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레칸의 심복으로써 죽은 이를 다시 살리는 능력을 가졌고
영혼을 바치면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아리아칸을 혹시 아십니까?"
늘 적막하기만 한 오렌 마을 광장에서 한 사나이가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칠 법도 하지만 갑자기 별안간 멈춰 서서
남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불멸..그리고 소원이라는 단어였다.
각 마을의 이권 다툼을 위한 크고 작은 전쟁으로 인해 사상자가 최대치로 발생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죽어도 다시 살 수 있고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다는 희망의 이야기는
평소 무뚝뚝하다고 소문이 난 오렌 마을의 주민들에게도 충분히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였다.
"영혼을 바치면 죽는 거 아니오? 죽으면 소원이 무슨 소용이람?"
한 중년의 남성이 혼자 주절거리며 핵심을 짚은 질문을 던진다.
연설을 하던 사나이는 확**를 내려놓고 그 중년의 남성에게로 다가간다.
사나이는 웃음기 하나 없이 너무 진지한 표정이었다.
"영혼을 바쳐서라도 이룰 수 있는 소원.. 그런 거 하나씩 생기지 않겠습니까?"
사나이의 사뭇 진지한 표정과 입에서 나오는 말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지만
역시나 소원을 이루기 전 선행과제인 영혼을 바친다는 말은 다들 깨름칙했나 보다.
광장에 삼삼오오 모여있던 주민들은 고개를 저으며 각자 흩어지기 시작한다.
"여러분! 아리아칸을 신봉해야 합니다. 무능력한 인간은 나약하고 초라합니다!"
사나이의 연설이 다시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오렌 호위병들이 뛰어온다.
"아이씨. 이 사람 또 여기서 이러고 있네"
"이거 놔라! 마이소시아 국민들도 이제는 알 권리가 있다!"
저항하는 사나이의 눈앞에 펄럭이는 망토..금장 갑주를 입고 있는 한 사내가 멈춰 섰다.
그의 이름은, 오렌 국왕 내외의 하나뿐인 아들이자 훗날 오렌을 이끌어갈 리더였던
전사 제임스였다..
"쯧쯔, 세상이 힘드니깐 이제 아리아칸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다니..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해서 거짓된 선동을 믿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생겨나질 않도록
노력해야겠구먼"
제임스는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의 자식이었고 그런 배경이 어색하지 않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과 총명함으로 똘똘 뭉쳐진 마이소시아의 기대주였다.
그렇기에 어려운 세상을 도피하려 아리아칸을 신봉하는 사람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었는지 모른다.
제임스는 오렌 국왕의 저택으로 돌아가 저녁 식사를 하며 대수롭지 않게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낸다.
"아버지, 오늘 그 아리아칸을 신봉하는 정신 나간 사내가 또 나타났어요"
제임스의 맞은편에 앉아 앤트 자이언트의 몸통으로 얇게 슬라이스 썬 고기를 포크로
집어올리던 국왕 치토스는 멈칫하며 제임스를 바라본다.
"또 말이냐? 어허..그 자 아무래도 혼이 좀 나야겠구나"
"에이~ 제가 잘 돌려보냈어요, 아버지는 염려 마세요"
"그래? 뭐 너도 훗날 이 오렌을 다스리려면 스스로의 결정권은 인정받아야지,
잘 했다. 내 아들 제임스"
언제나 국왕이었던 아버지 치토스의 인자한 칭찬을 들을 때면 제임스는
입이 귀에까지 올라가서 히죽거리는 웃음을 애써 억누르느라 힘겨웠다.
과거에도 자상한 아버지의 칭찬에 기쁜 나머지 큰 소리로 웃음을 보였다가
따뜻했던 칭찬이 곧 경박스럽다며 핀잔으로 바뀌어서 날아왔던 쓰디쓴 경험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부자간의 꿀이 떨어지는 식사 자리에서 그런 부자를 바라보며 어머니는
아무런 말 없이 그저 미소 지으며 자리를 함께 했다.
오렌은 영원하리라, 국왕을 따르는 백성들과 내실까지 탄탄한 오렌 국왕 치토스의
저택에는 행복한 웃음과 희망 가득한 행복의 내음이 밖에까지 풍겨져 나온다.
하지만 냄새가 너무 짙어 신이 그들을 질투라도 한걸까?
오렌 선착장에서 울려퍼지는 외마디 비명소리와 그런 선원을 짓밟고
배에서 내리는 검은 그림자들이 서서히 오렌마을로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