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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께 보내는 편지 세오
[애루]외전2,3
540 2011.01.05. 14:37

백발의 사제의 히로인격인 리사의 입장에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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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2 - 리사의 이야기

내가 가진 기억의 가장 오래된 것은 몇 개월 전의 남쪽 숲에서였다.

그 기억의 첫 장은 하얀 머리칼의 한 성직자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 할 수 있다.
그때의 따뜻한 하얀 빛을... 그가 외운 회복 주문의 포근한 하얀빛은 찢어졌던 피부와 살을
회복시키기도 했지만, 그 당시에 혼란스러웠던 나에겐 마치 어둠 속의 한줄기 빛처럼
내 마음을 가라앉게 했다.

“괜찮아요?”

나는 그때 그의 첫 모습도 잊을 수 없다.
그는 나와 눈을 맞추고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에게 물었다.
순간,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그렇게 그의 첫인상은 ‘친절함’으로 다가왔다.
...그와 만나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나에게 있어 삶의 목표를 지시해주고 내가 이 세상에서 사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이 었다.

나에겐 기억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내 기억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그에게 발견되기
직전, 남쪽 숲에서 정신을 차린 그 순간의 기억일 뿐이었다.

기억은 과거에 있었던 일...
과거가 있다는 것은 부러웠다.
때때로 생각에 반쯤 잠겨 자신의 과거를 말하는 그의 아릿한 표정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렸고,
내 가슴 한 곳도 시큰했다.

부러웠다.
그의 의동생이라는 로메디스라는 사람이 일부나마 그와 과거를 공유한다는 것이.
나는, 그 누구의 기억 속에도 없고 내 기억 속에도 그 누구도 없었다.
이 세상에 홀로.. 나 홀로 있는 듯 외로웠다.
나도... 그와 같은 기억과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다.

내가 이 사실을 깨우쳤을 때, 나는 내가 그에 대해 호감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를 보면 기분이 좋았고, 옆에 있으면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다.
그러나 아무 말도 못 하는 자신이 부끄러워 막 되는 대로 행동했다.

-

자이언트 맨티스와의 사투를 함께한 ‘동료’들과 몇 일 간 머무르며 즐거웠다.

헤르미카는 ‘연애’라면 밤새도록 이야기를 펼치고도 다음 날 아침, 퍼질러 잠들어있는
그녀에게 연애에 ‘연’자만 꺼내면 벌떡 일어나 또 다시 밤새도록 이야기를 펼쳐나갈,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들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 연애 이야기에서
그 자신이 주인공인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랄까...

피에트 마을에서 하루를 머물렀을 무렵, 듀르크스 씨는 나를 불러 다짜고짜 물었다.

“프레이엘... 그 녀석을 좋아하는가?”
“네...넷?!”

듀르크스 씨. 그는 내 마음을 확인 시켜준 사람이었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나는 내가 프레이엘을 확실히 좋아한다고 느꼈다.
친구나 오빠로서가 아닌 한 명의 이성으로서.

나는 그 뜻을 전하고 싶었다.
듀르크스와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그의 모습을 찾았다.

그러나 정작 그의 앞에선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상한 말을 해버렸다. 이..이게 아닌데...

그 날 이후로, 그와 말 붙이기는 힘들어져 버렸다.
그는 내가 보이면 멀찌감치 몸을 숨겼기 때문이다.

난 내가 그에게 미움을 샀구나.. 라고 생각했다.
...내가 싫었다.

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우연히 로메디스를 만났다.
시간이 가며 헤르미카와 로메디스는 조금씩 가까워졌고
어느새 둘은 연인이 되어있었다. 나는 마음이 아팠다.
나도 누군가의, 단 하나뿐인 ‘소중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와는 연락조차 힘들었다.

그는 나에게 있어 기억 할 수 있는 행복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싫었다. 아무리 웃고 있어도, 과거는 싫었다.
과거는 과거일 뿐 그는 언제나 같은 반응 뿐. 기억 속의 그와 나는
사랑의 밀언을 속삭이는 연인이 아니었다.

-

다시 만난 그는 여전히 나를 피했다.

듀르크스는 어느 날 나에게 말했다. 그는 바보라고...
...나는 견딜 수 없었다.
말하고 싶었다. 내 마음을... 그렇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모든 사물, 모든 행동. 무엇을 봐도 어떻게든 그가 떠올랐고,
그의 모습이 떠오르면 괜히 우울해지기도하고, 기뻐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결혼 제안과 결혼 준비. 어느 쪽이 먼저일까?
결혼 제안. 즉 프로포즈가 결혼 준비보다 먼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결혼 준비부터 먼저 했다.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다.
만약, 프로포즈가 거절되면?.. 그러나 나는 그런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생각하기가 무서웠을 것이다.

