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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셔스
J의 주말 - 2. 아버지
581 2007.02.07. 23:18

내 생일이 있는 달이나 주말 맞춰 1년즈음해서 한번씩 꼭 올라오셨던 엄마와는 달리

여름엔 벼농사, 겨울엔 비닐하우스농사에 바쁘셔서 시골집을 비울 수 없다하시며

내가 처음으로 방을 얻었을 때 딱 한 번 오시고는

딸기 농사 지은거, 쌀 농사지은 거 들고가라시던 성화에 못이겨 한 번씩 시골집을 찾을 때나

명절, 그리고 어쩌다 가끔 2~3년에 한 번꼴로 부모님 생일이 끼인 주말인 되어야 뵐 수 있었던,,

다른 자식들과는 달리 나는 아버지에게 있어서 많아야 1년에 7번정도밖에 볼 수 없었던 자식이었다.

시집이라도 갔으면 조금이나마 죄의식을 덜어낼 수 있기나하였을텐데..


아버지는 1년에 딱 3번 내게 직접 전화를 하셨다.

내용은 겨울엔 딸기이고, 늦봄과 추수가 끝난 가을 즈음엔 쌀이였다.

나에게 전화를 한 뒤엔 바로 동생들에게 전화를 하셔서 같은 내용으로

우리를 시골집으로 불러내렸다

그래서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그 주 주말은 항상 온 가족이 다 모이는 날이었다.

가끔씩 나의 안부가 궁금해지면 엄마를 다그쳐서 나한테 전화 한 통 해보라 하셧으면서도

유일하게 그 세 통의 전화만큼은 아버지께서 직접 하셨다.



몇 해 전, 어느 겨울 날이었다

그 날도 어김없이 바쁜 업무탓에 주말만 기다리며 숨 막히게 일을 하고있는 도중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역시나 내용은 딸기였다.

어김없이 '올해 딸기가 참 잘되었으니 와서가져가라'하셨다.

이번 주는 유달리 바빳던터라 정말이지 좀 쉬고 싶어서

'아버지, 그냥 택배로 보내주세요. 매번 내려가기도 힘들어요'

하니까 택배는 번거롭기도하고, 가는 동안 딸기도 상한다며..

늘 하시던 그런 말들로 얼버무리시며, 그냥 무조건 내려오라하셨었다.

그러면 이번 설에 내려가는 김에 가지러 간다 하니

대뜸 '오기 싫으면 오지마!' 하시며 전화를 끊으셨던 아버지셨다.

그렇게 늘 딸년과의 실랑이 끝에 날 시골로 불러내리곤 하셨는데

그 날따라 왜 그렇게나 죄송스러웠던지 모르겠다

버럭대시는 건 늘 있었던 일이었는데도 말이다.

내가 철이 좀 든건가.. 라고 혼자 쑈를 해보기도 했었는데

말그대로 쑈였다. 아직까지 철은 들지 않았다.

아무튼 그 날 이 후로는 아무리 피곤해도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그 주의 주말엔 늘 시골에 가곤 했다.

매번 실랑이는 있었지만 말이다.

아마 엄마의 전화였더라면 난 꽤 여러번 내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명절때만 찾아뵈었을 것이다.

내가 피곤하다고 투정을 부리면, 엄마는 집에서 그냥 쉬고 다음에 오라하셨을 것이 분명하기때문이다

그걸 아셨기에

딸기, 쌀 전화는 아버지께서 직접했을거라는 걸, 나는 돌아가시고 난 뒤에야 짐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명절 외에 1년에 딱 세 번.. 가족들 모이는 날 말고

답답한 도심을 벗어나고 싶은 주말이나

휴가를 받아도 마땅히 갈 곳도 없고, 가고싶지도 않으면

가끔 연락없이 집을 찾곤 했는데

그럴때면 으레

"저번에 내려왔으면 됐지 뭘 자꾸 내려와. 기름값도 비싼데.." 라고 말씀 하시곤하시지만

입가의 주름이 먼저 웃는 아버지의 미소는

자주는 아니었지만, 아버지의 전화 없이도 내가 시골집으로 향하게 만드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그럼 이제부턴 오지말까요?" 라고 내가 맞받아치면,

"그래. 오지마라" 하면서도 '매일 와도 된다' 하는 눈빛으로 날보시곤 했었다

그게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시골 집에 갔다가 올라오는 날이면, 아침 일찍 엄마를 다그치셔서 내 차키를 뺏아들고는

집에 올라갈 때쯤엔 뭘 한가득 실어놓으시던 분이셨다.

이 것도 필요할테고,, 저 것도 다 떨어져 갈테고,, 요 놈도 좀 가져가고..

어쩌다 엄마가 한 번 올라온다하시면 알아서 바리바리 싸셨을텐데도

뭐 하나 더 챙겨가라하시며,, 무겁다고 나중에 내려오면 보내라는 엄마에게

" 필요한 거 없으면 서글퍼서 안돼. 거기서 사먹는 게 여기꺼랑 같은 줄 아남? " 하시며

엄마를 못잡아먹어 안달이셨던 아버지라고..

농사일에 바빠서 자식집 한 번 찾지 못하는 게 미안했던지

시골에서보다 더 많은 곡물들과 과일들을 내게 챙겨주시려했다고..

자주 내려오지도 않는 딸년 밉지도않으셨을까...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날 찾으시며 눈물을 흘리셨던 양반이라고..

그렇게 엄마가 눈물을 보이며 아버지 이야기를 가만가만히 하실 때마다

난 항상 불효녀가 되어야만 했다


내가 불효녀인 건 알고있지만

누가봐도 불효녀라고 여길만한 상황이 되는 것은 싫었다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넌 불효녀야. 어떻게 딸년이 되어서 그럴 수가 있니' 라고

다그치고 있는 것만 같은 것이다

그래서 늘 '아버지 얘기 하지마' 라고 엄마에게 화를 내는 딸자식이다

그러면 엄마는 또 '니 아버지다 이 것아.. 어떻게 되먹은 애가 그렇게 매정하니...' 하신다


그렇다.

'매정한 딸년'은 엄마의 눈에 보이는 나이고, 엄마의 가슴 속에 살고있는 내 모습이다.

하지만 내가 무슨 모습이건 엄마는 무조건 나를 믿어주신다는 것을

나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