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에 칼날을 연필꽂이에다가 버려놓고 까맣게 잊은 채 지내다가,,
한달 쯤 뒤에,,, 무언가를 찾기위해 연필꽂이에 불쑥 손을 집어넣었다가
아주 세게 베인 적이 있었다.
그 날의 아픔은 잊어버린지 오래이지만
그 흉터는 내 손가락 어딘가에 아직도 남아있다.
그 당시 집엔 나 혼자였었고
그 어느 누구도 벌어진 내 살 사이로 쉴새없이 흐르는 피를
닦아주거나, 연고를 발라줄 사람이 없었다.
아마 그 때 부터였을 것이다.
아프다고 마냥 울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게 말이다.
흐르는 물로 피를 닦아내고, 고무줄을 찾아 지혈을 하고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이기엔 피가 너무 많이 나서 붕대를 감았다.
손 끝에서 심장이 뛰는 것처럼 지끈지끈 거렸고
그 따가움은 어린 아이의 눈에서 눈물을 뽑아내기 충분하였지만
혼자라는 생각때문에,, 내 손으로 다 해야했었다...
저녁무렵,
엄마가 집에 오시고,
내 손으로 한 응급처치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보여주자
엄마는 안쓰러운 눈으로 내 상처를 보시더니 다시금 깨끗하게 소독을 해주셨고
붕대도 새로 감아주셨다..
그랬던 어린 날들이 지나고,,,
동네를 뛰어다니다가 엎어져 무릎이 까진 날이면
온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던 '그 때의 나'도 지나가버렸다.
어렸던 날들에 아팠던 기억이 지금은 떠오르지 않는 것 처럼
모두가 기억 속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문득,,
한 해 두 해, 나이가 먹을 수 록
육체적인 고통은 더 이상 나로하여금 눈물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아픔'이란 단어는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만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는 뜻이다.
그 어린 날, 상처를 소독하던 알코올이
이제는 목구멍을 타고 흘러,, 쓰라린 가슴을 소독하고 있다.
언젠가
지금의 날을 '어렸던 날'이라고 말 하고 있을 즈음,
우리 할머니가 그랬던 것 처럼,,
깊이를 가늠 할 수 없는 인자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아픔조차 초월 할 수 있을까...
- 모형만들다 베인 손가락을 보며 문득 든 잡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