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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10:55
어둑어둑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좁은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밀레스마을의 운치를
더욱 정겹게 만든다.
몇 년 전만해도 시골에 불과했던 밀레스마을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빠르게 발전해
이제는 많은 모험가들이 거쳐가는 장소가 되었다.
마을 전체가 도시풍스러운 분위기가 맴도는 것은 또 아니다.
약간 세련된 시골의 느낌이랄까? 이런 독특한 정겨움은 밀레스마을의 매력이다.
슈-
가볍게 일랑이는 바람이 좁은 창문을 넘어 밀레스여관의 2층에 자리잡은
[이아]의 머릿결을 보듬는다.
뤼케시온의 신선한 바다내음과는 또다른, 투박스럽지만 정다운 흙내음이 풍긴다.
[이아]는 매우 초조한 표정이다.
' 이제 곧 있으면 나는 기억을 잃을텐데.. 그 전에 저 남자와 어떤 얘기라도 해야하는데..
왠지 저 남자의 수상함이, 뭔가 열쇠를 쥐고 있는것 같아. '
턱-
갑작스럽게 어깨에 촉감이 느껴졌지만, [이아]는 눈하나 깜빡하지 않으며 말했다.
" 일어나셨군요 "
만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함께 겪었던 고초들과, ( 홀리쿠라노 )로 그의 몸을 구석구석
치료하면서 이미 익숙하게 느껴지는 손길이었다.
" 그렇소. 일어났소. 죽어야할 내가. 그 시간, 그 결말로 수 백 번도 더 반복해 죽던 내가
처음으로 그 시간을 넘어 일어났소 "
" 저도 시간이 얼마 없으니, 앞 뒤 안맞는 소리는 그만하시고, 내려가서 자초지종을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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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스여관의 크기는 그다지 넓지 않다.
아담한 규모에 아담한 탁들이 여러 개 놓아져있고, 그 탁들엔 모험가들이 꽤나 모여있다.
그러나 소란스럽거나 하진 않다.
마을마다 분위기가 좀 다르긴 하지만, 밀레스마을만큼 조용하고 친절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곳은
드물다.
그 구석의 조그마한 탁에, [이아]와 그 남자가 앉아있다.
[이아]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 그러니까.. [세오] 당신이 하루를 반복해서 살아왔다. 이 말씀이시군요? "
[이아]의 이런 진지한 되물음은 [세오]를 당황하게 했다.
보통 자신의 이야길 믿는 사람은 거의, 아니 아예 없고 정신병자 취급을 할 뿐인데
이리도 진지하게 되묻다니.
" 그렇소. 그랬기에 나는 그 하루의 순간 순간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오.
몇 시 몇 분에 어떤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을 수 있던것이지. 그래서 몬스터들의 습격을 알았고,
항상 같은 결과로 몬스터들과 싸움 후 죽음에 이르렀소. "
잠시 침묵.
[세오]는 물을 한모금 마시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 나는 죽음을 맞이한 뒤, 정신을 차리면 뤼케시온 주점 안에 있었소. 항상 같은 자리. 같은 음식.
같은 술이 놓여져 있었고. 내가 그 날 그 시각을 벋어나 죽지 않고 다시 깨어난것은 이번이
처음이오. 나의 반복되던 하루에 당신이 끼어든 것과 큰 연관이 있을거라 생각하오 "
PM 11:37
[이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세오]를 바라보았다.
" 당신은 [현재에 갇힌 사람]이군요. "
" 음.. 따지고 보면 그렇다고 할 수 있소. 하지만 이제 벋어난 듯 하오 "
[이아]는 앞에 놓여있는 따듯한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세오]가 시원한 냉수를 원했을 때, [이아]는 따듯한 차를 시켰다.
초조한 마음을 달래기엔 따듯한 차 만큼 좋은게 없기때문이다.
" 당신은 [현재에 갇힌 사람]이고 저는 [미래에 갇힌 사람]이니 우리 둘이 만난것은
우연이라 할 수 없겠군요 "
" [미래에 갇힌 사람]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
" 저는 미래만을 살고있답니다. 과거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아요. 12시가 넘으면 기억을 몽땅
잃어버리죠. 이곳에 시계는 없지만 저 역시 [미래]만을 반복해 살아왔기에 지금 12시 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당신의 변화를 보면, 저도 뭔가 변화가
있을거라 믿지만. 아직 정확하지 않으니 서둘러 말하도록 하죠. "
[세오]는 냉수를 들어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이아]는 [세오]가 물을 모두 마시고 컵을 내려놓을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왜 과거가 기억이 나질 않을까. 그 공허한 기분을 당신은 모를거에요. 아. 물론 당신은
다른 방향으로 고통을 겪었겠지만. 내가 했던 일. 경험했던 모든 것. 만났던 사람들까지도
단 한가지도 기억이 나질 않죠. 과거의 시간이 저장되지 않고, 오로지 앞으로만 달려가고 있어요.
저의 머릿속엔 12시가 넘자마자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 그리고 내가 [이아]라는 것.
성직자로서의 다양한 마법들. 이게 끝이에요. "
" [미래에 갇힌 사람]이군 "
[세오]가 중얼거렸다.
[이아]는 다시 한모금. 차를 마신다.
PM 11:59
PM 00:00
[이아]는 순간 12시가 되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 이대로 기억을 잃는것일까? 내 문제의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은데! '
지끈- [세오]를 만나 몬스터들의 습격을 받았을때 갑자기 나타나던 증상이 다시 [이아]를
덮쳤다. 앞에 앉아있는 [세오]의 표정이 걱정스럽게 변하는 듯하더니, 희미해지고
위 아래 양 옆으로 꼬이기 시작한다.
휘청- 깨질듯한 두통에 제대로 앉아있기도 힘들다.
[세오]가 다가와 부축해주지만, 머리가 아프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느낌도 없다.
PM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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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 어제 #4를 쓰다가 팅겨서 날려먹구.. 패닉에빠져 술을 왕창 퍼먹구 이렇게 아침에
뼈해장국 먹구 들어와서 다시 썼네요 ㅜㅜ.
기다리셨던 분들 죄송하구요. 재미있게 봐 주세요 ^^
-An Optimist 낙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