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 - 투르크, 사면 그 이후.
초여름의 햇살이 내 늙어버린 피부를 비춘다.
40년 전, 갓 약관이었던 나는 이런 봄 햇살을 받으며 망각의 숲으로 떠났었지.
내가 탄 나귀가 끄는 짐수레는 끊임없이 덜컹거렸다. 여러 잡동사니 사이에 짐짝처럼
실려 가는 처지였지만 내 마음은 가벼웠다. 비록 금의환향은 아니지만 고향에 돌아가는게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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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케시온 항구의 밤.
창백히 빛나는 가로등의 불빛은 자욱이 핀 바다 안개에 산산이 부서져 마치 달무리처럼
부옇게 빛났다. 가로등만 드문드문 켜져 있는 어둑어둑한 밤거리는 행인이 없었다.
나는 인적이 없는 그 길을 따라 부둣가를 걸었다.
오늘따라 배편도 없는지 항구는 선착장의 돌 벽을 살짝살짝 치는 파도소리와
내 발자국 소리를 제외하곤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나는 새삼스럽게 옛 생각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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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 전.
수오미 마을 태생으로 그곳에서 기사 수업을 받은 나는 앞날이 촉망받는 기사였다.
그 단적인 예로 비록 갓 약관에 오른 나이였지만 영주님은 나를 깊게 신뢰하셨다.
그 신임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모두가 힘들다고 생각하고 임무받기를 꺼려하던,
피에트 마을 근처 숲의 몬스터 퇴치를 맡길 정도였다.
그 숲은 당시 놀들의 득세로 당시 작은 마을이던 피에트의 치안유지용 보안대로는
마을의 존속이 위험할 지경에 이를 정도였다. 그래서 상비군이 주둔하는
우리 수오미에 퇴치명령이 내려진 것이었다.
나는 퇴치군의 공동 지휘관으로 함께 임명 받은 내 친우, 둘라코스와 정예 군사 60여명을
이끌고 피에트 마을로 향했다.
정예 60여명. 놀들의 세력을 무너뜨리기에는 조금 부족한 숫자였지만 현지에서 루어스에서
온 마법사가 지원이 온다고 하였으니 무리는 아닐테다.
반나절 만에 피에트 마을에 도착한 우리는 마을 한쪽에 진지를 구축했다.
둘라코스와 나는 그 마법사를 만나기 위해 그가 기다리고 있다는 마을 회관의 한 방으로 갔다.
-
어두운 방안에 덩그라니 놓은 둥근 테이블 위에은 기름 램프만이 홀로 외로이 타고 있었다.
나와 둘라코스는 테이블 가에 놓은 등받이 없는 삼발의자에 앉아 방문을 쳐다보고 있었다.
원래는 창고로 쓰던 방이었는지 곰팡이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잔 먼지가 떠다녀
텁텁한 기운이 드는 탁한 공기가 고여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면담상대가 와서 한시바삐
이 방을 나가기를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며 문 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고 한 손에 구불구불한 지팡이를 든,
품이 넓고 발목가 까지 내려오는 짙은 남색의 로브를 입은 노인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그는 머리에 로브의 색과 같은 챙이 굉장히 넓은 고깔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광원이 아래에 있기 때문에 그의 얼굴이 램프불에 환히 비쳐보였다.
복부까지 내려오는 길고 탐스러운 하얀 턱수염과 양 갈래로 길게 자란 콧수염.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날카로운 인상을 주는 매부리코와 푸른 눈. 시체같은 창백한 피부와
잔주름들. 그런 그의 모습은 차가운 인상을 주었다.
그의 이름은 ‘에스프리’ 루딘 황제 폐하 이전부터 명성을 떨치던 멀린과 그 어깨를 나란히 하는
흑 마법에 능통한 대마법사였다. 그 명성은 실로 대단해서 대부분이 마법에 문외한인
우리 기사들도 그 이름을 모르는 자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누군가는 ‘살아 있는 전설’ 따위로 부르기도 하니, 그 명성이 얼마인지 충분히 예상이 갔다.
그는 의자에 앉고서는 입을 열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에스프리 님.”
둘라코스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는 영웅담이라면 정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영웅담을 좋아했다.
그러고 보니 ‘살아 있는 전설’어쩌고 하는 것도 이 녀석 입에서 들은 거군.
