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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셔스
추석
435 2003.09.30. 22:20

누구에게나 즐거운 명절이 있다.


물론 나에게도 즐거운 명절은 있다.


하지만 내기억속의 10년간의 추석의명절은 다름아닌 지옥이였다.


작은아버지와 고모들과 아버지와의 싸움


그리곤 오가는 욕설 그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채로 단지 이불만 뒤집어쓰고 그상황을 방관할

수 밖에 없었다.





3년전.

왠일이신지 작은아버지가 추석이 되기전에 집을 방문하셨다. 내가 3학년때인가..

작은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해맑은 미소를 보이며 아버지에게 화해를 청하셨고 아버

지도 그날 술몇잔으로 작은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어가며 모든것을 풀어버리셨다.



그리곤 추석날. 아침에 제사상을 차린뒤 제사를 지내려고 하고있었다.

왜그런지 그날따라 작은아버지는 직접 제사를 진행하셨고 나와 아버지 둘다 그냥

보고만 있었다.

젓가락을 쥔채 조그만한 양철그릇에 세번을 쳐가는 그모습.

그리곤 아버지와 정답게 양쪽 촛불을 끄신모습..

그날 작은아버지는 댁으로 돌아가셨다.





한달정도가 지났을까..

작은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가족은 놀랄수밖에 없었다.

불과 한달전만 해도 같이 제사를 지내셨던 그렇게 건장하시던 작은아버지께서 돌아가시다니..

병명은 술로인한 간의 파열이였다.



그래 지금 생각해보자면. 그때 작은아버지께서는 이미 때를 아신것 같았다.

자신의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아버지와 화해를 하고 할머니를 뵈러오고. 어머니를 뵈러오고. 마지막으

로 자신을 길러주신 아버님께 예를 갖추고 싶어하셨기 때문이다

할머니께서는 급하신대로 아버지와 함께 평택으로 내려가셨고 당시 초등학생이였던 나는 어머니와함

께 토요일날 내려갔다.



인생은 이렇게 허무한감이 있나보다..

20년이상을 돈 때문에 싸워오시던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그곳에서 아버지는 목놓아 통곡을 하셨다.


하지만 난 결코 울지 않았다.


13년간의 악몽이 나의 몸에는 이미 동화되어 버려 작은아버지에대한 감동이 매말라 버린것이다.


그때 작은아버지 처소에서 왜 안울었는지 지금와서 후회만 된다.


각자에게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다는거..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대략 7년째..

추석이 돌아올때마다 아버지의 눈에는 나에게만 보이는 눈물이 고이신다.

동생에 대한 그리움 이라고 해야될까..



그리고 나에게또한 추석이 돌아올때마다 작은아버지의 모습이 선하게 비친다.

내가 할머니방에서 게임을 흥미진진하게 하고있었을때 오셔서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던 작은 아버지.

돌아가시기전.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의 제사에 직접 행을 하신 작은 아버지..

추석이 올때마다. 누군가에게는 쉰다는 즐거움이 있겠지만.

추석이 올때마다. 누군가에게는 아픈기억이 살며시 나타나고 있다.

이제와서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작은아버지 사랑합니다.

천국에서 편하게 눈감으세요..




달려라 혜광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