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앞에는 비디오 대여점이 2개가 있다.
하나는 우리 아파트와 역사를 같이해온 5년정도 된 '비디오왕자와 책공주'(비책) 이며
하나는 생긴지 한달밖에 안된 '영화마을'(영마)이다.
우리 동네는 학교와 아파트가 있어서 비디오/책 대여점의 수요가 꽤 돼는 편이다.
하지만 서로 30m 밖에 안되는 위치에 있는 터라 서로는 눈엣가시처럼 보일 것이다.
이 두 대여점의 치열한 경쟁을 보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책'은 등장이래 5년간 우리동네에 챔피언으로 군림한 강자이다.
그동안 그의 위치가 언제나 탄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3년전 등장한 무명의 도전자가 등장한 것이다.
둘의 체급은 근소하게 '비책'쪽이 유리했다.(가게가 조금 넓었다는 소리다)
반면 입지면에서는 도전자쪽이 나았다.
도전자는 아파트 단지와 학교에서 더 가까웠기 때문에
초반 유리한 고지에 올라선 것은 도전자 측이었다.
하지만 시일이 흘러갈 수록 도전자는 불리해졌다.
비좁은 가게에 책과 비디오를 계속 수용하다보니 손님이 2-3명만 있어도 갑갑해졌다.
게다가 '비책'은 부부가 같이 교대로 돌아가면서 가게를 봤지만
도전자는 알바를 사용했기 때문에 실수입도 점점 떨어졌다.
결정적으로 승부를 가른 것은 전략과 정보전이었다.
'비책'이 오랜기간 300원이었던 대여료를
2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파괴를 단행했던 것이다.
그리고 기존에 만원이상 선지불시 120%를 충전해주는 방식에서
140%를 충전시키는 방법으로 일시적으로 자금력을 모았다.
하지만 도전자 측에서는 이 사실을 알게 된것은 '비책'의 전략이 시작된지
한달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뒤늦게 같은 서비스를 감행했지만 이미 많은 단골들을 '비책'에게 뺏긴 후였다.
처음엔 대등한 싸움을 이끌어왔던 도전자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허점을 보이게 된 결과 K.O.패를 당하고 말았다.
도전자가 가게를 접고 사라지자마자 '비책'의 독점이 시작되었다.
종전보다 3배 큰 가게로 이전하여 몸집을 불렸으며
200원으로 내렸던 가격을 다시 300원으로 늘렸다.
경쟁자가 사라진 이후 가격은 다시 올렸다지만
그것은 종전 가격과 같은 것이었고 서비스의 질은 떨어트리지 않았다.
모든 책들을 일일히 비닐로 포장하여 책의 겉표면이 손상되는 것을 방지했고
5권 이상 대여시엔 한권을 서비스 하는 방법도 도입을 했다.
오랜기간 가격의 할인은 없었다.
만원이상 선입금시 140%
만화책 대여료 300원
5권 대여시 한권 무료
그렇게 평화로운 시대가 계속 이어지는 듯 싶었다.
하지만 '비책'은 역시 재빨랐다.
갑작스레 6월부터 만원 이상 선입금시 두배를 적립해주는 가격파괴를 단행한 것이다.
그리고 5권 이상 대여시 7권을 대여해 주는 서비스도 병행함으로써
7권을 대여하는 가격이 단지 750원.
110원도 안되는 가격으로 책을 대여하는 것이다.
나는 갑작스레 이런 할인 행사를 벌이는 것을 보고
무언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느끼긴 했지만 그것이 바로 '비책'의 선제공격이었던 것이다.
바로 코앞에 등장하게된 '영화마을'이라는 새로운 도전자가 나타난 것이다.
언제 그 정보를 입수했는지는 몰라도 '비책'의 재빠른 대응에는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결국 '영마'는 '비책'과 같은 가격을 책정할 수 밖에 없었고
연체료 할인 및 커피 대접을 무기로 힘겹게 싸워가고 있다.
이런 경쟁의 당사자들은 죽을 맛이겠지만 나는 즐겁다.
7권에 750원이라는 가격은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만화책을 보기에 부담 없는 가격이니 말이다.
언제나 이렇게 즐거운 싸움이 계속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한편으로는 오싹하기도 하다.
겨우 동네 두 대여점의 경쟁이 이리도 치열할 정도인데
수많은 경쟁자들과 싸워야하는 이 사회에서 어떻게 버텨야 한단 말인가?
주저 앉아있으면 도태당할 뿐이다.
이미 인생이라는 경기는 시작된지 오래다.
우리는 끝까지 달릴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