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웠어... 그는 차분한 표정으로 그냥 그 하프를 연주하기만 했거든. 그런데... 몬스터들이 하나
둘 씩 죽어서 쓰러지고 있었단 말이야.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지. 노래로 공격을 한다니. 원, "
가만히 고개를 떨구고 람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마시는, 슬며시 고개를 들더니 끄덕이며 말했다.
"아니.... 들어본적이 있어. 나같은 무도가들은 수행 하면서 별의 별 사람들을 다 만나보게 되거든.
분명, 서쪽 대륙 어딘가에서 "음악" 을 통해 상대방을 공격하는 기술이 있다고 들어 본적이 있어.
하지만 그건 실제하지 않는 전설같은 이야기 인줄만 알았는데."
"아무튼, 그렇게 몬스터를 한바탕 쓸어 버리고 나서는, 또 다른 곡을 연주했는데 이번엔 차분하고
은은한 멜로디가.. 마치 레퀴엠(Requiem:진혼곡) 같았어."
"몬스터를 죽이고, 다시 몬스터를 위한 음악을 연주한다고.."
"응.. 아주 희귀한 광경이었지."
어.. 그러고보니, 내가 아직 운디네 수도원에 있었을때도 그런 비슷한 노래를 들은적이 있지.
거기다.. 그 노래 부르는 사람에 대한 내 다른 기억을 일깨운건, 마시였다.
"우리가 우드랜드를 지나 올때, 그런 노래 부르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지. 아니 만났다기 보다는 잠깐
스쳐지나갔다고나 할까. "
"옷, 그럼 아는사람?"
"아니. 전혀 몰라.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건, 우리를 도우려고 하고 있다는거야. 왜지..?"
"... 내가 그런 질문에 대한 사부님의 가르침을 한번 받은적이 있는데. 일단 붙잡아 놓고 물어보자구."
"좋아! 그럼 출발이다.!"
대륙의 각 여관을 방랑하며 노래를 주 직업으로 삼아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그들의 이름은 음유시인.. 간소한 악기만을 걸치고 이 마을, 저 마을을 유랑하며 그들의 노래를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겨울 밤, 여관에 모인 사람들을 위해 전설적인 루딘왕의 노래를 들려준다든지
모험심 넘치는 꼬마들을 위해 지크프리트의 탐험기를 들려준다든지 하는.
음유시인의 존재는 마을에서 무료한 삶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겐 꽤 큰 오락거리이자 유흥물이었다.
하지만 노래, 그 자체를 무기로 사용하는 사람은 여지껏.. 대륙에 없었다.
누굴까, 나의 여행을 평행선상에서 뒤쫓고 있는 그 사람은..?
아, 뭐- 만나보면 알 수 있겠지.
그렇게 우리 일행은 다시, 그 심연의 바닥으로. 피에트 던젼의 최 하층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옮기기
시작했다.
.. .. ..
.. .. ..
투둑.. 반나절 정도 걸어 내려갔을까?.. 해가 없으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조차 알 수 없군.
드디어 우리는 벽면에 거칠게 휘갈겨져 있는 10-1 이라는 표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지막층 이구나. 이곳 어딘가에, 뮤레칸의 그 부하라는 녀석이 있다 이말이지..!
그리고, 그 악기를 쓰는 남자도. 아니, 남자인가? 여자인가?
10-1 이라고 적힌 벽을 조심스럽게 만져보던 마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거, 너무 쉽게 내려온것 같지 않아? . 내려오는 도중에 만나는 녀석들은 다들 조무래기였고.."
"응..? 그런가?"
"누군가 일부러 "길" 을 치워놓은것 같은 모양이군. 역시 그 노래부르는 녀석?"
"우리를 도와주고 있다면 그걸로 괜찮은거 아니야?.."
"이유도 모르는 도움 따위는 바라지 않는게 좋아. 흥, 무슨 속셈이야.."
투덜거리는 마시를 애써 다독이며, 우리는 우리의 임무를 끝마치기 위해서 10 층 곳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10층 내부에는 탁한 공기가 가득했고, 곳곳에 거미줄이 쳐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청나게 어둡다. 우리가 가져온 큰횃불이 있긴 하지만, 만약에 불이 꺼진다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겠는데. 마시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는지, 아까보다 더 부드러운 손길로
횃불을 꽉 붙잡았다. 와--- 정말 음침하네.. 이런곳에서 무슨 수련을 한단 말이지?..