프로포즈가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결혼 준비를 먼저 시작해버린 것이다.

열심히 돈을 모아 나홀로 드레스를 맞추고, 그의 옷을 슬쩍해 그의 사이즈를 알아내어
그의 예복을 맞추고...

그에게 고백을 하기 위해, 추억이 서린 세줄 금반지를 헤르미카에게서 사려했지만
헤르미카는 돈을 받지 않고 그저 내 손에 반지를 쥐어주었다.

...하지만, 정작 내 마음은 준비되지 못 했었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저런 행위들은 그 용기를 얻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던 것도 같다.

그리고 어제, 12월 25일, 0시.

내 생일 날이었다.
왠지는 모르겠다. 그저, 공식 문서상으로 내 생일이 그 날일 뿐이다.
...뭐, 그래도 좋았다. 매년 축제의 시작일이 내 생일날이라니. 낭만적이잖아?

케이크에 놓인 촛불에 불이 붙었다.

어둠으로 메워진 방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암흑의 바다처럼 넓어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파르르 떠는 촛불의 작은 불꽃은 미약하지만 어둠을 밀어내며,
그 케이크의 촛불 주위에 옹기종기 모인 우리들에게 포근한 기분을 주었다.

이윽고, 루시엘라 언니가 말했다.

“노래...부를까요?”

헤르미카는 딱딱 박수를 치다가 말했다.

“하낫, 둘, 시~작!”

모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 합니다~.”

과연 잘 될 수 있을까?

“생일 축하 합니다~.”

그도 과연 나를...

“사랑하는~”

그가 나를 보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비록 노래 가사일지라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그런 내 모습을 들킬까봐 고개를 돌렸다.

취중진담이라고 했던가?
나는 술의 힘을 빌어서 그의 진실을 떠보려했다.
그리고... 고백도 하려고 했다. 맨 정신으로 하기.. 힘드니까.

그러나 역시 말은 나오지 않았다. 더군다나 언니 때문에 분위기도 망쳤는걸!

쳇!!

그리고 오늘 아침-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오늘은 반드시 그에게 고백하리라 마음을 먹고는 반지 두 짝을
내 손가락에 끼웠다. 그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계속 고개를 들었지만,
나는 내 몸을 씻으며 그런 생각을 같이 흘려보냈다.

그가 사준 옷도 소중한 선물이다. 그러나 나는 좀 더 욕심을 부려서, 그의 마음을 가지고 싶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하고 방문을 열었다.

마침, 홀로있는 그가 보였다.

나는 용기를 내어 그의 옆에 앉았다.

“손 좀 줘봐요!”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 . . .

나는 그가 고개를 돌리자, 내 손가락에서 빼낸 반지를 그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웠다.
그리고 고백했다.

“에...엘씨!!”
“......”
“겨...결혼해주세요!”

잔잔한 호수에 떨어진 물방울이 그려내는 파동처럼, 그의 얼굴에 놀라움이라는 감정이 퍼져나갔다.

순간 무서웠다.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

제..제발!

“엘씨... 전... 당신이 좋아요! 당신과 헤어져있기 싫어요! 언제까지나 함께하고 싶어요! 그..그러니까!”
“......”

침묵.
거...절인가?

“리사 씨.”
“......”

제발!

그의 얼굴에 살풋 미소가 번졌다.

“사랑해요. 저도.”

그 말을 듣고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이거.. 환청은 아니겠지?
그리고 다음 순간 감정이 폭발했다. 둑이 터지듯, 찌릿한 기분이 내 온몸을 꿰뚫었고,
감정의 홍수가 일어나고, 그 파도에 내 온 몸은 휩쓸려 들어갔다.

.... 그의 품은 따뜻했다.

- Lisa's story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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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이름이 암시되기만 하였던, 프레이엘의 과거 꿈속에 등장했던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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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3. 외전3 - 또 다른 리사의 이야기

마이소시아 제국은 마이소시아 대륙의 독보적인 세력이다.
제국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여러 제후국을 거느린 한 국가,
또는 제후국과 그 제후국들을 다스리는 국가를 포함한 세력을 말한다.

제국으로 통일되기 이전에 마이소시아 대륙은 10여개의 국가로 분열되어 있었다.
당시, 야심에 차있던 ‘어둠의 전설’의 밀맹주, 테네즈는 오랜 전쟁 끝에 지친 10여개의
국가를 멸망으로 이끌어 가기 위한 방책으로 ‘루어스 조약’을 제시했다.

