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둠의전설을 시작하기는 열여덟 살인가 열아홉 살 때의 일이다. 처음엔 별로 열심이랄 것도 없이
다른 애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해보는 정도였다. 그런데 스무 살쯤 된 두 번째 봄에는 나는 완전히 이 유희
에 취미가 생겨서, 이 때문에 다른 일은 전혀 돌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주위의 사람들은 나에게 그것
을 못 하도록 말리지 않으면 안되겠다고까지 걱정을 하게 되었다. 어둠에 열중하면, 학교의 수업 시간
도 점심도 잊어 버리고, 탑시계가 우는 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학교를 쉬는 날은 신라면 두컵을 모
니터 옆에 넣고는,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끼니때에도 돌아가지 않고 겜방에 박히곤 하였다.
지금도 어둠에 접속해보면, 이따금 그 때의 열정이 몸에 스미는 듯 느껴진다. 그럴 때면, 나는 잠시 매
니아만이 느낄 수 있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황홀한 심정에 사로잡힌다. 그시절에 처음으로 전사 전
직을 처음 이룬 그 때의 기분 그대로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럴 때면 나는 홀연히 저렙때의 무수
한 순간을 생각해 낸다. 바닷내가 코를 찌르는 메마른 아벨의 찌는 듯이 무더운 던젼과, 악마성의 서늘
한 아침과, 신비스런 우드랜드의 저녁때, 나는 마치 보물을 찾아 헤매는 사람처럼 단검을 들고 경험치
를 올리는 것이었다. 그리하다 희귀한 아이템을 얻으면-특별히 진귀한 것이 아니라도 좋다. 던젼 속에
빛나고 있는, 빛깔이 고운 은빛을 단조로움과 함께 드놓고 있는 것을 보면-그것을 얻는 기쁨에 숨이 막
힐 지경이 되어, 가만가만 다가섰다. 반짝이는 눈망울의 하나하나, G창에 늘어가는 경험치들, 그 와중
에 떨어진 고급 아이템들 하나하나가 눈에 뚜렷이 보이면, 그 긴장과 환희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때의 그 미묘한 기쁨과 거센 욕망과의 교차는 그 뒤엔 자주 느낄 수 없었다.
길드분들이 훌륭한 무기나 장비는 하나도 마련해 주지 않아서, 나는 내가 모은 아이템들은 그저 창고캐
릭에다 간추려 두는 수밖에 없었다. 우연찮게도 창고캐릭이 힘을 많이 올린 마법사라서 아이템창을 비
우고 이것저것 옮기면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초라한 캐릭 속에다 나는 나의 보물을 간직했다. 처음 한
동안 나는 나의 장비들을 친구들에게 즐겨 보여 주기도 하였으나, 친구들이 가진 아이템은 대개 싯가로
몇천만원 상당의 여러 가지 사치한 것들이었으므로, 내가 가진 유치한 아이템을 더 자랑할 수가 없게 되
었다. 뿐만 아니라, 극히 레어하고 센세이셔널한 아이템이 손에 들어와도, 남에게는 비밀로 하고, 내 절
친한 친구들에게만 이것을 보여 주곤 했다. 어느 때 나는 던젼에서 보기 드문 세토아의녹옥반지를 얻었
었다. 착용해보고 빼보고를 거듭한 다음에, 나는 하도 마음이 흡족하고 자랑스러워, 꼭 카리나스에게
만은 보여 주리라고 생각했다. 카리나스란 역 근처에 사는 게임방의 아르바이트생이다. 이 친구는 흠
잡을 데가 없지도 않았다. 그의 아이템은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으나, 실용성 있는 배치와 캐릭터 조작솜
씨가 정확한 점으로는 보석을 간직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그는 서버리붓때마다 헬옷이나 기타
장비를 2개로 복사하는, 남이 잘 못하는 어려운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어쨌든 모든 점에서 그는 대단
한 친구였다. 그 때문에 나는 감탄에 마지 않으면서도, 그를 속으로 미워했다.
이 친구에게 세토아의녹옥반지를 보였다. 그는 무슨 전문가나 되는 듯이 그것을 감정하고 나더니, 신기
한 것임을 자기도 인정하면서, 천만원짜리 값은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반면에 그는 트집을 잡기 시
작하여, 마법방어가 없다느니, 장비시 부담감이 커서 일반 녹옥반지보다 효율성이 떨어진다느니 하며,
제법 그럴 듯한 결함을 늘어놓았다. 나는 그러한 결점을 그다지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으나, 그
의 혹평으로 하여 내 세토아의녹옥반지에 대한 기쁨은 다분히 허물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두 번
다시 그에게 아이템을 보여주지 않았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