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달려 도착한 오렌 마을의 한 민가.
제임스는 민가 창고에 숨어 바들바들 몸을 떨고 있었다.
맞서 싸우려고는 했지만 제임스가 목격한 살육 현장은
전의를 그만 상실해 버릴 수밖에 없는 공포 그 자체였다.
제임스는 이 모든 것이 제발 꿈이길 바라면서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다시 밖으로 뛰쳐나가 아버지인 치토스와 어머니 마르시카를
구해야만 한다고 머리에서 외치고는 있지만 풀려버린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조금씩 시간이 흘러 민가의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는 새들은 지저귀며 아침을 맞이했고 평소 오렌 마을의
주민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들로 웅성거리는 아침이 찾아온다.
제임스는 잠을 이루지 못해 시뻘게진 눈을 부릅뜨고 민가의 문을 열었다.
설령 이 문을 열어 마주하는 게 어제의 그 해적들이라도 싸우다 죽기로 마음먹고 말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칠흑의 어둠에서 찾아온 공포는 곧 아침에 찾아온 햇살로
용기로 치환되어 제임스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끼이이익
문을 열고 제임스가 마주한 건 메데니아 갑주를 입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이였다.
그들 중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한 사내가 제임스에게 다가와서 조심스레 묻는다.
"괜찮으십니까?"
"당신은...?"
"아 안심하십시오. 저는 메데니아 군 소속 프랭크라고 합니다.
어제 오렌에서의 살인사건으로 인하여 국왕 치토스님이 메데니아에 서신을 보냈습니다.
오렌을 도우러 왔더니 해적 세 놈에게 마을이 쑥대밭이 되었더군요"
"아...감사합니다...저 저희 아버지와..어머니를 찾아야해요.."
"아 예. 지금 사망 인원을 파악하는 중입니다. 저 혹시 오렌 마을의 주민이시라면
제임스라는 왕자님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국왕 내외가 현재 사망을 하셨으므로 이걸 알려야 하는데 어디에도 보이지가 않습니다"
"제가...제가...바로 제임스입니다..."
"예?"
제임스의 말에 메데니아 사내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이내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제임스에게 묻는다.
"당신은...아니..제임스 님이 맞다면..어째서 이런 곳에 숨어계셨나요?"
"저는..그냥..부모님이...도망치라고 하셔서..."
"지금 치토스님과 마르시카님은 영면에 드셨습니다.
그런데 아들인 당신은... 흠... 여기까지만 이야기 하죠.
일단 충격이 크실테니.."
"저희 부모님은...돌아가신건가요?"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해적들이 워낙 해협에서 강한 녀석들이여서
아무래도 상대하는 게 참 버거웠을지 모릅니다"
"그렇군요...마을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아닙니다. 사내라면 모름지기 필요한 곳에 힘을 써야 하지요"
사내는 마치 제임스가 들으라는 듯이 강한 어투로 이야기를 하곤 돌아선다.
"전 이만 공무가 바빠서 일 처리를 하겠습니다.
제임스 님은 마음을 추스르시고 마을 재건을 위해서 힘써주세요"
"네..."
저택으로 돌아가는 제임스는 곳곳에 튀어있는 핏자국을 보며 실의에 빠진다.
부모님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돌아가신 사실도 감당키 어려운데
자신의 마을이자 훗날 자신이 책임져야 할 마을 또한 초토화가 되어있었으니 말이다.
저택에 돌아오니 메데니아 군이 진을 치고 제임스를 맞이한다.
본인이 제임스라는 걸 밝히고서야 메데니아 군은 길을 터주었고
자신의 가족이 없는 공허한 저택에 돌아온 제임스는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린다.
"나 때문에....내가...내가 조금만 더 용기가 있었다면....내가...."
가슴이 미어지는듯하다.
살아오며 이렇게까지 가슴이 찢길 듯 아파본 적이 또 있었을까?
응어리진 가슴 안의 울분을 한껏 토해내고 나니 조금씩 진정이 되기 시작했다.
곧 저택의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쿵
쿵
쿵
"제임스 님. 아까 인사드린 프랭크입니다.
오렌 마을을 침공한 안톤.쥰.오노 해적 세 명을 포박하였습니다.
처분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