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맞이하는 저녁 식사 시간이 오늘은 어쩐 일에서인지 침묵만이 흐른다.
정적을 깨트리고자 밝은 얼굴로 먼저 입을 여는 것은 치토스의 아내이자
제임스의 어머니였던 마르시카였다.
"당신. 얼굴이 많이 상했어요. 많이 힘들죠?"
"허허, 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느라 대화를 잊었구려"
"아니에요. 마을 일이라는 게 쉬운 것만은 아니지요"
치토스가 멋쩍게 웃음을 지으니 제임스도 입을 열었다.
"아버지. 오늘 그 아리아칸을 신봉하는 작자가 또 나타났어요!"
"음 제임스. 그래서 어떻게 처리했지?"
"마을 밖으로 내쫓으려다가 지하 감옥으로 가둬놨어요!"
"잘했다. 제임스. 하지만 감옥으로 무작정 가두기 전에 대화는 한번 해** 그랬니?"
"에...에?"
제임스는 당황스러웠다.
분명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칭찬을 해주리라 믿었거늘
아버지인 치토스는 차분하게 자신에게 또 다른 조언을 한다.
"하지만..아버지.. 저도 곧 이 오렌을 책임질 군주이니..저에게도 선택권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제임스는 떨리는 입술로 치토스에게 항변한다.
하지만 제임스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치토스는 말했다.
"너의 선택을 존중한다. 다만 권력을 남용하는 건 리더가 할 짓이 아니란다."
"제가 한 행동이 권력 남용인가요? 그건 저의 결단입니다!"
"고양이가 쥐를 쫓을 때도 도망을 칠 수 있는 자리를 봐가며 쫓는단다.
아리아칸을 신봉하는 타인이 괘씸해서 혼쭐을 내주고 싶긴 하지만
그와의 대화가 이루어진 뒤에 판단을 해도 늦지 않았다는 걸 말하는 거란다."
"저는...!"
억양이 조금씩 높아지는 제임스를 보며 어머니 마르시카는 저지를 하고 나선다.
"제임스. 오늘은 먼저 들어가서 쉬려무나. 내일 다시 이야기를 해보는 게 어떻겠니?"
"알겠습니다...."
제임스는 부모님에게 서운한 마음을 애써 눌러 담고는 밖으로 나와버린다.
오늘만큼은 자신의 휘황찬란한 방에 들어가서 평온한 밤을 보내기가 어려울듯하여
결국 낮에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선착장으로 다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터벅
터벅
터벅
억울하고 한편으론 납득이 되기에 자신이 바보가 돼버린 듯한 느낌으로
걷던 제임스는 선착장에 도착을 했고, 출렁거리는 바닷가에서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는다.
그곳이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끔찍한 장소였음을 망각한 채 털썩 주저앉아서 말이다.
쾅!
잠시 앉아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던 제임스의 등 뒤로, 크고 무거운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제임스는 놀라 제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저 멀리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제임스는 불길한 마음에 다시 저택으로 있는 힘껏 달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