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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셔스
J의 주말 - 5. 꿈의 땅
363 2007.02.12. 02:24

" 엄마? "

" 그래. 민아랑 같이 올라가고있다. 전화를 왜 그렇게 안받노?"

" 여태 잤어. 언제 도착이야? "

" 1시 좀 덜되서 도착할 것 같은데 "

" 알았어. 시간 맞춰서 나갈게. 엄마 점심 아직이지? "

" 그렇지. "

" 알았어. 있다 봐 "

- 뚝 -


알았어 엄마. 알고있어. 엄만 지금 내게 오고있는 거 맞지?

못난 딸년.. 뭐해먹고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 그거 보러 오고있는거지?


가슴 속 밑바닥부터 뜨거운 것이 솟구쳐올랐다.

30년 넘도록 엄마에게 밑도 끝도 없이 받기만 했던 사랑이,

그 따뜻함이 응집된 열덩어리인듯 했다.

딸년 눈에 비쳤던 엄마의 삶들이 머릿 속으로 빠르게 지나가고 또 일그러지며

내 두 눈을 적셨다.


2년 전 3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당신 혼자 농사일은 힘들다고 생각하셨던지

추석 때, 우리 삼남매를 불러다놓고 땅에 대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을 물으셨던 적이 있다.

원래부터 벼농사는 내다 팔 목적이 아니라

이거라도하면 배곯는 일은 없을거라 생각하셔서 시작하신것이고

딸기농사도 일이 없는 겨울에 집에만 있으니 좀이쑤셔서 일구셨던 것이라서

조금씩 불려나가긴 했어도, 얼마되지 않는 땅이었다.

우리에게 그 땅에 대해 무어라 그럴 자격이 없음에도

엄마는 한사코 우리의 의견을 물었다.

당신 혼자 결정하는 건, 돌아가신 아버지께 죄송스러운 마음이 드셨던 모양이다.


땅을 모두 처분하고, 그 돈으로 시골집을 엄마의 편의에 맞게 다시 짓고,

남은 돈은 엄마 마음대로 쓰라고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시골집이 사라지면 모든 게 다 사라져버릴 것 같았기때문이었다.

나의 존재마저 잃어버릴까봐 두려웠기때문이었다.

기억, 추억이 없는 사람은 껍데기에 불과할 것 같다는 생각을 몇 번 한 적은있지만

그 생각의 주인공이 내가 될 것만 같았기때문이었다.


결국 작년 5월, 1/3만 남기고 땅은 다 처분되었고

남은 땅은 밭으로 일구어

엄마가 조금씩 감자나, 고구마 같은 농작물을 재배하기로 결정되었다.

죄다 팔아버리고 집에서만 지내면, 엄마가 너무 빨리 늙어버릴 것 같았기때문이었다.

그 결정으로 인해 마지막까지 엄마는 편히 쉬지 못하게되어버렸다.

우리는 불효자요.. 하고 인정하는 셈이 되어버렸지만

엄마도 그렇게라도 일을 하는게 더 좋다고했으니 그걸로 된거였다.

당신의 노년마저 자식들에게 맡겨버렸다.

하여간에 엄마라는 사람들은...



땅을 팔아 생긴 목돈의 행방은 엄마만이 알고있다.

엄마는 그 돈을 좋은 일에 썼다고 했다.

그 동안 돈이 없어서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해 늘 미안했는데

이제야 한 시름 놓인다고 하는 걸로 봐서는 아마 박할머니에 관련된 일 일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반평생을 일구셨던 땅이다.

당신의 청춘과 미처 못다이룬 꿈을 자식사랑으로 바꾸어 가득 채워놓은 '꿈의 땅'을 판 돈 치고는,

우리를 품에안고 걸어온 긴 세월에 대한 보상치고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던 적은 돈이었지만

항상 모자라서 당신의 피와 살을 깍아내기만 했었던 그 '돈'이란 것을

이제라도 좀 마음 편히 당신을 위해 쓰시길 바랬건만

결국 돌고 돌아 당신 자신을 위해 쓴 셈이라며

전혀 미안해할 것이 없는데도 우리에게 미안해하시듯 말하셨던 엄마의 얼굴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땅을 팔 때 엄마의 심정이 어땟는지 어리석은 자식들은 알지 못했다.

목돈 한 푼 더 챙기려고 달려들지 않은 것만으로도

난 괜찮은 자식이라며 뿌듯해했었다.

하늘에서 보고계신다면

무뚝뚝해서 표현할 줄 몰랐던 아버지도 참 잘했다고 칭찬해주실 것만 같았다.



땅을 처분하던 그 날,

엄마는 전혀 입에도 못대시던 술을 드시고는

그 날 따라 아버지 생각이 많이나셨던지 썰렁한 시골집에 혼자 들어가는 게 싫어서

삼촌네에서 주무셨다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