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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셔스
J의 주말 - 13. 시간
420 2007.02.28. 01:35

2005년 3월 18일 밤 12시. 아버지가 하늘로 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연이어 줄초상이라도 날까봐 운전은 자신이 하겠다던 명호에게 차를 맡기고

시골로 가는내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명호는 빠르게 빠르게 달려 1시간이나 일찍 병원에 도착을 했고

차가 멈추기도 전에 문을 열고 뛰쳐나가며 몇 번이나 넘어진 나때문에

제대로 주차도 하지 못하고 병원으로 들어와야했다고 얘기했다.

물론 난 그 때의 기억이 없다.

제대로 정신을 차리자 아픔이 느껴졌던 타박상만이 그 순간을 증명해주고 있을 뿐...


아버지..

아버지란 이름으로 살아온 지난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눈물을 참아내셔야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무뚝뚝의 대명사였던 그 분께서 가셨다. 다신 볼 수 없는 곳으로...

더 이상 아버지의 꾸중을 듣지 않아도 되는데.. 눈물은 쉬지않고 흘렀다.

전생에 자식에게 지은 죄가 많아서 현생에 부모의 연으로 맺어졌다는 누군가의 말을 빌리자면

아마 다음 생엔 내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모가 되어있을 것이다.



어떻게 들었는지 늦은 새벽엔 H의 부모님들과 H가 빈소를 찾았다.

아버님과 어버님은 손이라도 잡아주셨지만

H는 단 한번도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

예를 올리고 난 후 자리를 잡고 묵묵히 술만 들이키고 있었을 뿐..


H와 그의 부모님, 명호를 포함한 후배들, 선배들..

다들 아버지가 가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해준 고마운 사람들이다.

내가 이 사람들에게 받은 모든 것들을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그들이 보답이란 걸 바라지 않는 다는 것은 잘 알고있다.

당연한 일이라 여기며, 자신의 일까지 내팽겨치고 달려와준 사람들..

도대체 내가 이들에게 무엇이길래..

나란 존재가 이들에게 어떤 의미이길래...


H..

자기 자신을 위해서인지, 나를 위해서였는지 내 눈을 계속 피했던 그의 수척한 얼굴에

난 그저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만 가득했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온 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그의 집에조차 소식을 묻지 않게되었고

거기서 비롯된 일종의 죄책감은 언제나 날 짓눌러대는 어떤 것의 우선순위가 되었다.



-

H를 처음 본 건 대학 오리엔테이션 때..

그는 내 바로 윗학번.. 그러니까 나와 동갑이었다.

입학 후, 난 학생회에 들었고 그 곳에서 H와 더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이 사람 참 괜찮다고 느낄 무렵 방학을 했고

학생회사람들끼리 MT를 다녀오면서 우린 연인사이가 되어서 돌아왔다.

서로에 대한 호감만 가지고 시작한 그 만남이 7년동안 이어질 줄은 그도 몰랐고 나도 몰랐으리라.

그렇게 서서히 우리는 서로에게 물들어갔다.


그리고 스물 여덟, 어느 따스했던 봄날, 늘 가던 카페에 앉아 나는 그에게 이별을 말했다.

토요일 오후, 여느 연인들처럼 점심을 먹고 후식으로 커피나 한 잔 할까.. 하면서 들어간

그 곳에서의 대화들이 우리가 나눈 마지막이 될 줄은 나도 몰랐다.


흘러나오는 음악 선율에 우리의 모든 시간과 생각을 맡겨두고

늘어지는 눈꺼풀을 추스리며 아무말 없이 가만히 있었던 우리...

그 고요했던 정적을 깨트린 건 내 한 마디였다.

턱을 괴고, 창 밖의 사람들을 응시하며 " 우리 그만 만나.." 라고 덤덤히 말했던 나.

왜 그 때 이별을 하고 싶었는지 지금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가 지겨워졌다거나 그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거나, 혹은 그에게 너무 화가났다거나..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이를테면... '그냥 한 번'이었던 것이다.

매일 옆에 있는 그가 없다면 내 삶은 어떻게 될 것인지...

그냥 그런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냉전기도 몇 번 있었던 우리였지만 그건 다시 만날 것이라는 전제 아래 였고

뭔가를 한 없이 그리워하는 마음.. 그걸 느껴보고 싶었었나...

'혼자가 되어보고 싶었다'는 말이 아마 그 때의 내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문장일 것이다.


짖궂은 장난은 이해해도

스치는 농담으로라도 헤어지잔 말 만큼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었던 그였기에

전날에 심하게 싸웠다거나,, 내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거나

뭐 그런 납득할 수 있을만한 동기도 없이 불쑥 튀어나온 그 한 마디에 그는 내게 되물었다.

" 뭐라고? "

" 우리 그만 만나자고. 헤어지자고.."

" 그 말 만큼은 하지 말라고 했잖아. "

" 장난 아니야. "

" ....... 왜? "

" .... 그냥 "

" .......... 그게 다야? "

" 응 "

" ........ "

그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 알았어. 먼저 일어날게 "


그의 눈은 슬픔 덩어리 그 자체였다.

그의 심장은 얼마나 짓이겨지고 있었을까..

그런 가슴을 애써 달래고 내 눈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긴 시간동안 함께했던 우리여서, 내 눈빛만봐도 내 생각을 알 수 있다했는데

그걸 정확히 읽어낸 것일까..


부디 그런 일은 없길 바랬다.

너무나 터무니 없고 보잘것 없는 이유로 내가 자신을 버린 것을 알면

그의 자존심에 금이갈테니까..

이별 앞에서 하는 모든 말이 변명이 된다고 해서

아름답게 사랑을 노래했던 모든 연인들이 그 진심과 헤어짐의 이유를 감춰야만 한다는 법은 없다.

솔직하게 말을 하는 것이 사랑했던 서로에 대한 마지막 배려일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때론 우리처럼.. 너무 솔직하면 안되는 경우도 있다.

서로를 위해서..



그 날 밤, H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월요일 퇴근을 하고 집에오니 그의 짐은 싹 정리되어 있었다.

그 후, 1년쯤 뒤에 나도 집을 옮겼고

일에 쫒겨 미친듯이 살다보니

그냥 그렇게 시간은 흘러왔다. 지난 30년처럼 순식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