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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께 보내는 편지 세오
1988년여고생콘크리트살인사건
411 2008.01.16. 02:30

1988년 11월 25일
여고생콘크리트살인사건



사건이 들춰진것은 사건발생 4개월뒤인

평성원년 1989년 3월 29일에 발견되었다.
네리마 소년감별소에서 아야세 경찰서 수사관이

1988년11월8일에 강.간,절도 등에 의해

소년 감별소로 보내진 소년A를 조사했을때,

담당형사가 무심고 "너 사람을 죽이면 안되잖아?"라는 질문에

다른3명이 자백했다고 착각하여 모든 사건내용을 자백.

담당형사는 당초의 목적인 강.간,절도의 조사를 받는일 없이, 반신반의한 채,자백내용에 의지하여

도쿄 코토쿠 와카스 15호지 해변공원

정비공장 현장공터로 향했다.



현장에는 드럼통 한개만 널려있었으며,

드럼통의 콘크리트 틈새에서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있어 경찰은 305kg정도의 드럼통을

크레인으로 메달아 올려 경찰서로 가지고 갔다.

다음날 오후 경찰서내에서 콘크리트를 해체.



안에는 보스턴백에 채워진 이불2장에

휩싸인 여자의 시체가 들어었으며.

사후2개월 이상 경과에 부패가 진행되고 있어 상태가 나빳다.

피하지방의 두께는 통상의 6%정도로 영양실조 상태.

전신에 구타에 의한 부종

(림프액이 다량으로 모여 부어오른 상태)

이 시신의 상태있어 사인은 외상성 쇼크 또는

위의 토사물에 의한 질식사로 여겨졌다.

시신의 상태는 안면이 심하게 함몰및 변형되어있었었고,

부폐진행중 이였기때문에 외관으로부터의 확인은 곤란했지만,

지문이나 이빨들의 조합으로 11월 25일 밤 아르바이트후

귀가도중에 행방불명이 된 사이타마현 미사토시타카스

1번지의 현립 야시오고교 3학년의 소녀(17)인것이 확인됬다



야시오 시내의 아르바이트에 먼저 간 채로 귀가하지 않아

요시카와 경찰서에 수색원을 냈던 부모는 무사히돌아오는것을

손꼽아 기다렸으며 부친은 일을 쉬어가면서까지 행방을 찾고있는 중이였다.



공판기록에 의하면 변호사가

"그정도의 폭행을 가하면서,

그녀가 죽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라는 질문에

"........ 생각할수 없었다"
라고 대답했으며,

"죄를 뉘우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소년 b,c,d등은 죄를 뉘우친다고 하였으나,

소년 a는

"단지 운이 없어서 잡혔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여 충격을 더했다.

A는 이전에 근무하고 있던 타일공장에가

모르타르·드럼통 등을 조달.

사체를 가방에 넣어 A의 집 앞에서

드럼통에 넣고 콘크리트를 흘려넣었다.

이 때, 공장의 전 상사는 사람을 죽였던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고 여겨지고

있던걸로 파악해 조사하여 처벌하였다.





- 도쿄 고등 법원 판결(확정) -

소년a는 17년형을 받았으며,

나머지 3명에 관해서는 5~9년을 선고했다.

재판기록에 따르면 실제론 이 소년들 이외에도

10여명의 가해자가 더있지만

그들에겐 약식 기소하였다.



그들은 반성조차 하지않으며,
오히려 자신을 취재하러온 기자들에게 욕설까지 퍼부었다.

부모는 지금 역시 피고인 측에서의

면회신청 및 성묘 허가를 거절하고,

그 비통한 심정을 재판소에 토로하고 있다.

손수 돌봐 길러 온 외동딸을 태연하게

주변에서 문제 삼아, 불안 초조로 긴 날들을 보낸 결과,

끔찍하게도 피해자가 살해되기에 이른 부모 등

피해자 감정은, 지극히 엄하여 피고인에 대해

격렬하게 엄벌을 요구하고 있고,

피재자의의 아버지는 당심 증언에 대해서도,

피고인에 대한 원판결의 과형은

너무 가볍다고 해 강한 불신감과 불만의 정을

절절히 토로하고 있다.

피해자의 모친은,

외동딸이 죽음에 이른 자세한 경과를 들은 뒤,

정신과에 다니게 되었다.

덧붙여 주범 A 이외는 이미 출소하고 있다.

그들은 사회에 나와 대부분이 적응을 하지 못하고있으며,

정신병에 시달리고있다.
소년c의 부모는 아직도 재판이 부당하다며 혐의를 부정하며

신문사에 이를 알리는 편지를 수차례씩 보내고있다.

그중 소년d는 가장 반성하고있으며,

폭행당시 소녀는 폭행뒤에 자신에게

"나는 언제 집에갈수 있는거야?" 라고 말했다며,

수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눈시울을 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