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의 맑고 명랑한 풍경과는 달리, 피엣 던젼 내부는 축축하고 눅눅하고 어두웠다.
아무리 돈때문이라지만.. 정말 내키지 않는일인데. 마시와 람다의 얼굴을 보니 역시 표정이 살짝
굳어있다. 긴장한걸까.. 아니면 그냥 화장실이 급한걸까.
뭐, 긴장한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는것도 아니고..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으려면 너무 긴장하지
않는것이 좋지 않을까? 나는 두명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말을 꺼냈다.
"마시, 마시는 왜 혼자서 여행을 하고 있었던거야?"
"응?.. 아. 그거야 뭐.. 수련을 한다는 의미도 있고 말야. 한곳에 눌러붙어 있는 성격이 아니거든 난."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에 4써클에 도달한거야?"
"그건 수련 방식의 차이지. 자기의 실력보다 낮은 상대와 싸워서는 제대로 된 경험을 쌓을 수 없거든.
목숨을 걸고, 자기보다 강한 상대와 싸우는것이 실력을 가장 빨리 키우는 지름길이 아닐까."
"으응.. 그렇구나.. 그럼 나같은 성직자는 어떻게?"
"너같은 경우에는, 몬스터와 직접적인 전투를 할 일은 없을테고.. 전투 경험을 쌓고 싶다면 너와
실력이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경험을 쌓아야 겠지. "
" 헤에.. 그렇구나. 그럼 레오가스터 님도 ?"
"당연하지. 대륙 곳곳에 레오님이 만들어놓은 전설같은 일화들이 많이 있지. 시간이 난다면, 천천히 ...
얘기해줘도.. 될거 같은데 말야. "
어라? 어째 말 꼬리가 흐려지네. 마시의 두눈이 총총히 빛난다 싶었을때, 람다도 조용히 자신의
무기인 월단검을 꺼내들었다. 응?
"앞쪽 모퉁이에 몹들이 숨어 있어. 숫자는 대충 13 마리 정도. "
람다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13 마리라고?.. 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람다의 말을 들은 마시는 주먹을 불끈 쥐며 앞으로 성큼성큼 나간다. 람다도 그에 뒤질세라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리고 골목 모퉁이를 한바퀴 도는 순간..!
퍼벅!!
와--- 개구리?.. 저렇게 큰 개구리는 처음봐! 아니, 개구리 자체를 처음 본다..!
샤-샤!
혓바닥을 낼름거리는 꼴이 예사롭지가 않은데. 마시와 람다는 괜찮을까?.. 어어?
마시와 람다의 표정을 돌아보니 .. 뭐야- 웃고있어?
"하, 이거 .."
"조무라기들이군. 아직 더 내려가야 한다 이거지."
마시의 손이 빠르게 움직인다 싶더니, 벌써 앞쪽의 개구리를 붙잡고 있다. 양손으로 붙잡고 빠르게
밀쳐내면서, 발로 차고 안쪽으로 뛰어들며 종전에 봤던 그 선풍각을 날린다.
피핏!! 퍼버벅!! 콰곽!!
왼쪽에선 람다가 월단검으로 개구리들을 공격하고 있다. 손이 안보일 정도로 빠른 찌르기!
와-와!.. 굉장해.. 뒤에서 쿠라노만 하고 있는 내가 진짜 부끄러워 지는데..
마시와 람다는 벌써 마지막 개구리를 향해 달려들고 있다. 3분도 안걸렸군. .. 하지만 왠만한
2써클들은 여기서도 고전하지 않았을까 ..?
람다와 마시는 마지막 개구리를 놓고 다투고 있다.
"내가 먼저 때렸어!"
"무슨소리세요? 제가 표창날리기로 먼저 때린거 보셨잖아요."
"크와악!! 이자식이!"
"쳇!"
하.. 저 둘은 언제쯤 사이가 좋아지려나..
아니, 싸울때의 호흡은 그렇게 척척 잘 맞더니 말야.
앞날이 걱정된다.. 정말.. 어휴~
... .... ....
... .... ....
첫날, 던젼에서의 밤은 던젼 관리인들의 건물에서 지내기로 했다. 이런곳에 건물을 지어놓으면 몹들의
공격을 받지 않을까 싶겠지만, .. 신전의 성직자들에 의해 축복을 받은 건물이라 몹들이 섣불리
다가갈 수 없단다. 축복을 내릴정도의 성직자들이 피에트에도 있었던걸까?
짐을 풀고,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있던 내 옆으로 마시가 털썩 주저앉는다.
"킁킁.. 뭐야- 꽤 좋은 냄새가 나네?"
"운디네에 있었을땐 오랫동안 주방에서 일을 했었으니까. "
"헤에. 그래?.. 역시 팀에 여자가 있으니까 편하긴 하네. 내가 루어스 대평원에서 수련할때엔 남자들만
우르르 몰려갔었는데, 정말 식사때마다 굉장했었지. 나쁘진 않았지만 .뭐.. 이런곳까지 와서 제대로된
식사를 할 수 있다는건 멋진데?"
"그래?.. 이제야 도움이 좀 되는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네."
후후.. 걱정했다구. 내가 도움이 됐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던것 같으니까.
그렇게 룰루랄라 만든 요리를 가지고 식사를 끝낸 후, 우리는 조용히 각자의 모포 속으로 들어가서
잘 준비를 했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것이 좀 아쉬운데..
대평원에서 수련한다는건 어떤느낌일까? ..
"마시"
"... 응?"
"자고있어?"
"아니."
"나, 이번 여행.. 왠지 불안했어. 혼자서 로톤에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많이 했었고.. 하지만
마시나 람다가 곁에 있어줘서 정말 든든해.. 고마워.."
"뭘.. 세상은 혼자서만은 살아갈 수 없는거거든."
"무슨 얘기야..?"
" 누구든지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얘기지. 신이 아닌이상은, 누구나 한가지씩 모자라는 점이 있기
마련이고..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보완해주면서 자신을 완성해 나가는거지. 사람이 혼자서 살 수
있었다면, 진작에 이 세계는 멸망했을걸. 뮤레칸에 의해서든, 인간끼리의 전쟁에 의해서든. "
"움.."
옆쪽 모포에 얼굴만 내밀고 있는 람다가 뒤척인다. 헤, 자는척 하면서 람다도 다 듣고있잖아?
"만남이 있기에 여행은 소중하다. .. 뭐 그런 얘기를 하셨지. 우리 사범님께선."
"여행이라... "
나의 여행?.. 특별한 일은 없었다. 단지 죽을 고비를 한번쯤 넘기고, 마을 하나를 거쳐왔을 뿐이다.
지금은 이렇게 던젼에 누워서 노닥거리고 있지만..
대륙을 횡단하며 여행하는 사람들이 보면 나정도는 우습겠지. .
하지만, 정말 생각도 못했어.. 내가 이렇게 바깥으로 나와서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있을 줄이야.
로톤까지의 여행이 끝나면.... .. 레오님께 부탁해서, 나도 유랑 수련이나 해볼까...?
하...... 어쨌거나 이번 일은 끝마쳐야지..
마시와 람다의 숨소리가 점차 잦아든다.
잠든걸까.
별이 보고싶다.
피에트 던젼에서의 첫날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
12부에서 계속 [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