둘라코스는 수려한 외모의 가히 ‘미청년’이라고 부를 만한 미모의 청년이었다.
더군다나 앞날이 창창하고 여성에 대한 매너조차 확실하니 그는 수오미 마을의
여러 처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정작, 당사자는 어릴 때 만난 한 여인과 13년째 열애 중이지만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말이지...
“본론부터 말하지. 자네들, 저 숲에 내려오는 이야기를 아는가?”
“아니요.”
“흠...”
에스프리는 잠시간 뜸을 들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숲 깊숙한 곳에는 나지막한 산이 하나 있다고 하네.
그리고 그 곳에는 전신이 붉은 거대한 맨티스가 살고 있다고 하네.“
“거대한 사마귀라니요? 맨티스는 별게 아닌데요?”
“그건 인간보다 덩치가 2~3배는 크다고 하네.”
“예?”
내 반문에 에스프리는 말을 이었다.
“테네즈와의 전쟁 때, 테네즈가 어둠의 마물들을 이용해 루딘 폐하의 군대를 급습한 적이 있었지.
그 중에는 분명 사람 키의 3배 이상은 되는 거대한 맨티스도 있었다고 하네.”
“......”
“그 존재가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에 자네들만으론 무리 일걸세. 아마 반 이상은 목숨을 잃겠지.”
둘라코스와 나는 서로를 돌아 보았다. 우리가 그런 괴물도 잡아야하나?
“...걱정말게. 인명피해의 최소화를 위해 자이언트 맨티스는 나 홀로 처단할테니까 말일세.”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
그는 잠시 침묵으로 일관 하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자네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네. 내가 괜히 그 시절에 테네즈와 맞섰는줄 아는가?”
“!!”
우리는 순간 온 몸이 굳는것을 느꼈다.
무언가 내 가슴을 짓누르는 듯, 압박감이 느껴지고 숨을 쉬기가 곤란해졌다.
“......”
그가 헛기침을 한번하자 그 기운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하여튼, 그렇게 알게나.”
“예. 알겠습니다.”
-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어느 허름한 집 앞에 와 닿아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 집의 입구로 걸어갔다.
안개 속에서 바람이 불어와 입구에 걸린 기름등을 흔들었다.
기름등이 매달린 금속 고리에서 삐걱거리는 마찰음이 신음처럼 흘러나왔다.
그 흐릿한 흔들리는 불빛에 이곳이 술집임을 알리는 와인 잔 표시가 있었다.
나는 다듬어지지 않은 두꺼운 판자를 쇠로 엮어 만든, 마치 성문 같은 술집의 문을 열었다.
마치 별세계에 온 듯, 명랑한 노랫소리와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흐릿한 불 아래로 희미하게 보이는 테이블에는 우락부락한 뱃사내들이 연신 무언가를 입에 넣고,
커다란 맥주병을 들이키며 미친 듯 웃고 있었다.
한 동안 그곳에서 두리번대고 있자, 출구 옆의 카운터를 맡은,
야시시하게 차려입은 여인이 콧소리를 섞은, 꾸며 낸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를 찾으시나요?”
“둘라코스를 찾고 있소.”
“어머나, 둘라코스 님 말씀이신가요?”
그녀는 자신의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되물었다.
“그렇소.”
“둘라코스 님은 저 안쪽 ‘내실’에 홀로 계신답니다. 아앙~ 나 같은 여자를 두고 홀로~”
“내실?”
“카운터의 바니에게 물어보면 알려줄 거 에요. 우훗훗...”
그녀는 고혹적인 웃음소리를 내며 나에게 키스를 불어보였다.
이 여자 매춘이 부업인가? 상대를 잘 골라야지. 내 나이가 몇인데.
...그래도 타오르는 군. 흠흠.
이래저래 우락부락한 인물들 사이로 넘어갔다.
저마다 음담패설과 욕지거리를 하며 웃어댄다. 시끄러워 죽겠군.
카운터에는 거대한 체구의 대머리 남성이 앞치마를 한 채 묵묵히 잔을 닦고 있었다.
우락부락한, 터져나갈 듯한 근육을 한 선원들과는 달리 그의 몸은 보기 좋게 단련된
실용적인 근육만 붙어 있어서 날렵한 인상을 주었다.
