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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셔스
J의 주말 - 17. 못된 사랑
426 2007.03.08. 02:42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너무 따뜻한 눈이었다.

기어코 눈물이 나왔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채 고개를 돌렸다.

꾹꾹 눌러 참으려해도 한 번 터지기 시작한 눈물은 쉽게 멈추질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 후로 한 번도 울지 않았었는데,

오늘은 정말 무슨 액이 끼였나보다.. 벌써 세번째 눈물이다.

그리고 하필 H 앞에서...


H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진정되기만을 기다렸다.

울고 있는 날 위해 지금의 그가 해 줄 수 있는 건

그렇게 그냥 옆에서 아무말 없이 가만히 있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게 이별이란 것이다.

서로가 철저하게 외로워지는 것..

더 이상 아픔과 눈물을 같이 나누지 못한다는 것..


" 뭐라도 마실래? "

조금 진정이 되자 H는 말을 건넸고

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병원 로비에 다시 자리를 잡고 앉은 우린 손에 쥔 커피만 마셔댈뿐, 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졸업을 하고 취직하던 그 해,

학교 앞에 혼자 놔두는 것도 불안해 미칠 것 같은데,

혼자 도심에 보내놓으면 어디 잠이나 제대로 자겠냐며 나를 걱정하던 H는

5학년이라 수업도 얼마 없다며,,

아침마다 학교까지 버스를 타고 꽤 먼 거리를 달려야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나와 같이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다.

평일이면 퇴근시간엔 회사 앞에 항상 H가 기다리고 있었고

주말이면 밤을 세워가며 H의 설계과제를 같이 하곤했다.


그렇게 1년이 빠르게 지났고,

H가 졸업을 하고, 사는 집에서 가까운 건설회사에 취직을하게되면서

우린 거의 신혼이나 다름 없는 생활을 하게되었다..

집에선 나와 H의 결혼이야기가 오고갔고

H도 슬며시 결혼을 원하는 내색을 몇 번 보였지만

정작 나는 결혼엔 관심이 없었다.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자식을 키우다보면 나의 꿈은 없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결혼은 좀 더 생각해보자고,, 매번 대화를 피하곤 했던 나였다.


그러다가 우리 나이가 스물여덟이 되던 해..

끝내 우린 헤어지게 되었고,

난 되려 홀가분한 마음으로 일에 매진하며 조금씩 꿈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을 줄 알았던 내 삶이었다.


" 시험은 잘 쳤어? "

" 어? "

H의 목소리가 내 머릿 속으로 스쳐가는 무수한 장면들과 상념들을 깨어부쉈다.

" 이제서야 물어보네.. 건축사시험 말야? "

" 아.. 뭐.. 올해 다시 쳐야지.. "

(참고로 건축사시험은 대학 5년 정규과정을 기준으로 했을 때,

대학교육 5년에 실무경력 5년이상이 되어야 비소로 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J는 1년 늦게 대학에 간 관계로 31살이 되어서야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습니다.)

" 그래 뭐.. 한 번에 붙는 사람들이 더 신기한거지.. "

" ...... "

빠르게 흘러온 시간..

그간 사라진 내 삶의 모든 의미들을 그 때의 난 꼭 버렸어야만 했을까.

꿈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 모든 것들을 무시해도 되는 것이었을까.

꿈과 삶. 그 둘 다 잡을 수 있을만한 기회도 오지 않았었을까.

그 기회마저 내가 뻥 차버렸던 건 아니었을까..


" 담배는? "

" 어? "

" 담배는 끊었냐고 "

" ... 어.. "

" 웬일이야? 내가 그렇게 피지말랄 땐 콧방귀도 안뀌더니.. "

" ..... "

" 좀 서운한데? "

" .... 잠은 제대로 자는거야? "

" 아무렴 예전만큼 편히 자겠냐만은.. 그래도 뭐.. 부족할 정도는 아니야."