이 루어스 조약은 겉으로는 전쟁의 종결, 평화라는 지극히 이성적인 것이었지만,
정작 그 안을 파고 들어가면 오히려 서로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결국 서로를 증오하게 만들어 멸망을 위한 대 전쟁을 일으킬 씨앗이 될,
고도의 정치 술이 가미된 치밀한 계획이었다.

전쟁에 지쳐있던 국가들은 루어스 조약의 ‘평화’ 라는 달콤한 항목에 이끌려
서둘러 ‘루어스 조약’을 체결하고 테네즈의 계획이 거의 성공해 갈 때,
그에게 반기를 든 자가 있었다.

그는 후세기 ‘정복왕’ 이라 불릴 루딘이라는 기사였다.
루딘은 루어스 조약의 음모를 꿰뚫어 보고,
반대 세력을 모아 결국 테네즈의 야망을 분쇄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세력의 우두머리가 된 루딘은 한때 테네즈의 세력이었던 세력들의 수장으로
자신의 공신을 한 명 한 명 앉혀 제후국으로 삼고 루어스 왕관 위에 제국의 황관을 걸치고
마이소시아 제국을 건설 했다.
나라의 구조는 봉건체제였지만, 공신들의 절대적 충성은 마이소시아 제국이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로 되는데 한 몫했다.

그러나 루딘이 떠나고 그의 아들이 자식 없이 죽어 권력에 공석이 생기자 문제가 생겼다.

당시의 마이소시아 제후국들은, 선대 제후가 죽고
젊은 2대 제후가 주를 이루는 신진 세력과,
선대 제후가 통치한 기존 세력으로 알게 모르게 양분되어 있었다.

신진 세력들은 그 자신이 권력의 정점에 서길 바랬다.
그러나 그들은 공신의 아들일 뿐, 공신이 아니었으므로 상대적으로
기존세력의 명성에서 뒤처지고 있었다. 또한, 기존의 공신들은
누군가 루딘의 자리에 앉는 것을 반대하고,
각 제후국의 자치를 인정하는 방책을 지지했다.

그러나 그 방책은 권력의 정점에 서고 싶은 신진세력들에겐 방해였고
그들은 서로 경쟁관계가 놓여,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기존 세력의 주장을 묵살시키기 위해 연합했다.

그러자, 상대적으로 세력이 적었던 기존세력은 신진세력에 밀려나고,
이제는 신진세력 간에 경쟁이 심화되었다.

그들 모두 황제가 되고 싶었으나,
상대방의 권력을 증대시킬 그런 짓을 서로 용납할 리가 없었다.

그들은 고심 끝에 차선책으로 신진세력, 구세력과도 전혀 관계가 없는
전혀 정치적 배경과 능력이 없는 자를 황제로 세우게 된다.
그들은 이 황제를 꼭두각시 삼아 그들의 배를 불리며
황제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불태우며 세력을 키워갔다.
황제가 결혼적령기가 되자 그들은 또다시 차선책으로
정치적 배경이 약한, 제 3세력-정치에 관심이 없는-출신의,
오렌 국왕의 딸을 황비로 맞는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실수였다.

그녀는 곧 그녀의 타고난 매력과 뛰어난 정치적 수완,
그리고 그녀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차가운 마음'으로 정권을
자신의 손에 거머쥐게 되고, 젊은 나이에 의문사한 황제의 뒤를 이어
‘킨셰어 여제’로 스스로 등극하게 되었고, 황제가 된 그녀는
자신의 권력을 더욱 확고히 여기기 위해 제후국의 힘과 권리를 축소시켰다.

세월이 흐르자, 허울뿐인 제후의 지위는 무디어지고,
결국 제후국들은 마이소시아 제국에 흡수, 통합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지형적인 문제-섬-와 사회적인 압박-해적- 때문에 오렌만은 지금도 건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타고르라는 곳이 있었다.
예전에 테네즈의 군사적 요충지였던 타고르는 전쟁에 패배한 뒤부터
차츰 쇠약의 길을 걷더니 종대엔 그저 작은 마을이 되어버린 곳이었다.

나는 타고르 공의 딸로써 암울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대외적으로는 무너져가는 타고르와 집안의 몰락을 봐야 했고
대내적으로는 아버지의 학대에 시달려야 했다.
또한 나에게선 어머니도, 아버지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하얀 머리카락이 자랐다.
그것은 아버지의 학대와 함께, 마치 악마의 낙인처럼 나를 괴롭혔다.

어머니는 나를 낳다가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그 상심이 너무나도 크셨던 나머지 차츰 미쳐가셨다.
그에게 있어 나는 자신의 사랑스러운 아내를 죽인 살인자에 불과했다.
내가 그곳에서 죽거나 미치지 않았던 건 순전히 숙부님 덕이었다.

