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황찬란한 보석방에서 잠시 할 말을 잃은 세자로는 머메이드와 보상 상자를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그는 몰아치는 파도처럼 쿵쿵거리는 심장의 소리를 머메이드에게 들킬까봐 조마조마 하지만
최대한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머메이드에게 묻는다.
"이 보상을 위해서 난 지금까지 물의 신전을 활보했어.
머메이드. 앞으로도 내가 고생하지 않고 이 보상방에 당도할수 있을까?"
"물론이죠. 당신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준다면요. 마이소시아의 그 아름다운 광경을 말이에요"
머메이드의 요구는 너무 단순한 이야기였다.
세자로는 곧 보상 상자를 이리 휘젓고 저리 휘젓고 다니면서 화려한 귀걸이부터 블루오피온의 등껍질 챰릴리까지
모조리 자신의 가방에 집어넣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는 돌아가며 머메이드에게 말한다.
"기대하라구. 이런 약속된 보상 앞에서 내 이야기는 언제나 지속될테니깐"
그 날 이후로 세자로는 물의 신전에서 머메이드에게 마이소시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이야기는 무척 단순했고 지루할법한 이야기였지만 머메이드에겐 모든게 신기했고
머메이드는 점점 마이소시아 .. 용사들의 삶에 동경을 품으며 자신도 물의 신전에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한정적인 삶과 시스템이라는 제약이 자신의 발목을 묶는 삶에서 탈피를 하고 싶었지만
머메이드에게 기나긴 암흑을 탈출할수있는 동앗줄은 지금껏 없었다.
그런 머메이드에게 세자로는 동앗줄이자 유일한 탈출구라고 머메이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말이지. 또 무슨일이 있었냐면"
"아니요. 세자로. 이젠 괜찮아요. 이야기를 듣고 상상하는건 지쳤어요"
"어!? 어.. 뭐 그렇다면 이제 슬슬 보상방으로.."
"그런 아이템들보다 더 큰 거래를 하고싶은데 괜찮나요?"
"더 큰 거래라니?"
눈이 휘둥그레해진 세자로는 방금전까지 열심히 이야기를 하며 취하던 손의 제스처까지 멈추고
머메이드의 다음 거래 내용에 온갖 정신을 몰두한다.
지금 보상방으로의 수고로움 없이 워프하는것도 세자로에겐 과분했으며 특혜였는데
이 바보같은 물고기 몬스터는 또 자신에게 크나큰 이익을 가져다줄 멍청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세자로. 당신은 물의 신전을 거느리는 왕이 되고 싶은 생각없나요?"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에요. 이 곳을 관장하여 용사들에게 입장권이란 명목으로 금전을 받으며 왕으로 군림하는 삶"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은 세자로는 웃음기 가득한 표정이 사라졌다.
커다란 금은보화. 블랙굴의 갑주, 혹은 암흑의 기운이 감도는 목걸이나 생명의 기운이 감도는
그런 목걸이가 자신에게 다가왔다고 생각했지만 머메이드가 이야기하는 그 기회란 너무나 뜬금없고
또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는 퉁명스럽게 반응하지않고 머메이드의 말을 경청해주며 성심성의껏 답변해주었다.
"그런게 가능할리 없잖아. 이 시스템이 어떻게 바뀔수 있겠어"
"가능해요. 절대자 .. 운영진이 심어놓은 나의 코드 맵핑을 이용하면요"
말이 되지않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세자로는 귀가 열렸다.
생전 처음 드는 코드며 맵핑이며 .. 어쩌면 절대자가 npc에게 만큼은
그런 소소하지만 또 광대한 권한을 심어줄 수 있을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수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해지니
세자로는 처음 보상방을 발견했던 그 날의 모습처럼 또 심장이 쿵쿵 거리기 시작했다.
"그럼 내가 이 물의신전 모든걸 관리하는거야? 그럼 너는 내 부하가 되는거고?"
"그래요. 단 조건이 있어요. 당신을 잠시 나의 모습. 즉 머메이드로 바꿔놓을께요"
"그래야하는 이유가 있어?"
"머메이드로 바뀌어 몬스터인척 닷새를 참아내야해요. 이 세계관에 유일한 치명적인 버그랍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거지?"
