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길 위의 왕,
왕좌를 떠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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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포화가 멎고, 대초원 위에 평화의 깃발이 세워졌을 때,
사람들은 루딘을 정복왕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왕은 그 이름을 거부하지도, 기뻐하지도 않았습니다.
왕좌에 앉았을 때조차, 그 이름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왕의 승리는 검과 마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장에서 생명을 잃어야 했던 이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루딘은 황폐한 대초원을 다시 일구어야 한다는 책임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수도 루어스를 세우며,
이곳을 백성들의 안식처로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그러나 결심의 무게는 왕관과 함께 그의 목을 짓눌렀습니다.
성벽 위에서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대지를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차지하려 했던 이유가 정말 이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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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에 앉은 지 10년이 지났을 때, 루딘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 왕인가?”

그는 백성을 사랑했으나,
그 사랑이 점점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왕좌는 늘 차갑고, 검은 손에 닿을수록 무거워졌습니다.
왕은 매일 밤 홀로 긴 성벽 위를 걸었습니다.
백성들이 잠든 시간,
도시는 숨을 죽이고 있었지만 루딘의 마음속에는 고요가 없었습니다.

왕은 자신이 이 땅에 남긴 흔적들을 돌아보았습니다.
폐허 위에 세워진 도시,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가는 백성들.
그러나 내가 떠난다면 과연 그들의 평화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루딘은 더 이상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왕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부재가 남길 공허를 두려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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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왕은 마지막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는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왕좌에서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루딘의 결정은 만백성에게 충격이었지만, 누구도 왕의 선택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왕이란 이름은 내가 아닌 백성들을 위한 것이다.
나는 이제 내 길을 찾아 떠나겠다.”
루딘은 그렇게 말하고 루어스를 떠났습니다.

말을 타고 도시의 성문을 떠날 때,
왕은 마지막으로 루어스 성을 돌아보았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다,” 그는 읊조렸습니다.

루딘의 검은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을 것이었고,
루딘의 방패는 자신을 지키는 것에 쓰이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그는 평화와 전쟁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아갔습니다.

길은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루딘은 대초원의 끝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폐허 속의 마을과 버려진 성터를 지나며
자신의 발자국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 위에서 루딘은,
오래된 검과 망치를 들어 마을을 개척하던 옛 전우들과 만나기도 했고,
긴 전쟁에서 부모를 잃은,
작은 촛불 아래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루딘은 한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황량한 들판 한가운데, 농사짓는 이들의 손길이 닿은 땅이 있었습니다.
전쟁과 혼란의 시대에도 그들은 묵묵히 땅을 갈아엎고 씨앗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들의 모습에 오래도록 서 있었습니다.
모두에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그는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왕은 검을 내려놓고 곡괭이를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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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은 루딘이 떠난 후에도 루딘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복왕으로 기억되었지만, 왕의 이야기는 전쟁과 승리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루딘은 왕관을 벗고 떠났고, 그가 떠난 자리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그의 행적은 명확히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대초원의 어딘가에서 검이 아닌 다른 것을 들고 살아갔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루딘의 이름은 시간이 지나도 남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영웅이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의 여정은 만세토록 이야기되었습니다.

루딘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이 왕의 길을 따라 걸을 때,
그들은, 불멸의 이름을 가진 왕이 찾으려 했던 대답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찾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