근육의 발달된 부분과 정도를 보니 이자는 체계적인 훈련을 거친 베테랑 군인 출신일지도 모르겠다.
마이소시아 대륙 내 수군기지가 있는 뤼케시온이라면...
그나저나, 저 몸집, 저 근육 덩치에 레이스가 주렁주렁 달린 하얀 앞치마라니.
더군다나 그 아래에는 아무런 옷도 받쳐입은 것 같지가 않은데? 혹시....변태?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 네. 그거야 당신이 변...”
“네?”
그 자의 굶직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본심을 말할 뻔한 나는 잔기침을 해댔다.
“쿨럭,쿨럭 에엣취~~!!”
“괜찮으십니까, 손님?”
그자는 닦던 잔을 내려놓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크흠, 크흠 괜찮소. 그나저나 둘라코스를 만나러 왔는데, 내실이 어디에 있소?”
“둘라코스 님의 친구 분 이십니까?”
“그렇소. 내가 바로 투르크요.”
“내실은 저기에 문을 열고 들어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셔서 제일 먼저 보이는 오른쪽 문입니다.”
“음. 고맙소. 바...바...”
“바니입니다.”
“고맙소, 바니.”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칵테일이 드시고 싶으시면 언제든 저, 바니를 찾아주십시오!”
그는 상업적인 맨트를 날리며 씨익 웃었다.
그의 이빨이 반짝 빛났다.
딴에는 미소인거 같은데 그러기엔 너무...
....,,쟤 좀 무섭다. 여러 가지 의미로.
바니가 가리킨 문은 술집의 문처럼 투박한 두꺼운 나무문이었다.
문을 당겨서 여니, 바로 앞에 목조계단이 있었다.
불이 없어서 어두컴컴했지만, 저 계단 위 2층에는 불이 켜져 있는지,
문틈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나무문을 닫고 어둠속을 더듬어 계단을 올라 문을 열었다. 열어보니,
이문은 투박한 아랫 문과는 다른, 잘 손질된 고급 문이었다. 나는 그 문을 열고 2층 복도로 들어섰다.
10여 미터 남짓한 복도에는 좌우로 2개씩 문이 있었다.
나는 그중 가장 가까운 오른쪽 문 앞에 섰다.
“크흠.”
나는 40여 년 전 모종의 사건을 이유로 죄인이 되어 수오미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둘라코스는 착실히 자신이 맡은 일을 해나가 제1차 제후 반란 때 공을 세워
당시 한창 재개발이 진행도던 뤼케시온의 치안 담당자가 되어 나름 출세를 한 상태였다.
완전 거지꼴인 이런 나를 그는 과연 반겨줄까? 그런 회의감이 들고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러나 여기까지 왔는데 그럴 수는 없지.
더군다나, 내 사면엔 그의 노력이 만만찮게 들어갔을 테니...
손을 뻗어 문을 두들겼다.
“들어오시오.”
“......”
나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투르크!”
“......”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한동안 나를 보았다.
나도 그를 바라보았다.
40년 만에 만난 친구의 얼굴에는 지나간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간직 되어있었다.
그의 윤기 나던 붉은 머리는 푸석푸석해졌고 매끄럽던 그의 얼굴은 잔주름이 파여있었다.
“투르크!”
“둘라코스!”
그는 나에게 다가와서는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반갑네! 내 오랜 친구여!!”
“반갑네! 둘라코스!”
우리는 한동안 얼싸안고 재회의 기쁨을 누리다가 자리에 앉았다.
하얀 식탁보가 놓인 테이블 위에는 훈제 닭고기와 말린 과일들을 비롯한 안주류부터
고급 포도주까지에 이르는 훌륭한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우리는 40년 동안 쌓인 회포를 술의 힘을 빌어 풀어내었다.
-
“플라메라!”
에스프리의 지팡이 끝에서 빛 무리가 뿜어져 나왔다.
구름처럼 흘러나온 그것들은 허공중으로 녹아들듯 사라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쿠앙!!
“깨갱!”
커다란 폭음이 들리며 한 놀의 몸이 허공으로 튕겨져 나갔다.
우리에게 포위망을 좁히며 다가오던 놀들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죽음을 자초했다.
