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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셔스
J의 주말 - 14. 용기
441 2007.03.02. 02:08

아마 J 누난 평생 모를 것이다.

내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었단 것을..

누나는 그렇게 둔한 여자이니까..


누나에게 난.. 동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처음에 다가서기도 쉽지 않아서 얼마나 용기를 내야 했는지 모른다.

누나에게 말을 붙이기위해 한 번도 입에 댄 적 없던 담배를 처음 물어보았다.

멋진 남자로 인식되어지기 위해서 말이다.

철없던 때였고 같은 남자였지만, 그 땐 그렇게나 담배피는 남자들이 멋있어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누나도 내 그런 모습을 보고 조금이나마 남자로써의 매력을 느끼지 않을까.. 하고 덤벼들었는데

된통 당했었다.

아직도 그 때만 생각하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는데

누나에게 고마운 건 그 때의 이야기를 한 번도 언급한 적 없단 것이다.


내가 누나에게 마음이 있었다는 건 H형이 누나보다 더 잘 알고있다.

형 없는 동안 누나는 내가 지킨다며 으름장을 놓았지만

군대가있는 동안 얼마나 불안했을까..

어쩌면 나때문에 누나를 본인의 집에서 머물게 했는지도 모른다.

뭐 나도 거의 내 집처럼 드나들었던 곳이라 최고의 방편은 되지 못했다손치더라도... ㅎㅎ


형과 누나가 커플이 되고난 후, 2학기엔 누나의 자췻방이 우리의 아지트였다.

형네 집에서 쌀을 가지고 오고 나랑 친구들 몇 명도 매일 같이 반찬을 사다 날라서

요리솜씨 없던 누난 우리가 해주는 걸 받아먹기만 했었고,

밤샘 과제가 많았던 건축과의 특성상 죄다 통학을 했던 우리에게

누나의 자췻방은 더할나위없는 안락한 잠자리가 되곤 했었다.


그렇게 가족같이 지내왔던 누나와 형이 헤어지자

되려 마음이 아팠던 건 나였다.

아무렴 형만큼이야 했을려만은....


혼자가 된 누나는

형대신 내가 힘이되어줘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덤덤해했다.

형은 저렇게 아픈데,, 보고있는 내가 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괴로워하는데...




누나의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난 두 달 뒤

난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했고, 2년여만인 오늘 다시 한국에 왔다.


오는 비행기 안에서 한 숨도 자지못했다.

H형 어머님에 대한 걱정과 J누나를 오랫만에 보는 설레임.

그 모든 것들이 뒤엉켜버려서 나의 눈꺼풀은 쉽게 감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누난 여전한 모습으로 나를 반겼다.

그런 누나와 아까 병원에서 보았던 H형의 안쓰러운 얼굴이 겹쳐져서

괜시리 누나에게 화를 냈다.

H형 어머님의 편지를 전해주자 누나는 쉽사리 열어보지 못했다.

누나는 그렇게.. 거친 언행들과는 달리 마음이 참 여린 사람이었다..


차를 몰고 한강둔치로 향했다.

" 누나가 무슨 결정을 하건 난 누나결정대로 따를거야. "

" ..... "

" 누나가 병원으로 가자그러면 갈거고, 가기 싫다고하면 우리끼리 술이나 한 잔 하러갈꺼고.. "

" ...... "

" 일단 배고프니까 가서 뭐 요깃거리라고 사올게 "


바깥 날씨는 쌀쌀했다.

'먹을거리'는 그냥 적당히 둘러댄 핑계거리였고

그 누구에게도 우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사람이란 걸 잘 알기에

내가 옆에 있으면 누나는 분명 편지를 집에가서 읽겠다고 할까봐 일부러 바깥으로 나온 것이다..

차에서 내려 몇걸음 걸었을까...

잠깐 뒤돌아 본 차 안에서 역시나 누나는 조심스럽게 편지를 읽고 있었다.

누난 아마 저 편지를 읽고나서 엉엉 울 것이다.



아무생각없이 얼마동안 앉아있었을까..

누가 내 등을 쳤다.

" 다 읽었어 ? "

누난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내 옆에 앉았다.

예상대로 누난 울었던 모양이었다. 두 눈이 젖어있었다.

" 배고파, 이 새끼야.. 먹을 거 사온대서 기다렸더니 여기서 이러고 쑈하고 있냐? "

" 간만에 낭만 좀 즐길려고 "

" 놀고있네. 낭만은 무슨.. 밥 먹으러 가자. "

" ...... "

" 응? "

" ..... 알았어. 어디로 모실까요? "

누난 병원에 가기 싫은 모양이다. 다시 누나의 집을 향해 차를 몰았다.

" 여기 근처에 죽이는 감자탕집있어. "

" 아싸!! 나 감자탕 진짜 먹고싶었는데~ 누나가 쏘는거지? "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간단하게 술 한 잔 걸치러간 포장마차에서

누난 아무말 없이 잔만 비웠다.

일부러 이야기를 피하는 듯하던 누나여서

나도 굳이 H형과 형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이 우리의 안주거리가되어 얼큰하게 취할무렵

누난 담배에 불을 붙이며 깊게 한 모금 빨아들인 뒤에

슬슬 이야기를 시작했다.

" .. 어머니.. "

" ....... "

" 그렇게나 안좋으셔? "

" ...... "

" ..후..... 넌 내가 어떡했으면 좋겠니? 내가 병원으로 가야하는거야? "

" ..... 아마 나라면 가겠지. 근데 누나는 내가 아니니까.. "

" 나도 너였으면 좋겠다.. "

" ....... "

" 가봐야하는 거 뻔히 알면서,, 가고 싶으면서도,, 용기가 나질 않아.. "

" 무슨 용기? "

" 아버님 어머님을 볼 용기..H를 볼 용기.."