끝없는 어둠과 공포, 절망만이 가득한 이 던젼의 최 하층에서... 역시 뮤레칸의 부하 녀석이 살만한
곳이야.. 덜덜.. 바로 그때.
"키에에에엑!!"
갑자기 들려오는 엄청나게 찢어지는듯한 괴성!!
그 괴성은, 던젼의 벽면을 타고 울려 메아리처럼 다시 돌아왔다. 키에엑 키에엑 키에엑~
"100 미터 앞!! 몬스터다!"
"뭐?.. "
보이지 않아! .. 저 멀리서 번쩍 번쩍 하는것이 홱! 홱! 움직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밤눈이 좋은 람다가
그것을 먼저 발견한 모양이다.
"앞으로 50 미터! 곧 다가온다!"
"새디, 뒤로 물러나! "
퍼억!!
"컥..!"
마시로부터 큰 횃불을 넘겨받은 내가 , 둔탁한 소리가 난쪽으로 횃불을 비추자, 곧 거대한 크기의
몬스터가 우리의 눈앞에 있다는것을 알 수 있었다. 마시의 두배?세배?.. 어..엄청난 크기다..!
"제...엔장..! 이녀석, 빠르다!"
처음의 그 둔탁한 소리는 마시가 공격받을때 난 소리였던 모양이다. 아..아악..다리가 후들거려.
조용히 단검을 움켜쥐고 있던 람다가 그 몬스터의 옆을 찔러 들어간다. 콰각!! 캐엥~
"카..칼이 들어가지 않아?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다!"
람다의 놀란 목소리, 그리고 뒤를 잇는 마시의 쥐어짜는 목소리!
"젠장, 이녀석! 뮤레칸의 부하답게, 만만찮다 이거군?"
갑자기 마시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상의를 벗어서 던져버리고... 으엑?.. 마시!
지금 이 상황에 ... 무슨... 짓을..
그 몬스터가 주는 엄청난 공포 때문에, 마시가 혹시 미쳐버린건 아니가 하고 의심하던 나는 곧 내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마시의 몸이 엄청나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근육?
"쿠하!! 나를 화나게 한건 진심으로 너의 실수였다는걸 알려주마. 철포삼! "
투둑! 근육에서 희미하게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리고, 연이어 마시는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기
시작했다.
"금강불괴!"
콰각!! 쿠지직.. 마시의 몸이 불그스름해 진다.
"경신공!"
채앵.. 푸르스름한 기가 마시의 몸으르 감싼다.
"미종보법!"
투둑! 순식간에 마시가 그 몬스터와의 거리를 좁혀 들어간다. 타탓! 그리고 종전의 그 선풍각!
쿠과가가각! 퍼버벅! 흠칫 놀라며 그 몬스터가 물러선다. 와우.. 마시 박력있어!
마시는 한걸음 물러선 그 몬스터에게로 다시 한발짝 접근하며, 강력한 권을 날렸다!
"발경!"
찌이이잉-!
한순간, 그 몬스터의 표정이 굳는가 싶었더니,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임이 멈췄어?
"후아- 이건 한순간에 기를 응축시켜 상대에게 쏘아 내는 기술이지. 움직일 수 없을걸?"
"키기기긱..!"
"자, 그럼 끝을 내 보실까."
"기.,, 다려라.. 인간..! 키긱!"
어라? 말도 할 수 있나보네?
마시도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아니, 몬스터에게 하는 첫 인사로는 어떤게 어울릴까.
"뭐-야.. 너 말도 할줄 알아?"
"키킥.. 당연..하지.. 뮤레칸님의 .. 힘을 .. 키킥... 받았거든. "
"뭐 , 얘기가 통한다면 다행이지만. 너 때문에 사람들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제발 조용히
네놈이 살던곳으로 돌아가주면 고맙겠는데."
"캨! ..건방진..킥.. 인간...같으니라고. 키긱.. 감히 누구더러..킥.. 떠나라는 것이냐..키긱"
"키긱 거리지좀 마. 거슬리니까. 얌전히 사라지기 싫다면, 내가 덜 얌전하게 없애주지."
"키에에에엑!!"
갑자기 그 몬스터가 괴성을 다시 내 지른다. 아,?
횃불을 들어 올리자, 람다의 차갑게 얼어붙은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람다는 덜덜 떨고 있었다. 람다의 눈동자가 커지며, 입에서 나지막하게 절망적인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 ... 같은녀석, 숫자는 열 여덟 정도..사방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군.. 우리 완전히 포위됐어."
으에에에? 뭐야- 한녀석이 아니었어?!
14부에서 계속 (내일) [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