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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세오
[pt] 추억의 맛
1442 2008.07.09. 00:53








나는 강원도 GOP에서 군생활을 보냈다.

대대 인사계원이었던 나는 업무관계로 종종 연대(상급부대)에 갈일이 있었는데.


전방에서 연대까지는 거리상으로도 상당히 멀었지만

전방은 비포장 산길인지라 비나 눈이 온날이면 가는데만 3-4시간씩 걸리기 일쑤였고

때문에 연대로 업무를 보러 간다는 것은 하루일과를 꼬박 소모하곤 했다.



오랜 시간끝에 도착한 연대에서의 볼일은 고작 한시간 남짓.

다시 산길을 헤치고 GOP로 복귀하는 것만이 남아있었는데.


연대에서 마침 연대장(연대에서 가장 높은사람*대령*2000명의 지휘관)의 진급파티가 있었고

그날 돼지를 한마리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대대장(중령*600명의 지휘관)에게 그 돼지고기를 가져다 주라는 심부름이 들어왔다.


약 지름 50cm의 고풍스런 큰 접시에 빼곡히 늘어져있는 삼겹살 수육..

애초에 식탐이 강한 나였기도 하지만.

원래 군인들은 기름진 것과 단것에 굶주려있지 않은가?


랩을 살며서 벗겨서 한점 집어먹어 보았다.





아 .. 그때의 맛은...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다.

그냥 혀위에서 고기가 녹아 내렸다.. 라는 느낌

한없이 부드러웠고 삼키기도 전에 혀위엔 단지 그 감촉만이 남아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둥근 접시를 따라 가장자리의 한줄을 먹어버린 후였다.

이제는 취사병(요리하는 군인)들에게 접시를 넘겨주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전방까지의 길은 너무너무 멀었고 나는 무지무지 배고팠다.



그 기다림의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나는 다시 가장자리의 한줄을 눈깜짝할사이에 해치웠다.


그리고 ... 또 가는도중에 한줄..


검문소에서 한줄...

헐떡고개를 넘으면서 한줄..



결국.. 우리 소초로 돌아왔을 때는 내가 1/4정도의 고기를 먹어치운 이후였다.

아니. 정말 뭐에 홀린 듯한 맛이었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취사병들에게 접시를 건내줬다.

"연대장님이 대대장님께 갖다 드리란거야. 지금 대대장실에 올려"




그랬는데...

취사병들이. 그 고기를 손으로 쏙쏙 집어먹는게 아닌가-_-;


아니.. 난 이미 고기를 꽤나 많이 먹어서 불안해진 상황이었는데.

얼마나 경악했겠는가.


"야 인마 그걸 니네가 쳐먹으면 어떻해?"


그러자 취사병 왈

"아 괜찮습니다 이렇게 많은데.. 상병님도 드시지 말입니다."



......


결국 대대장실에 들어간 돼지고기 수육은 지름 20cm정도의 접시에 야채로 장식해서 나갔다.

무서운 취사병들. 절반이상을 먹어치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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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식어버린 편의점 도시락일지라도

산의 정상에서 주변 경관을 바라보면서 먹는다면 천하의 진미가 따로 없고

최고의 식재로 최고의 요리사가 만든 최고의 음식이라 할지라도

배가 부른 사람들에겐 한낱 음식물 쓰레기에 불과할 것이다.




난 어둠의 전설이 상당히 맛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10년전 그 맛은 아니지만..

예전의 북적이던 손님들은 많이 줄었지만.



지금은 한달에 한두번 정도 게시판에 족적을 남기는 정도지만

가끔 이곳을 들를때마다 고향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을 느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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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40대가 아니냐는 질문을 들어서 답변드립니다

아직 창창한 20대에게 무슨 말씀입니까.... 하기야 30대에 상당히 근접은 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