"당신은 곧 물의신전 관리자 라는 시스템 권한 부여를 받을테고 곧 당신은 이곳의 주인이 되는거에요"
세자로는 특출나게 잘나지도 않았고 가진게 많은 부호도 아니였다.
그저 근근히 아이템을 파밍하여 상점가에 경매를 하며 그 돈으로 하루하루를 벌어먹는 그런 이였다.
그런 그가 이 세계관 내에 한 던전을 수호하는 관리자가 된다면
그것은 세자로에게 크나큰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남자들은 늘 정상에 오르고 싶어하는 야망이 있듯 세자로 또한 정상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말을 하는 머메이드를 만나 이런 기회를 잡은 자신이 그저 천운의 사나이라고 합리화한다.
하지만 곧 그에게 의문점이 하나 들었다.
왜 하필? 머메이드는 나를 이곳의 왕으로 만드려 하는거지?
의문점에 다시 웃음기가 사라지자 머메이드는 기다렸다는듯 이야기한다.
"당신을 왕으로 만드려하는 이유가 궁금하죠?"
"어, 이제 속마음도 읽네"
"간단해요. 난 당신과 함께 하고 싶어요"
"뭐? 아니 그렇게 갑자기 급발진을 하면 나더러 참.. 허 참 .. 하하"
싫지는 않은 세자로였다.
머메이드가 몬스터로만 느껴지던 세자로였지만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는 머메이드의 모습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니 꽤 아름답게는 생겼다.
그리고 위에는 인간.. 음 하여간 세자로는 머메이드의 요구에 응하기로 하였고
어쩐일에서인지 머메이드의 마법으로 세자로는 머메이드와 똑같은 모습이 된다.
닷새가 흐르고
머메이드로 변한 세자로는 아침에 일어나니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그저 웅웅 거리는 신음소리만 새어나올뿐이였다.
그러고보니 습기없는 방에서 자고 일어났을떄 목이 갈라져 아픈것처럼 목 부위가 아파온다.
"웅...웅...응.."
신음을 하며 일어난 머메이드..아니 세자로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바로 자신의 앞에 자기 자신의 모습이 서있고 세오gm 이라는 이름이 머리 위 떠있는 캐릭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게 아닌가?
자기자신의 모습을 한 그 형상은 세오gm에게 말한다.
"운영자님. 이 머메이드 몹 버그인가봐요. 노래를 못해요. 그리고 보상방까지 그냥 워프되네요"
"치명적인 오류군요. 죄송합니다. 세자로 용사님. 금방 시정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둘의 대화가 끝나고 세오gm이 사라져버리자 이제 자신의 형상을 한 모습과 머메이드로 변한 세자로
단 둘이 마주하고 섰다.
"세자로. 머메이드로 변한 모습 참 멋지네요"
"웅...웅..웅! (이봐. 이게 무슨일이야. 운영자는 갑자기 또 뭐고?)"
"미안해요. 당신을 속이려 한건 아닌데. 속여버렸네요"
"웅..웅..웅! (속이다니?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고!)"
"당신은 앞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할꺼에요. 내가 성대를 끊어놨으니깐요"
"웅..웅..웅! (이런 **..나를 속이다니..몬스터 주제에)"
"당신은 내 노래에 현혹되지 않는다고 그랬죠? 하지만 내 말에는 현혹이 되버렸네요.
그리고 당신이 말해준 마이소시아에서의 배신과 사기.. 지금 내가 훌룡하게 해냈지 뭐에요?"
"웅..웅..웅! (제발 .. 나를 원래대로 바꿔줘.. 제발..부탁이야)"
"당신이 그랬잖아요. 마이소시아에 유명한 범죄자들도 저지른 범죄를 없애지는 못한다구요.
나도 마찬가지에요. 그럼 잘 지내봐요. 세자로. 영원히 당신은 이곳에 있을꺼에요"
그렇게 사라져가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세자로와 말을 하지 못하는 머메이드로 변한 세자로 ,
안타깝지만 그 후로 세자로가 얼만큼이나 물의 신전에서 오래 지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저 세오력 50년이 지난 후에 시스템에 불과했던 npc가 인간처럼 나이를 먹고
시체로 발견되어 운영진과 유저 모두가 경악을 하고 물의 신전이 리뉴얼 되기 전까진 말이다.
물의 신전에서 울려퍼지는 머메이드의 노래는
오늘도 또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울리고 있는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