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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셔스
J의 주말 - 4.여동생
586 2007.02.09. 21:31

'민아? 민아가 왜..?'

다른 집 자매들과는 달리, 여동생인 민아의 전화는 내게 특별하다.

휴대폰에 민아의 이름이 뜨고, 그 전화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는다는 건

튀긴 메뚜기나 번데기를 맛있게 먹는 것처럼 나에겐 절대 불가능한 일 중의 하나다.

휴대폰에 뜨는 민아의 이름은 언제나 내 머리 위에 꽤 여러개의 물음표를 만들어주기때문이다.

그 만큼 그 아이는 내게 전화를 하지 않았고 하는 것도 싫어했다.


민아의 이름이 뜨자 이번에도 어김없는 물음표와 조금 기쁜 마음도 들었던 듯,

산타의 존재를 단 한번도 믿은 적없지만

그런 존재로부터 받은 선물상자를 열어 볼 때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하면서..

꽤 오랫만에 설레이기도 했었던 것 같다. 전화를 받기 직전까지말이다.

하지만 전혀 의외의 일인듯 받은 휴대폰 너머에 또 다른 의외가 숨어있을 줄은 몰랐다.

"여보세요" 는 민아가 아니라 엄마 목소리였기때문이다.

처음엔 민아가 목이 쉰 줄 알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엄마의 목소리가 목이 쉰 민아의 목소리이길 바랬던 내 어이없는 바램일뿐이었다.



나는 동생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

특히 여동생인 민아와는 더 더욱...

민아는 어느 덧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다.

지방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고 남편도, 시댁도 무난하게 만난 것 같았다.

민아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반년정도 일과 공무원시험공부를 병행하던 도중

대뜸 결혼을 하겠다며 5살 많은 도심의 남자를 데려왔다.

신랑쪽 부모님들은 이미 허락을 했고, 민아를 끔찍히도 이뻐하신다고 했다.

시댁 어른들의 허락이 우리 부모님을 설득하기위한 깜찍한 거짓말이었다는 건

결혼 후 첫째아이를 임신하고나서야 민아가 조용히 엄마에게 들려줬다고 했다.


내가 수능시험을 칠 무렵 민아는 중학교 3학년..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목표로 하고있었다

그래. 그때까지만 해도 귀찮을정도로 말이 많고 나를 참 잘 따르던 아이였다.

우리 남매는 여느 동네 남매들 부럽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친하다'라는 말의 의미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새삼 궁금하지만

가족이란 하나의 이름 아래서도 '친하다'는 말을 쓸 수 있다는 걸 가르쳐 준 건, 나의 동생들이었다.

나의 동생들에겐 그게 나였을 테지만 말이다.

'사이가 벌어졌어도 아직 많이 친하다'는 말이 아니라

우린 그정도로 친하지 않기때문에, 마치 남남보다 더 할 정도로 우린 친하지 않기때문에

가끔 예전으로 돌아가고도 싶고, 다시 친해져보고도 싶은 마음이 드는 걸 이상스레 여긴 내가 발견한

새로운 사실인 것이다.



95년 이맘 때 쯤..

그 무렵, 난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하는 대학에 보기좋게 떨어져버렸다.

"미친년"

울고있는 내게 민아가 처음으로 던진 말이다.

화가 났다기보다는 나는 내 두 귀를 의심했다.

"뭐?" 퉁퉁 부은 눈으로 민아를 쳐다보며 다시금 되물었다.

"미쳤다고"

민아가 저런 말도 구사할 줄 알았던가? 얼빠져서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내게

민아의 입은 벌침이 되어 나를 마구 쏘아댔다.

"니가 뭘 잘했다고 울어?

재수라도 할려고? 쪽이란 게 있으면 재수한다는 말은 못하겠지..

너 재수하면 나 대학 못가는 건 알고있지? "

그렇게 잘 따랐던 민아의 입에서 그런 소리를 듣자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아니, 되려 머리 속이 언덕위에 쌓인 눈보다 더 하얗게 되었던 것 같다.

눈물도 쏙 들어가버렸고, 나도 처음듣는 차가운 목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너 대학 갈 머리나 되냐? 그 머리로도 대학은 가고싶은가보네? "

입꼬리 한 쪽이 살짝 올라가며 눈은 식을대로 식었던 것 같다.

민아는 방문을 세게 닫고 나가버렸고, 그 뒤로 지금껏 민아가 내게 먼저 말거는 일은 없었다.

단순히 '언니였기때문'이 아니라,

안 볼 사이도 아닌데 계속 밍밍하게 지내는 것도 불편했던 난 몇 번 화해를 시도해보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저러다 말겠지.. 하며지내온 세월이 벌써 12년이다.

'가족'이기때문에, '가족'이라서.. 모든 게 다 제자리로 돌아올거라 믿었던 나의 기대는

지난 12년동안 아주 갈기갈기 찢겨져서 이젠 흔적조차 없다.

겨우 한 조각 찾았다 싶으면 나머지 99개의 조각을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찾지못한 99개의 조각과 겨우 찾은 한 조각을 얼른 잊어버리라는 듯

또, 그러한 기대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다는 듯

삶은 빠르게 흘렀다.

뭔가를 만들어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난 단지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었던 것뿐인데도...

하지만 민아는 그것마저 허락 할 수 없었나보다.

어쩌면 빠르디 빠르게 흘러온 시간은 민아의 바램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있다.

지난 시간동안... 나와 마주칠 때마다 민아는 정말로 아무 느낌 없었을까..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다거나... 뭐 그런..


나는 재수를 해서 원하던 대학에 가게 되었고

줄곧 장학금을 받으면서 다닌 덕분에 집안 사정이 조금 여유로워지자

엄마는 민아에게 넌지시 대학이야기를 꺼내보았다 했지만,

민아는 완강히 거부하며 공무원이 될거라고 했다한다.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고 인문계에 들어온 아이들과는 달리

민아는 공무원이 되고자 인문계를 택한 것 처럼 보여졌다.

그 정도로 내가 집에서 재수공부를 하면서 보았던 민아의 꿈은

고등학교 입학 전부터,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대학 진학에 떨어진 그 때부터

오로지 공무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