쾅! 쾅! 쿠쾅! 쾅! 쾅! 콰과광!!
연이음 폭음이 들리며 놀들이 허공을 날았다. 개중에 마법의 직격을 받은 놀들은
몸이 견디어 내질 못하고 온몸이 조각나 사방으로 우수수 튀어 올랐다.
그 모습은 훈련을 받고 실전경험이 있는 베테랑 군인들에게도 그리 유쾌한 장면이 아니었다.
솔직히 우리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그저 에스프리와 함께 걷다가 놀의 부대가 나타나면 에스프리의 주문 한 두 번이면 놀들은
이미 전멸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침에 시작된 놀 퇴치는 정오 즈음에는 놀의 본거지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림으로서
쉽게 끝이 났다.
“이제 끝인가?”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잔존 세력으로는 마을에 큰 위협이 될 것 같지 않군요.”
잿더미가 되어버린 황량한 놀의 마을을 수색하던 우리는 아직 숨이 붙어있는 놀들의 처리를
비롯한 여러 뒷일을 시작했다.
“어제 말했던 것 기억하는가?”
“예.”
“다녀올 테니, 이곳에서 얌전히 기다리게.”
“예.”
에스프리는 나무들 사이로 사라져갔다.
-
에스프리는 완만한 비탈길을 천천히 올랐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그 정상에 다다랐다.
그는 그곳에 서서 잠시간 바람을 맞고 서있었다.
쮜이이이-
날카로운 쇳소리와 같은 기괴한 소리가 들리고, 무엇인가 마찰하는 듯 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에스프리의 앞에 거대한 몸체를 한 붉은 사마귀 모습의 괴물이 포효했다.
그 괴물은 그 거대한 입을 놀리며 말했다.
“어리석은 인간!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
“크케케케케... 죽어라!:”
맨티스가 그 거대한 팔을 들었다.
그 팔이 최고조에 달하자, 에스프리는 입을 열었다.
“너, 바보로구나?”
“으윽-?! 크...크악!”
에스프리는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의 얼굴은 챙 넓은 모자의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푸른 두 눈은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게 시퍼런 빛을 내 뿜고 있었다.
“덤벼들려면 상대를 가려서 덤벼들라고, 거당(鉅螳:거대한 사마귀)족의 거짓후손이여.”
“크..크허! 네..네놈은!!”
“불완전한 샘플을 가지고 만들었는데 어째서 너같이 완벽한 거당의 레플리카가 만들어 질 수 있었지?”
“크윽...그걸.. 내가 알까보냐!”
“지능에 자아... 더군다나 마법적 재능까지! 정말 대단하군.
로드 급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셔면 급은 되겠는 걸? 놀라워... 놀라워...”
“크아아악!!”
에스프리리는 다가왔다.
자이언트 맨티스는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흉물스럽게 나뒹굴었다.
“네놈은 연구 자료로 좋은 가치를 지니고 있군. 크흐흐흐.... 그럼, 시작해볼까?”
에스프리는 지팡이를 들었다. 그의 지팡이 끝에 푸른빛이 넘실대며 모였다.
“무...무엇을 하려는 거냐?!”
“몰라도 돼.”
그는 지팡이를 가로로 한번 그었다.
지팡이에 맺힌 푸른 빛을 허공에 흩뜨러지며, 곧 쓰러진 자이언트 맨티스의 주변을 둥글게 돌며
점점 붉은 색으로 변해갔다.
“으...으.... 뭘하는 거지? 으...으아아악!!”
새빨간 빛으로 변한 원의 12곳에서 붉은 선이 두 가닥 씩 뻗어나갔다. 그 선들이 모두 이어지자,
그것은 12개의 꼭지점을 가진 별 모양이 되었다.
“그...그아아아아-!!”
붉은 빛은 곧 강렬한 초록빛으로 변했다.
“크아아아아아-!!”
스팟!
초록빛의 섬광이 폭발하듯 빛나며 하늘을 향해 번쩍 뿜어져 나갔다.
섬광이 지나가자, 에스프리는 천천히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의 앞에 있던 자이언트 맨티스는 온대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것이 있던 허공에는
아까의 마법진에서 원을 뺀 듯, 12개의 꼭지점을 가진 별모양의 손바닥만 한 금속질의 물건만
기분 나쁜 초록빛을 뿜으며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그가 손을 내밀자, 그것은 허공을 천천히 건너와 그의 손에 잡혔다.
