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기 힘겨운 아침,
5분만 더,
5분만 더,
학교갈 때 되면 어머니가 깨워주시겠지 하며 조금씩 야금야금 아침 시간을 갉아먹고 있다.
형은 서울로 교육 연수를 떠나 혼자 학교를 가야하는 상황, 귀찮기도 하고
그냥 휴강떳다고 뻥치구 잠이나 잘까 하는데
질펀하게 집전화가 울렸다.
함께 일하는 분들과 등산을 가기로했던 어머니는 약속 변경 전화인줄 알고 반갑게 받았지만,
그 목소리는 낮게 깔리고 차가운 한 남성의 목소리였다.
" 현재 서울에서 교육 연수 중인 xx네 집 맞죠? xx가 지금 머리를 좀 많이 다쳐서, 어머니만 계속
찾고 있거든요? 잠깐 바꿔드릴게요 "
어머니는 큰아들의 머리가 다쳤다는 말에 벌써부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전화를 바꾸는 그 틈으로 왜 다쳤냐고, 많이 다쳤냐고, 사고를 당했냐고 재촉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큰아들의 외침은 어머니에게 크나 큰 충격이었다.
" 엄마!! 머리가 너무 아파, 이상한 아저씨들이 나 이리로 끌고와서 막 때려, 너무 아파 무서워
살려줘 엄마 살려줘 죽을거같애 여기서 !!! "
어머니의 정적.
그리고, 어머니는 바닥에 주저 앉으셨고, 울고불고 이성을 잃은 채 소리치기 시작했다
" 아저씨 죄송해요!! 우리 아들 왜 잡아갔어요? 잘못했어요 얼마필요하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만나서 얘기해요 제발 한번만 보게 해주세요 "
한참 전 부터 일어나서 상황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나.
우리 집에도 이런 악몽이 닥치는구나.
어머니는 울고불고 전화기에 매달려있고,
아버지는 심각한 표정으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고.
나 역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
평범한 날 아침에 이렇게 우리 집안이 파탄나는구나 하는 슬픔
하지만,
난 군대에서 인적성 검사 당시 심리안정성과 정서안정성이 100%그래프를 찍어
싸이코패스 취급을 받은 사람이다.
놀라고 충격받아 말 안되는 소리에 끌려다닐 내가 아니다
곰곰히 침착하게 생각을 해 보니
사고가 나서 머리를 다쳤다 그래놓고
정작 전화를 받은 우리 형이란 작자는 이상한 아저씨들이 막 때려서 아프다고 그런다.
참고로 우리형은 태권도 5단, 유도 3단, 킥폭싱 7년차 스포츠맨이다.
키는 192를 훌쩍 넘고, 덩치도 산만하다.
그런 괴물을 누가 잡아간단 말인가.
어쨋든 상황판단이 선 후 난 형 폰으로 전화를 했고,
다행스럽게도 형은 태연하게 전화를 받았다.
왠지 무사하게 전화를 받는 형에게 너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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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되어 있던 아침을 깨워준 이 보이스피싱 사건은 정말 귀에 딱지가 앉도록 교육받은 상황이지만
정말 실제로 닥치자 정말 눈 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다.
나의 경우야, 그 사기꾼들이 미숙했는지 말의 앞뒤가 맞질 않았기에 금방 간파했지만,
우리 어머니는 아직도 멍하게 계신다.
" 어쩜 우리 아들이랑 목소리가 그렇게 똑같냐... "
돈까지 입금하는건 사전에 막았지만,
서울에서 연수를 받느라 다음주가 넘어야 오는 형,
그런 형이 걱정되어 잠 못이룰 어머니.
가장으로써 속으로만 꾹꾹 걱정을 삼키시는 아버지.
보이스피싱이 우리집에 직접 걸려온 것은 처음이지만,
단순한 [장난전화]라고 취급하기엔 한 가정에 몰고오는 폭풍이 무척이나 대단하다.
친애하는 어둠의전설 유저 여러분,
보이스피싱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An Optimist 낙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