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먼저 그가 남긴 것을 가져가겠다고 달려들때 그들의 표정에는 웃음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봤음직한 표정이다. 내가 본 표정은 분명 단순한 웃음이 아니었다. 그건 광기가 어려있는 악마들의 미소였다. 그들의 표정을 통해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는 동물의 본성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들은 자라날 것이다. 그리고 사회에 나가서 중요한 구성원이 될 것이다. 지금은 떠난이의 남겨진 책이나 체육복에 욕심을 내던 이들이 사회에 나가서는 좀더 과감한 행동을 할 것이다. 아직 떠나기 전 사람(시체가 되기 전)을 좀더 빨리 죽이기 위해 노력하고, 그들이 남긴 것들을 서로 먹겠다고 싸울 것 이다. 지금의 다툼보다는 훨씬 더 치열할 것이다. 먹기 위해 서로를 상처낼 것이다. 지금 떠나지 않아도 되는 이들(아직 죽을 때가 안된 이들)이 자신 주위의 사람 들에 의해 떠나게 된다.(죽게 된다.) 그리고 떠난 이들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으로 멍하게 자신이 남긴 것들로 인해 싸우는 이들을 보게 된다. 주위사람에게 밀려져 자신의 것들을 빼앗긴 이들은 세상을 버린다. 서로가 서로를 먹기 위해 열심이다. 자신이 좀더 먹기 위해 남들을 죽여서 더 많이 먹으려 한다. 많이 먹은 이들은 자신을 살찌운다. 먹지 못한 이들은 또는 빼앗긴 이들은 점점 더 야위어 간다. 내 몸은 시체를 뜯어먹는 아이들에게 저당잡혀 있다. 내가 죽게되면 내 시체는 그들에게 내주어야 한다. 나는 그렇다면 뜯어먹힐 위험을 앉고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그런데 혹시라도 '그런일은 너무 비인간적이고, 사회는 그렇게 차가운 곳이 아니 다.'라고 반론을 제기될 수 있다. 허나 이것은 드러나는 논리이다. 공식적으로 말하여지는 도덕책의 논리이다. 이 반대쪽에 있는 몸으로 체험하는 진짜 논리 는 분명 이와 반대의 이야기를 한다. 세상은 빛만으로 이루어져있는 곳이 아닌 듯 싶다. 서늘하다. 내가 그들의 다툼을 보았을 때의 서늘함이 느껴지고 있다.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듯 하다. 실수해서 발을 잘못 디디면 나는 그걸로 끝장 이다. '먹히지 않으려면 강해져야 한다, 그리고 내가 먼저 먹어야 한다.' 이런 결론이 일단은 나온다. 참으로 슬픈 결론이다. 그리고 모순의 결론이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먹어도 언젠가 다시 내가 먹히게 될텐데. 결론은 지금으로서는 내릴 수 없다. 내가 살아온 경험만으로 그리고 아주 약간 밖에 보이지 않는 내 미래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결론은 나올 것이다. 시체를 뜯어먹는 아이들에 관한 내 태도와 행동이 나중에는 결정될 것이다. 그때의 결정을 위해 지금은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밖에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