" ...... "

" 그런 거 상관 안하시는 분들이란 거 너무 잘 아는데, 그 분들한테 너무 죄송스러워..

그래서 못가겠어.. 이제와 다시 가서 뭣해.. 그간 연락도 한 번 안드렸는데.. "

" 누나 "

" 응? "

" 죄송스러우면 더 가봐야하는거야.. "

" ... 알아. 안다구.. 근데 난 그러질 못하겠다구...

나 많이 아껴주셨다는 거 아는데, 난 그것마저 부담스러워했으니까..

내가 뭐 이쁘다고 그렇게 이뻐하셨는지.."

" 누나 그거 알어? 아버지 어머니.. 자기 자식의 여자친구로써 누나 이뻐한 거 아니야. "

" 짜샤~ 니가 어떻게 알어? 니가 그분들 맘 속에 들어갔다 나왔냐? "

" 그런 건 아니지만,, "


누나는 연신 줄담배만 피워댔다.

" 후... 기분나쁘게 듣지 말어..

누나는 자신이 얼마나 사랑이 모자란 사람인지 몰라.

아버지 어머닌.. 누나의 그 빈자리 채워주고 싶으셨던 거야. H형도... 그리고 나도.. "

" 아니. 난 나를 알아.. 너무 잘 알아.. "

" ....... "

" 나? 그래.. 니말대로 사랑이 모자라..

사랑을 받고있으면서도 사랑이 아니라고 의심했어.

우리 부모님도 아닌데 뭘 저렇게 날 신경써주시나.. 싶기도 했고

죄송한 말이지만, 그게 가식으로 보였던 날들도 많았어.

시간이 지나니까 괜찮아지긴 했지만..

난 그런 큰 사랑을 받을만한 그릇이 못되는 애였고, 그래서 H를 보낸 것이기도 했어..

난 늘 혼자였으니까.. 다시 혼자가 된다해도 변하는 건 ..

... 그래... 처음엔 변하는 게 없을 줄 알았어.. "


누난 취한 목소리로 계속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 처음이었다.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해져왔다.

누나의 아픔이 내게 전달되는 것만 같았다.


" 돌아가신 아버지도.. 어제 다녀간 엄마도.. 나 참 많이 사랑해주셨는데.

난 항상 물위에 뜬 기름처럼 가족들이랑 섞이질 못했어.

민아와의 관계때문에 소홀해졌던건지.. 그 전부터 그랬던건지...

꿈만 있으면 내 행복은 다 채워질거라 생각해왔던 날들이 날 그렇게 만들었는지... "

" ....... "

" 난 내가 스스로 야망이 큰 사람이라고 자부하면서 살았어..

스케치를 하다가,, 설계도를 그리다가 곧 죽어도 난 행복할거라 여겼어..

그래.. 꿈만 있으면 난 뭐든 다 버릴 자신이 있었어.

그래서 집안형편 뻔히 알면서도 똥고집 부려가면서 무리해서 여기까지 온거고..

높은 곳에 서고싶었던거야, 난..

그 높은 곳에서.. 그렇게 그냥 꽥 죽어버려도 그게 곧 내 행복일거라 여겼고

세상에 그것만큼 행복한 건 없을거라 여겼어.

근데 살아보니까 또 그게 아닌거야.. 내가 이루고 싶었던 꿈이란 건 참 멀리 있고

반면에 가족들, 인연들은 내 주위에서 항상 날 신경써주고 있는거야..

'아! 난 그동안 삶이 주는 소소한 기쁨들 같은 걸 다 잊고 살아왔구나'

라고 생각했던 적도 여러번 있었는데

여태 내가 걸어온 행적들.. 무심하게 지나쳤던 그 모든 것들한테

이제와 낯뜨겁게 군다는 것도 좀 우스워서,, 그냥 알면서도 모르는 척..

사랑? 그래 사랑.. 그거 느껴져도 그냥 피하려고만 했어..

부모님처럼 그런 못된 나마저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준 게 H와 그의 부모님이었는데,, "

" 그럼 난? "

" 뭐? "

" 누나, 사랑이 가족이랑 연인들 사이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잖아.

누나가 무슨 짓을 하건, 누나 믿고 누나 옆에 있을 사람 중에 나도 있단 거 알잖아.

그게 사랑이란 거 아냐? "

" 하하.. 그래 너도.. 그래.. 아.....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어.. "

" ....... "

" ....... 후....... "

" 누나 "

" 어 "

" 고마워. "

" 뭐? "

" 나한테 이런 얘기해줘서,,

존심 센 누나가 이런 얘기 하는 거 처음일텐데, 형한텐 좀 미안하지만 그 상대가 나란 사실에 기뻐.."

" 야, 예전에 H한테 이 얘기 했던 적 있는데,. H가 얘기 안하던? "

" ....... "

" 하긴 뭐.. 얘깃 거리도 안돼겠구나.. 하하 "

" ........ "

" ..... 술 다 깼다.. 가자 "

" 어디로 ? "

" 어디긴 어디야? 병원이지... "

" 정말? "

" 뭘 그리 놀래? 당연한거라며? "

" 아까 안간다는 식으로 말하더니? 허~ 이 할마씨 변덕보소~? "

" 변덕아닌데? 편지 읽고나서 바로 마음먹은거야. 아까도 말했지만 용기가 안났던 것 뿐이었어. "

" 알았어. 막잔하고 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