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그리고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효모균이 자신의 선택에 만족했는지, 후회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아무튼, 다른 세균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그는 (이브라는 이름의) 짝과 더불어 죽음으로 한
정된, 그래서 가치를 가지는 삶을 살았다.
임종의 순간, 그는 각기 다르게 생긴 자식들을 모아놓고
그들의 눈을 그윽히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몫의 선택을 통해 너희들에게 삶과 죽음을 동시에 주었다.
좋건 싫건, 이제 너희들도 너희 몫의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용기를 가져라."
아담이라는 효모균은 그렇게 눈을 감았고,
그 후예들은 옳고 그름을 떠난 각자의 선택을 통해 오늘날 그 또한
자기 몫의 선택을 해야 하는 인간이라는 가장 고등한 동물에까지 이르렀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는 것을 아는 것과 자신의 죽음을
실감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언젠가 자신도 죽으리라는 것은 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막연한 미래의 일일뿐 우리는 죽음을, 달리 말하면 삶의 진가를 잊고 산다.
물론, '죽음의 자각'만으로 삶이 엄청난 선물처럼
여겨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삶이 어떤 가치로 지탱되지 않는다면,
'죽음의 자각'은 "어차피 죽을텐데..."라는 자기 유기로 빠져버릴 수도 있다.
그 가치 중 으뜸이 사랑이다.
"선과 악을 구별하느라 머리를 싸매지 않는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