" 그럼 매일 병원에 있는거야? "

" 거의 여기서 먹고자는 편이지.. "

" 아버님은? "

" 오늘 좀 쉬고 싶으시다고 지금 집에 계셔..

너 올 줄 알았으면 안 가시고 병원에 계속 있으셨을텐데.. "

" ....... "

" 내일 아침에 오실거야. "

" 아버님은 건강하시지? "

" 어머니 저렇게 입원하신뒤론 매일 술,담배만 하셔..

어머니 없으니까 집안꼴도 말이 아니고.. "

" ... 어머니.. 많이 야위신 것 같던데.. "

" 갈 수록 통증이 심해지시는 것 같어..

작년에 쓰러지셨을 때까지만해도 집에서 간단한 진통제만 드시면 견딜 수 있을 정도였는데

갈 수록 그 빈도랑 강도가 심해지셔서..

조금이나마 덜 아프다가 가시라고 여기서 모시는 중이야..

주사도 맞고.. 마지막 진통제도 드시고 계셔.. "

" 수술로도 안되는거야? "

" 당뇨 있으셔서 수술 안된대.. "

" ........ "

" 그래서.. 처음.. 위암이라고 판정 난 순간부터..

그냥 저렇게 가실 날만 기다리고 있는거야.."


커피잔 속으로 던져둔 그의 시선은

빈 종이컵 안에서 어머니를 그릴 것이고, 아버지를 그릴 것이고 나도 한 번 그려볼 것이다.


" 어머닌 사람 삶이란 게 참 우습다고 말씀하셔.. "

" ,,,,,, "

" 그냥 잠깐 저렇게 아프시다가 곧 일어나실 것만 같은데....."

" ,........ "

" 이번 주가 고비래.. 길어도 2주를 못가신대.. "

" ..... "

" 마음의 준비는 다 했다고 여겼는데, 막상 몇 일뒤면 세상에 안 계신다고 생각을 하니까

미칠 것만 같아..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하면 어쩌나..

회사에선 일도 손에 안잡혀.. "

" ...... "

" .... 니가 지금이라도 와줘서 얼마나 기쁘고 고마운지 몰라.. "

" ..... "

" ...... 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알아. 아는데.. "

" ........ "

" ... 그냥.. 니가 이렇게라도 옆에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져와..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곧 어머니가 돌아가시는데 뭔 망발인가 싶지만,

그냥 그래.."

" ........"

" 아까 너 들어올 때, 오랫만에 너봐서 조금 떨리기도 했는데,,,,,

아.. 아니다.. 술은 니가 마셨는데 왜 내가 쑈를 하고있냐.... "

" .... "


또 다시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렀다.

비록 옆모습 뿐이었지만, H의 눈도 젖어있었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제대로 표현한 적 없던 사랑이란 것을

난 이 남자에게 말했었고 또 표현했었다.

사랑이란 감정에 따라오는 설렘, 떨림, 두려움, 질투..

그 모든 것들을 가르쳐 준 게 이 남자이고

이 남자의 사랑으로 인해 내 삶의 거친 곳에도 꽃이 필 수 있었다..


헌데,,

그렇게나 사랑했던 이 사람이 내가 아니면 안되었던 그 힘든 시간들을 혼자 견뎌내는 동안

난 무엇을 했던가..

나도 이 사람 아니면 안되는데...

내 곁엔 이 사람이 있어야하고,

이 사람 곁에도 내가 있어야 되는건데...

그 모든 걸 왜 잊은채 살아온것일까..


처음으로 내 가슴 속 깊히 묻혀있던 사랑을 알게해주었고 또 표현하게했던 이 사람..

내 마지막까지 사랑할거라던 이 사람..

우리가 너무 많은 시간을 돌아온 건 아닐까...

아니... 내가..


두 볼을 따라 소리없는 눈물만 흘러내렸다.

손을 내밀어 H의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