그 분은 아버지를 타이르려했으나 아버지는 검을 들고 혈육에게 달려들었다.
그 결과 숙부님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입으셨고 그 저주받을 자는 깊은
상처를 입고 도망쳐버렸다. 나는 숙부님의 양녀가 되어 밝게 자라날 수 있었다.

내 어머님은 세기의 미녀라고 숙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짙은 검은색의 머리칼, 크고 아름다운 눈, 우윳빛 피부, 오똑한 코, 도톰한 입술,
어머님의 모습은 초상화로 밖에 보/지 못한 나였지만, 어머님은 정말로 아름다웠고
나는 그런 어머니를 닮고 싶었다.

차츰 자라나며, 나는 어머니를 닮아갔다.
숙부님은 내가 그녀를 꼭 닮았다고 말씀하셨고, 내가 그렇게나 싫어하는 하얀 머리칼은
그 매력을 더욱 발산 시켜주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솔직히 기뻤다.

만약.
만약이란 단어는 과거의 기억에 얽매 일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들의 덧없는 변명거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만약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만약 그날이 오지만 않았더라면.
그 날만, 그 날 만 오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아마 나는 지금도 웃으며 살아가고 있겠지.
지금처럼, 죽지 못해서 사는 게 아니라,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으리라!

그 날은 하루 종일 우중충한 잿빛 비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던 날이었다.
하루 종일 습하고 어두웠던 그 날. 저녁 식사 후에는 봄답지 않게 폭우가 내렸다.

폭우가 내리는 어두운 밤.
어두움으로 가득 찬 저택.
어둠, 어둠.

빛이 없다는, 그에 대한 원초적 공포.
그는 어둠속에서 부활 했다.

그는 끊임없이 광소를 흘리며 저택의 모든 인물을, 문지기로부터 하녀, 집사
그리고 숙부님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물을 죽이고,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채 내 방문을 부수어 열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마도 무덤에 가서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의 광소와, 걸을 때마다 카펫에 찍히는 붉은 발자국, 비가 미친 듯 내리는데도 씻기지
않은 전신의 검붉은 피와 그 짙은 비릿한 혈향, 내 떨고 있는 몸에 와 닿는 시체 같은
차가운 그 손과 그 손에서 흘러내리는 뜨거운 붉은 피. 내 하얀 드레스에 묻는 그의 붉은 손자국.

나를 지켜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나를 뒤에서부터 껴안고 내 귀에 속삭였다.

“넌 정말 네 어머니를 꼭 닮았구나. 마치, 그녀가 다시 살아 돌아 온 것 같아.”

그리고.

나는 밤새도록 그에게 범해졌다.
하늘이 부옇게 밝아올 때 쯤 그는 쓰러진 나를 버려두고 떠났다.

...그는 내 아버지였다.

내 꿈은 채 피기도 전에 진흙 발에 짓이겨졌고, 열여덟 살 소녀는 그렇게 아비의 자식을 임신했다.

...나의 아이일까, 내 동생일까?

해답을 얻지 못 한 채 나는 그 아이를 땅에 묻었다.
유산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 끔찍한 상황에서도 자결하지 못한 것은 죽음이 너무나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지 못한 것이다.

지금의 내 삶엔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남아 있지 않다.


...그 아이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그 나이에 왜 그 깊은 지하 묘지 까지 내려왔을까?

내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이런 짓을 한다는 게 웃기지만, 그래도 죽어가는 것을 볼 수는 없잖아?

잠들어 있는 아이를 물끄러미 보며, 다시 상념에 빠져 들어갔다.

-Another Lisa's story End-

외전3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스토리는 어둠의 전설에는 나타나지 않은 스토리입니다.
킨셰어 여제로부터, 슬레이터 국왕까지의 이야기는 나와있지 않으니까요.

물론, 이 소설이 쓰여질때는 템플나이트, 로열나이트 그런 신종 퀘스트들이 추가 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이후 추가된 퀘스트 안에 그 사이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또한 마이소시아 제국이라는 말도 나온적은 없습니다.(아마도)
단지, 과거에 10개의 제후국이었고, 이러한 제후국들의 루어스 왕이 겸임하게 되었기때문에,
'제국'이라는 명칭으로 설정해 놓았습니다. 통일 왕국이라고 보기에는,
오랜에 있는 '오랜 국왕'이 따로 존재하니, 왕국으로 보기엔 어려우니까요.

후반에 나오는 그녀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타고르 마을이 사라졌던 이유를 나름 창작한 것입니다.
글이 완성된후에 할로윈 이벤트로 다시 부활하였지만...

긴 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곧 출근해야 합니다만... 아직도 조금더 올려야하는군요.

- 애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