 않아요. 절 원치 안한건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래도 전 당신이 제 것이 되길 원했어요. 그래서...그래서... 미안해요."
"대체 네가 왜 내게 미안하다는건데!!!"
나는 순간 격분하여 그녀에게 소리쳤다. 어느세 내 두 눈가에는 물방울이 고이기 시작했다.
"싫어! 싫다고!!! 난 네가 싫어!!! 그런데 왜 넌 날 좋아하는거지?!"
"글쎄요... 그냥 당신이 좋았어요.. 하지만 이젠 괜찮아요. 만약 제가 그 날 살아났다면 당신과 아무런 의미도 없는 약식을 올리고 평생을 의미 없이 살아 갔겠죠. 그런건 저도 원치 않아요. 이젠 절 잊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해줘요."
"왜 이렇게까지.. 크흑... 날 위로해주는거야... 난 정말 못된 녀석이잖아.."
"고마워요."
그 말과 함께 그녀는 마치 모래가 바람에 휘날리듯 사라져버렸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가많이 누워 창가를 쳐다 보았다. 아무것도 없지만 난 시선을 떨치지 못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창가로 보이는 바깥 세상은 어느세 껌껌해져 있었고, 밤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과 달이 떠있었다. 난 집을 나서다 문득 달을 바라보았다. 달 주위로 회색 구름들이 걸쳐져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달이 하늘에서 사라져 버렸다. 곧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역시나... 우산이 어디 있지.."
우산을 쓰고 다시 집을 나섰다.
쏴아아아---
마음마저 차갑게 얼려버릴듯한 빗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집을 나서서 내가 간 곳은 화려한 꽃밭이다. 거희 모든 꽃들이 비에 젖어 빛을 잃어버렸지만 그 중에서도 유난히 빛나고 하얀 꽃이 보였다.
'아이리스'
그 꽃의 이름이다. 난 그 꽃을 한 아름 꺾어다가 손에쥐고 꽃밭을 벗어나 어느 이름 모를 절벽으로 갔다. 그 곳엔 작은 둔덕이 있었다. 난 그 둔덕앞에 꺾어온 꽃을 내려노았다.
"칸이 시여 아름다웠던 그녈 영원토록 변치 않게 해주소서.."
나의 주문과 같은 기도가 끝나자 어디선가로 부터 하얀 깃털 하나가 날아와 그녀의 무덤에 살며시 내려 앉았다.
"감사합니다."
번쩍-
"하아-하아- 꿈이었나?"
땀으로 흠뻑 젖어버린 옷들을 보며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몸을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몸은 완전히 회복되어 있는건 물론이고 느낌은 평상시보다 더욱 더 상쾌하고 말끔했다.
"제가 치료 해드렸습다. 아.. 그런 시선은 골란합니다. 전 우연히 이곳을 지나치다가 곧 숨이 멎어버릴듯한 사람을 지나치기가 뭣해서 구해드린것 뿐이니.."
"아.. 감사합니다.."
난 그 남성직자의 말을 듣고 그를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는 아름다운 갈색빛의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길렀고 눈동자는 시원한 푸른 바다를 연상시키듯 새 파란 눈동자에 매우 흰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아름다우신대요?"
"네? 하하하.... 남자로부터 그런 말을 듣는건 조금 곤란하네요."
"전 카류리안이라고 합니다.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분의 성함을 여쭤 봐도 괜찮겠습니까?"
"아, 물론이죠. 저는 '레퀴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아'님을 모시는 '세르비아' 길드에 몸을 담고 있죠."
그는 약간 즐거운듯 내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세르비아 길드라... 언젠가 들어 본 기억이 있는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나네요.."
"괜찮습니다. 아, 그전에 여쭤 볼것이 있습니다. 무슨 일로 이런 곳에 혼자 쓰러져 있었던 겄입니까?"
"아...죄송하지만 당신에게는 말 할수 없네요."
"아 실례라면 죄송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하실 일이 있습니까?"
순간 난 그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순식간에 우울해진 마음을 달레며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 보며 말했다.
"없습니다. 이제는요... 그냥 정처 없이 여기 저기 돌아다녀 보려고 생각중입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혹시 제가 당신의 발길에 동참해도 괜찮겠습니까?"
"네??"
난 순간 그의 갑작스런 제안에 당황하여 그를 쳐다 보았다. 그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코 나빠 보이진 않았다. 그가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조금씩 들 무렵 그가 또 다시 말했다.
"이래뵈도 전 상당한 실력자랍니다. 회복마법은 벌써 마스터 단계에 다달았고 나머지 축복, 디스펠 등 신선계열 마법도 중상급 이상이랍니다. 그러니까 당신에게 도움이 되면 됬지 절대 짐은 되지 않을겁니다."
그는 확신하듯이 당찬 눈빛으로 나를 보며 소리쳤다.
"좋습니다. 당신의 동행을 허락 하죠. 그 전에 '그륩' 계약을 해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 드립니다."
그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도 그의 웃음 띈 얼굴을 보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그가 갑자기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앗! 벌써 해가 지려 하는군요!"
"그렇군요."
"아니, 왜 그렇게 태평하신 겁니까! 어서 마을을 찾으셔야죠!"
"레퀴엠님이라고 하셨죠? 마을은 뒤에 있습니다만... 저는 방금 일어나서 주위 상황을 잘 모른다지만 당신은 뭔가요?"
그는 살며시 뒤를 돌아보았다. 표지판을 봤을거다.
'밀레스에 오신건 환엽합니다.
앞으로 남은 거리는 1킬로미터 입니다.
안 말해도 아시겠지만.....'
"하하하. 어서 가시죠."
그는 삐질땀을 흘리며 어색한 미소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