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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셔스
J의 주말 - 3. 엄마
583 2007.02.08. 04:31

엄마의 사랑은 무조건이다.

세상 그 어느 남자를 만나 미친듯 내 사랑을 퍼준다 하여도

엄마가 나를 믿고 사랑하는 만큼의 깊이에 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부모의 사랑과 연인간의 사랑은 그 질 자체가 틀리지만

믿음. 한없이 베풀고 싶은 마음. 등은 비슷할 거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내가 무슨 짓을 벌이고, 무슨 일을 하건 엄마는 내 편이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내가 자식을 낳는다 하여도 엄마만큼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종종한다.

엄마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나도 내 자식에게 무조건적으로 퍼부을 수 있을까

하지만 언제나 결론은 '절대 못한다' 로 나곤 한다.


이따금씩 엄마는 나에게 "더도 덜도 말고 꼭 너 같은 딸만 낳아라"라고 하는데

어렸을 땐 단순히 엄마의 말버릇이라 여겼던 그 말들이

그냥 늘 하던 말이길래 아무 생각없이 그러려니..

이를테면 '추워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의 '죽겠다'처럼 아무런 의미없이 들렸던 그 말이

조금 생각을 하게 되면서 부터

그러니까 내가 갓 스무살을 넘기기 시작할 무렵부터

그건 엄마가 나에게 내리는 가장 무서운 저주임과 동시에

나때문에 엄마가 했을 마음고생을 대변하는 가슴 아픈 말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았다.


세상에 떠도는 많은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30여년간 이미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자랐다.

유치원을 다니지 않은 내가 처음으로 정식 '노래'라는 것을 배운 초등학교 1학년때에도

학교에선 '어머님의 은혜'라는 노래를 가르치며 어머니의 사랑을 강조하던 대한민국이였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그렇게 주구장창 '부모님 은혜' 라는 교육을 받으며 살아온 덕분에

1년을 주기로 반복했던, 거의 형식에 가까운 부모님의 은혜에 대한 '고마워요. 사랑해요'라는 말은

말그대로 그냥 말뿐인 것이 되어버린 건 아닌가 생각 할 때가 많다.

그 말에 얼마나 많은 진심이 실려있는지 어떻게 증명할 방법도 없기때문이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처음으로 어버이날을 맞던 날,

수업 한두시간 정도를 감사카드와 카네이션 만들기로 대신했던 적이 있었다.

큼지막하고 삐뚤삐뚤한 글씨로 도화지를 잘라 적은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라는

몇 자 되지 않는 글씨와

때묻은 손으로 만든 어설픈 색종이카네이션이

아마 당신 눈엔 세상 어느 것보다 큰 선물로 보였을 것이고 가장 큰 기쁨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내 생에 처음으로 만든 카드에 당신은 기쁨을 주체 할 수가 없으셨겠지만

사실 뭘 적을지 몰라 옆 짝이 쓰던 거 그대로 배껴서 적은 걸 아시면 엄마는 얼마나..

내가 배껴쓴 옆 짝도 그 옆에 앉은 김아무개의 것을 배껴서 적은 걸 아시면 짝의 엄마는 또 얼마나..

얼마나 아쉬워하실까...

아니, 아쉬움이 아니라 실망에 가까운 섭섭함이려나..


그렇게 우리네 어머니들은 자식들의 '감사하다 사랑한다'라는

뜻도 모르며 적어댄 삐뚤삐뚤한 글자 몇 개에 얼마나 기뻐해하시며 사셨을까..

자식들이 단순한 수업의 연장으로 공작놀이 셈치며 만든 카네이션을

얼마나 오랫동안 간직하고 계셨을까..


색종이 카네이션.. 우리 엄마는 아직도 내가 만든 그 걸 갖고 계실거다.

내가 스물 대여섯 살쯤의 추석 때, 어쩌다 내 어릴 적 앨범을 들춰보며서 한장 한장 넘기는데

그 어설프기 짝이 없는, 색이 바랜 색종이로 만든거였나.. 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색이 바랜

색종이 카네이션이 그 곳에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 이 후 10여년이 넘어서까지 소중히 갖고 계셨던 걸

이제와 버린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으니까, 분명 지금도 그 곳에 있을거다.

