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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그녀는 내 예상 속 99.999%의 확률을 깨고, 0.001%의 확률로
내가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하기 전까지인 약 2년 반의 시간동안
그 자취방에서 그대로 살고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녀는 내가 군대를 간 뒤, 과생활을 힘들어했다.
매일 같이 다니고 챙겨주던 내가 없고, 과 애들과도 별로 친하지 않았던터라
자신을 좋아해 쫓아다니는 그저 그런 늑대들 몇 명이랑 돌아가면서
술먹고 노는 방탕한 생활을 하다보니, 졸업할 수 있는 학점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휴학을 하게 되었고, 휴학을 하고 일하고, 놀다보니 점점더 학업과는 멀어지게 되어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건 나중에 들은 이야기고, 지금 당장 나에게 죽어라 소리치고 소주 한박스를
내 머리통을 향해 날려버린 저 망할펫이 뛰어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후배를 일단 먼저 집에 보냈다.
이대로 죄없는 후배까지 죽일 수는 없다.
펫의 눈동자가 하늘방향으로 향해 있는걸 감안했을 때,
내가 아무리 예전에 기선제압을 했었더라도 쌈싸다귀를 맞을게 분명했지만.
파앙-
그녀가 달려오는 걸 보고 질끈 눈을 감은 내가 느낀것은 그녀의 포옹이었다.
그녀는 예뻣고, 아담했지만, 그 더러운 입질은 나이완 상관없이 레벨업을 지속했을 뿐이었다.
개눔색갸 연락도 안하고 학교로 족이 움직이더냐?
응.. 반갑네.
내 덤덤한 한마디에 내 가슴에 파뭍혀있던 그녀가 고개를 들며 팍 쩨려보았다.
할 말이 그게 다냐?
응. 그럼?
아- 색기 진짜. 따라와
그렇게 약 2년 반만의 세월이 흐른 후, 나는 다시 그녀의 자취방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원래 술을 마실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당황스럽고도 황당스럽게 ( 소주 한박스를 던져
난장판에 된 길은 치우지도 않았다 ), 그것도 펫과 술을 마시게 될 줄은 미쳐 몰랐다.
역시나, 그녀의 집은 난장판이었다 -_-.
청소의 개념을 모르는듯, 여기저기 옷가지들이 쑤셔박혀있고, 속옷들이 여기저기 휘날려져있고,
하지만! 내 펫은 전혀 개의치않고 발로 쓱쓱 밀어제끼더니,
앉아.
마셔.
그 두마디 후, 소주 세 병을 비울동안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뭔가 묵묵함이 어울리던 그 분위기를 나는 기억한다.
이유는 모른다. 색다른 느낌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왠지 아무말 하지 않고
서로 따라주는 술을 마시는게, 그게 그 상황에서의 최선인 것만 같았을 뿐이다.
빈병이 세 병이 되었을 때. ( 소주 한 박스의 빈병을 버리고도, 집에 소주가 남아 있다는게
나는 놀라웠다 )
그녀는, 날보고 활짝 웃었다.
자구 가
펫과 술을 마실때면 가끔 펫은 내 무릎을 베고 누워 애교를 피웠었다.
주인님- 자구가셔용 > < 펫 혼자 자기 무셔무셔 아 무셔
2년 반 전의 그 모습과 겹쳐보이는 그런 앳되고 예쁜 웃음은 여전했다.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녀가 자고 가라는 말을 했을 땐, 그녀의 기분이 매우 우울해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거나,
또는 내게 털어놓고 싶은, 아주 어려운 말이 남아있기 때문이라는걸 난 알고 있었다.
자구갈꺼지?
내 끄덕임을 못봤는지 한번 더 묻는다.
나는 끄덕임 대신 말했다.
소주나 더 갖고 와.
-An Optimist 낙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