“연구를 해보고 싶지만, 지금은 더 급한 일이 있거든. 좀 잠자고 있어라.
네놈의 존재를 멀린이 알아채면 곤란하거든.”
-
혹시라도 모를 전염병을 방지하기 위해 놀들의 시체를 한 곳에 모아놓은 우리는 그 시체더미에
불을 붙였다. 반 쯤 탔을 무렵, 에스프리가 나타났다.
“별일 없나, 투르크 경?”
“별일 없습니다. 에스프리 님.”
“놀들의 시체를 왜 태우는 거지?”
“위생상의 문제가 걱정되어서 말이지요. 혹시라도 모를 전염병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흐음. 그럼 저 시체들을 태우면 되는가?”
“예.”
“플라무스.”
그가 나직하게 말하자 갑자기 격렬한 불기둥이 퍽하고 솟아 올랐다.
그리고 그 불기둥이 지난 뒤에 남은 것은 놀들의 하얀 백골들뿐이었다.
“투르크 경.”
“예.”
“이것을 받게나.”
“....?”
에스프리는 초록빛의 금속성의 물질을 나에게 건내 주었다.
“그것을 가지고 나를 따라오게.”
에스프리는 놀들의 식수원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근처의 냇가로 걸어갔다.
그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나무와 그루터기, 그리고 바위가 일렬로 서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마치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군.
“테라미코!”
퍼억!
무릎 높이정도로 흙이 푹 파였다. 그는 나를 보고는 말했다.
“이곳에 그것을 묻게.”
“예.”
이게 도대체 뭐지?
나는 구덩이에 그것을 넣고 주변의 흙더미를 긁어 구덩이에 부어넣었다.
그리고 흙이 충분히 들어가자, 흙을 밟아 잘 다졌다.
....이 할아범. 이게 귀찮아서 날 불렀구나!
그 순간, 이전의 그 압박감이 내 가슴을 쥐어 눌렀다.
“...만약 이 물건에 대해서 말하게 된다면 안 좋은 꼴을 당하게 될 걸세.”
“......”
“알고 있지 않은가. 난 강하다고.”
“......”
“살인멸구(殺人滅口)만큼 입막음에 쉬운 건 없지.”
“......”
“알겠나?”
“..네...넵.”
다시 거짓말처럼 압박감은 사라졌다.
그리고 에스프리는 몸을 홱 돌렸다,
“빨리 돌아감세. 따뜻한 코코아가 그립군.”
-
숲에서 나온 우리는 에스프리와 헤어져 수오미 마을로 돌아갔다.
둘라코스와 나는 그 일로 더욱 두터운 신임을 받게 되었다.
다 처리한건 에스프리였지만, 아무도 우리말을 들어주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루어스로부터
에스프리의 이름으로 감사장까지 날아왔으니.
입막음 이었을까?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영주님의 따님의 선물 수송을 맡은 나는 남쪽 숲을 지나다가 그 상자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너무나도 두려운 나머지 도망 가버렸고,
피에트 마을 주변의 숲속에 숨어 살다가, 내 수배령을 듣고는 로톤 마을로 도주하여
그곳에서 수십 년을 거지꼴로 살아왔다.
그러나 오늘로 그런 일도 끝이다.
나는 사면 받았고, 친한 벗 둘라코스와 재회하였다.
형제들에게, 가족들에게 돌아 갈 수 있겠군.
이것으로 나의 이야기를 마친다.
“새 인생을 위하여!”
하늘 높이 들어 올린 와인 잔을 공중에서 마주친 우리는 씨익 웃었다.
아니, 이제 내 인생은 시작하려는 것이다.
새 인생의 시작...
향기로운 술 향이 내 코를 간진다.
- Turk's story End -
NPC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것들은, 어린 시절에 봤을때, 정말 멋져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감히 이러한 글을 써보았습니다.
에스프리를 아시나요? 5써클 뚜 이벤트를 진행하다보면 (아마도 대하의 금 이벤트였을 것입니다)
등장하는, 루어스 성 내부의 시약사지요. 뭐, 생긴건 멀린과 똑같이 생겼습니다만...
- 애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