어머니란 다 그러한가보다...


뭐.. 난생 처음 만들었던 내 어버이날 카드는 그렇게 복사품으로 만들어졌다.

그 뒤로 어휘력이 늘어나고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카드는 편지로 바뀌고, 카네이션은 사서 달아드려야해서 5월 용돈지출처 하나가 더 생겼으며

어느 새 5월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달이 되어버렸다

어버이 날이 있어서가 아니라 쓸떼없는 겉치레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어버이날과 스승의날엔 편지와 카네이션!!

이건 어렸던 나에게 거의 법이나 다름없었다.

어버이날이면 언제나 해왔던 것이었고

그래도 조금은 부모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자각하고 있었던 듯

그런 날 카네이션 한 송이 없으면 큰 죄를 짓고 있다는 죄책감이 들었던 것이다.

죄책감에 얽매이는 것도 싫었고,

그렇다고 그런 특별한 날에 얽매여서 남들 다 하는 것을 하는 것도 싫었던 나는

항상 고민에 휩싸이곤 했지만, 내 마음이 편하기위해서는 늘 카네이션 한 송이씩 꼭 사드려야했다.

교복을 벗어던지고 집을떠나있으면서 편지와 카네이션을 더 이상 달아들이지 않게되었지만

어버이날의 전화 한 통은 늘 날 옭죄는 무엇이 되어버렸다.


학교에서는 어버이날이되면 부모님께 편지를 쓰라고

한 명당 편지지 두 장씩, 그리고 봉투 하나씩 주어지곤했는데

그 두 장을 메꾸기가 엄청 힘이들었던 나는

세상에 떠도는 모든 다짐들과 학생으로써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열심히'를 말로써 보여드리곤 했다.

여태 어버이날 드린 편지를 다 모아놓아도 내용은 다 거기서 거기다.

진짜 난 그게 너무 싫었다.

그게 내가 가장 싫어하던 거였다.

편지 말이다.

지키지도 못할 말로 도배를 하며

특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특별할 것까지는 없는 날의 잠깐의 기쁨을 위해

억지로 내게 거는 기대를 조금 더 높이거나 하는 말따위를 꾸며내는 짓을

내가 했다는 사실이 나는 정말 싫었다.

차라리 한 송이의 카네이션이 더 깔끔하고 담백해서 좋았다.

몇 마디 말에 내게 기대를 하시게 만들어도 내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리란걸 잘 알고 있어서였나..


이제 아버지는 딸자식의 진심이 가득담긴 편지를 받으셔도 읽지 못하는 곳으로 가셨고

엄마는 1분이면 끝나는 전화 한통이 어버이날에만 갖는 세 개의 기쁨 중 하나가 되었다.

예전처럼 하루종일 오른쪽 가슴에 3개의 카네이션을 달고 다니시지 않으셔도 된다.

다 자란 자식들은 이제 편지를 쓰지않고

카네이션도 시골집에서 1시간거리에 사는 시집간 막내동생이

어버이날 잠깐 시간을 내어서 한번씩 찾아뵙고 달아드리는 게 전부다.

엄마는 그 것도 기뻐서 하루종일 달고다니실거다.

그게 우리 엄마이니까..


내가 불효를 행하고 있다는 건 알고있지만

이게 도를 넘어선 불효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어버이날 뭔가 하나 챙겨드리지 못하는 게 불효라면

어버이날을 번거롭게 생각하는 것이 불효라면,

엄마의 가슴 속을 홀딱 태워버린 지난 불효들은 거의 죄악 수준이 되어

난 감빵을 들어갔다 나와도 벌써 여러번이었을테니까 말이다.


다 식어버린 커피가 생각을 흩어놓았다

배가 고픈데 뭘 찾아먹기도 귀찮고

도착시간이 좀 애매하긴 하지만 엄마도 점심을 제대로 드시진 않았을테니

배는 그 때가서 채우기로하고

일단 지금 당장에 허기진 배를 좀 달래기위해 식은 커피라도 마셔야했다.

한 모금을 마시고, 두 모금 째를 입에대기 직전에

휴대폰이 울렸다.

받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본 시계는 11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