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게임실행 및 홈페이지 이용을 위해 로그인 해주세요.

시인의 마을 셔스
J의 주말 - 10. 눈물
494 2007.02.24. 00:26

M이었다.

" 누나!!! "

" 어? "

" 누나 나 방금 한국도착!! 얼른 나와. "

" 이 새끼야. 온다는소리 없었잖아? "

" 누나 놀래켜줄라구 그랬지~ 어디야? 약속 없지? 있어도 취소시켜야 해~!! "

" 집이지. 약속은 없다만 누나 내일 출근해야돼서 오래는 못있어."

" 그런게 어딨어. 애인이 2년만에 누나얼굴 보러 한국까지 왔는데.."

" 시끄럽고. 우리집 앞으로 와 "

" 오케이~ 도착해서 전화할게. "

" 딴 애들은 안불러? "

" 걔네는 천천히 봐두돼. 일단 만나서 얘기해"

" 응. 오면 전화해. "



명호.. (M을 그냥 빼버리고 이름으로 쓰겠습니다-_-)

대학교 1학년 때, 나를 잘 따랐던 같은 학번 남자동생들이 몇 명있는데

명호는 특히 나와 같이 다니길 좋아했고

툴툴대고 틱틱대며 매일 욕만했던 나를 잘 따라준 고마운 녀석이었다.

명호는 졸업 후, 나와 같은 회사에 취직을 했지만

그 이듬 해 5월에 공부를 더 하고 싶다며 미국으로 건너갔었다.

지난 2년간 항상 일주일에 한번꼴로 전화를해서 새벽 단잠을 깨우곤 했던 녀석..


입학 후 몇 일 지나지 않은 3월 초, 이름만 겨우 알았을 뿐 어색하기 짝이없었던 관계였음에도

명호는 대뜸 담배를 피고 있는 내 옆으로 와서 한 개피 달라고 했었다.

" 너도 펴? "

" 응. 고등학교 때 조금 폈는데, 지금은 안펴."

라고 말하며 당당하게 불을 붙이더니

한 모금 들이키자마자 죽을똥 살똥 기침을 해대던 귀여운 녀석이었다.

정이 많은 아이였고, 항상 개겨댔지만 미워할 수 없는 아이였다.

사랑을 받을 줄도, 줄지도 몰랐던 내게 있어서 명호는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내 길고 긴 외로움을 달래준 건 명호를 포함한 아이들과 H였기에....


나를 잘 따랐던 만큼 H도 잘 따랐던 명호는 데이트 방해꾼이기도 했다.

군대간 H에게 면회를 갈 때에도 항상 명호는 달라붙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H에게 욕을 한바가지 얻어먹으면서도 늘 싱글벙글이었던 녀석이었다.


다시금 떠오른 옛생각에 또 H의 생각들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200m도 안되는 곳에 살았던 H는

자기없으면 옆에서 지켜줄 사람이 없어 위험해서 안된다며

군대가있는동안 나를 자신의 방에서 살게 했었다.

그가 입대하던 그 날,, 처음 그의 방에서 잠을 자면서

질식할 정도로 짙은 그의 향기에,

그가 바로 옆에 누워있는 것만 같았던 그 느낌을.. 이젠 기억해낼 수 조차 없다.

전화 한 통이면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그가 그립다기보단 그의 향기가 잡힐듯 잡히지 않아 아른아른거리는데

헤어진 그 날 이 후, 그 어느 곳에서도 그의 향기를 다시 찾을 수 없었다.

그 향기는 그가 아니면 안되는 것이다..

이젠 더 이상 보고싶어도 볼 수 없고, 목소리가 듣고싶어도 들을 수가 없다.

그게 이별이란 것인가..


이별...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지금 이 순간조차도 이별일 것이다..

'순간'과의 이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순간, 시간과 이별하며 살아왔을까..

그렇게도 오지않길 바랬던 미래는 와버렸고

어느 덧 삼십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나는

처음 가졌던 그 무엇들 중에 무엇을 잃어버렸고, 또 삶에 있어서 무엇을 새로이 찾아내었을까..

어렸던 내 나이 스물에 세웠던 원칙들을 다 지키며 살아왔을까

세상에 찌들어 변할대로 변한 원칙들로 흡족해하며 억지 꿈을 쫓고 있는 건 아닐까

꿈의 반대편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여기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은 아닐까

꿈을 쫓는 척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무살. 그 어렸던 내겐 꿈꾸는 것 그 자체가 곧 행복이지 않았을까

내 꿈은 '꿈꾸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여긴 어디이고, 나는 누구이며, 저 앞에 보이는 저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뭐가 보이고 있기나 한걸까. 캄캄하기만한 이 곳에서 .......




" 아 뭐야~ 그 새 할망구 다됐네 "

명호가 나를 보자마자 던진 말이다.

" 닥쳐 좀. 뭐하러 왔어? 다시 가라. "

" 아 이러기야? 우리 2년만이라고! "

" 시끄럽고.. 뭐때매 왔는데? "

" 누나랑 결혼하러.. "

" 싸울래? "

" 일단 타기나하세요~ "

" 차는 어디서 난거야? "

" 훔쳤어 "

" 지럴을.. 어디서 난거야? "

" 집에 잠깐 들렸다가 아버지꺼 빼들고 나왔지. "

명호의 차에 타면서 다시금 되물었다.

" 근데 왜 왔어? "

명호는 시동도 키지 않고 이야기만 했다.

" 아... 누나 얘기 못들었어? "

" 무슨 얘기? "

" H형 어머니 많이 아프셔. "

" .. 뭐? 왜 갑자기? 사고라도 난거야? "

" 아 진짜.. 웬만하면 헤어졌어도 연락은 좀 하고 살아라. 누나랑 형이랑 같이 지낸 세월이 몇년인데..

아무리 어쩔 수 없었다고해도.. 어떻게 사람이 그러냐~? "

" .... "

" 그 동안 한번쯤은 연락 할 수 있을만한 시간이었잖아? "

" 몰라. 아직 한 번도 연락해보고 싶단 생각 안해봤어."

" 누나답다. 진짜... 그럼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한 번 보고, 전혀 연락 없었던거야? "

" .... 응."

" 형 어머니도? 그동안 어머니한테도 연락 한 번 안드렸어? "

" 응. 근데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아프신건데? "

" 작년 여름에 위암말기판정 받으셨대.

오늘내일 하신다고하셔서... 아까 전화할 때, 막 병원에 다녀오던 길이었어."

" ...... "

" ........ "

" 그 것때문에 온거야? 비싼 비행기표 내버려가면서? "

" 그 것 때문이라니? 누나 진짜 말 좀 이쁘게 써.. 형 어머니면 내 어머니야. 누나도 알잖아. "

" ..... "

" 형 어머니 일도 있고, 올해 한 번 한국 들어올려고 생각은 하고 있었어. "

" .... "

" 어머니... 많이 안좋으시더라. 이거 전해주래. 몇 일 전에 적어놓으시고는 내가 가니까 주셨어.

형한테 건네기엔 누나한테 미안하셨나보더라.

나 곧 한국 들어온다는 소식들으시고는.. 나만 기다리셨던 모양이야. "

" .... "


편지였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