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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세오
공허함.
92 2002.11.03. 00:00

날씨가 너무 춥다. 뭔가 따뜻한게 필요했다. 갈아입을 새옷이 필요 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차려입고 총총히 거리로 나섰다. 작년에 뭘 입고 살았는지 기억이 나질 않고 옷장을 뒤져볼 기운조차 나지 않아 그냥 새 외투를 사기로 했다...심각한 건만증인가.. 그럼 저기 저 옷장속에 가득 들어있는 옷들은 다 뭐란 말이지.. 집앞 백화점으로 나서며 날씨가 제발 춥기만을 바랬다. 그래야 을씨년스럽게 움츠리고 걷는 내 모습도 이상해보이지 않을테니까. 날씨가 따뜻해져서 거리의 사람들이 어깨를 펴고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짓고 삼삼오오 고개를 쳐들고 걷는 모습과 잔뜩 어깨를 움츠린채 긴코트에 양손 푹 찔러놓고 고개를 푹 숙이고 두꺼운 스웨터에 얼굴을 파묻고 걷는 내 모습이 교차되는 그림이 머리속에 그려졌다...너무 싫었다. 좀 밝아 보이는 코트 한벌을 사들고...편의점에서 먹을걸 왕창 사들고 들어왔다. 과자랑 빵이랑 음료수 담배 기타등등...집에 오자마자 봉지에서 꺼낼 생각조차 하지 않은채 쓰레기통 옆에 그냥 팽개쳐 두고 담배만 꺼내 핀다. 다 먹지도 않을 과자들..우유며 콜라,쥬스들..늘 이런식이지.. 잔뜩 사다놓고 뭘 샀는지도 금방 잊어 버리고 며칠...아니 길게는 한달후에나 방구석에 뭉쳐 있는 뜯지도 않은 과자봉지들을 발견하곤 한다. 후훗...나중에 발견한 과자들은 그대로 아침 출근길에 회사로 가져가 동료들에게 나눠주고 난 늘 인심좋은 형님 선배 오빠쯤 되버린다. 화가난다! 도대체 먹지도 않을 과자들은 왜 사는거야 왜.... 오늘도 또 최면에 걸린것처럼 먹지도 않을 과자 들을 사들고 들어와 버렸다. 배가 고프다.... 저기 쓰레기통 앞에 있는 과자봉지들을 가지고 와야한다.... 너무 귀찬다....그냥 참자. 내가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더라...어릴때...아무것도 모를때... 그전에 살던 집 마당은 이제 낙엽이 다 떨어지고...귀곡산장으로 변해 있겠지. 갑자기 그 집 모양이 생각 안난다. 여기서 버스로 세정거장도 안되는 거리인데 달려가고 싶다. 지금 그곳으로 막 달려가고 싶다...ㅜ.ㅜ 가끔 마음이 답답할때는 그곳을 그리곤 했었는데... 그 집앞 테니스 코트 화단에는 어느날밤 몰레 파묻은 우리집 강아지 두마리의 송장이 아직 잘 파묻혀 있겠지...^^;; 에드가 엘런 포우의 그것처럼..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이 천년정도는 되면 좋겠다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인간은 기회주의자라 천년동안 살아도 하고 싶은것 다 못하고 살꺼라던.... 어릴때는 서른살까지만 살아도 세상 다 산거라 생각 했었는데 서른살 이후의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난 아직도 살아 있고 지금은 천년의 시간을 생각하고 있다. 과연 가치있는 삶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