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가끔씩은 술을 마시다가 나를 마신다. 나를 마신다는 것은
고통의 극치를 맛보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그 쓰디쓴
미각의 허무함을 비틀거리면서까지 마시느냐며 묻기도 했다.
나는 나의 통증을 확인하기 위하여 스스로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도 믿지 않았다. 모두가 비웃었다. 술은
고통의 마취제이기에 앞서 나에 대한 마지막 도전이라고
했다. 그것이 퇴락해 가는 그림자처럼 비치일 때도 있으련만
나는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대하여 나의 속내를
드러내지는 못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의 명암을
들여다 보듯이... 오래전 내 살던 고향집의 이끼 낀 우물의
깊이를 재기 위하여 까치발을 세우며 고개를 들이밀었듯이...
나는 술을 마시다가 유년의 그 우물을 생각한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의 어두움을 보기 위하여... 바닥을 알 수 없는
우물의 깊이를 재기 위하여... 나를 마시는 술은 어린 날의
그 깊은 우물을 닮아있다. 마셔도 마셔도 아직 그 깊이를
알 수 없으므로 다시 통증의 깊이에 도전하듯이 술을 마시고
또한 나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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