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겹게 이야기를 끝마친 아빠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혀 있었다. . 그리고..
그동안 엄마와 나를 버리고 간 아빠에 대한 내 오해도, 눈녹듯이 사라졌다. 아빠는...
내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아니 대신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떠난거였어..
"흑... "
터져나오는 울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난.. 정말 철부지였구나...
조용히 내 곁으로 다가온 아빠는 내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었다. 그리고 나는 16 년동안 그렇게
그리워하고, 그리워하다 결국에 미워하게 된 그 아빠의 품에 가볍게 안겼다.
그리고 다시 터져나오는 울음.
"으아앙 .. 흑..흑....... 아빠... 미안해요.. 난 ... 흐윽.. "
"새디..."
아빠는 부드럽게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고 나는 아빠의 품 안에서 점차 차분하게 기분이 가라
앉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울면 안돼, 난..
울지 않는 강한 아이니까..
감격의 부녀상봉을 지켜보고 있던 레오님과 로톤 주임 성직자님은 입맛을 한번 다시더니 기침소리로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러자 나를 포근하게 안고 있던 아빠가 나의 어깨를 잡고 덥썩 떼어내더니,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 새디, 내말을 잘 들어야 한다.. 이건 내 목숨보다 더 중요한 일이란다. 이제 곧 300 년 주기로
돌아오는 “뮤레칸의 만월(滿月)” 이 다가오고 있다. 너도 알다시피 최근에 몬스터들이 굉장히 흉폭해진
일이나, 본디 사람들 공격하지 않는 요정들까지 몬스터화 되어 버린건 이 뮤레칸의 만월 시기가 점차
다가오고 있기 대문이지..
앞서 말한것처럼 이 뮤레칸의 만월때 뮤레칸의 현세 강림을 저지할 수 있는 방법은 그 달의 마력에
대항하는 “신의 악보” 즉 『천상의 악보』를 누군가 연주하는 수 밖에 없단다. ... 나는 그 수련을 위해
16 년간을 서쪽 대륙에서 방황했지만.. .. 난 신의 악보의 그 거대한 신력에 짓눌려 한 소절도 제대로
연주할 수 없었다.. 선택받은자와 그렇지 않은자의 자질 차이였겠지. 알겠니?.. 이제 그 신의 악보를
연주해서 대륙을 구할 사람은 새디 너밖에... 없다.. "
굉장히 긴 말이었지만 나는 정확하게, 빠지는 의미 없이 그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즉, 말하자면.. 이아님의 혼이 깃들어 있는 내가.. 아니 나만이, 그 악보를 연주할 수 있다는 얘기.
그리고.. 그 악보는... 연주를 하게 되면 연주자 자신의 목숨을 그 댓가로 하게 된다.
" 그.. 그런가요.. 그럼 난 죽는건가요?"
" ... 난... 미안하구나.... 못난 아빠가 .. 너를 지켜주지도 못하고..."
하.. 그래.. 내가 대륙을 구할 사람이라는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네.. 난 노래도 잘 못부르고
(항상 찬가를 부를때 나만 박자를 틀리게 부른다든지 하는..) .. 거기다 막상 죽게된다고 생각하니
허무하구나.. 대륙을 여행해 보고 싶었는데.
아빠와 내 얘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로톤의 주임 성직자님은 얘기가 거기까지 진행되자 다시 기침
소리를 한번 내더니, 아빠의 말에 이어 얘기하기 시작했다.
" 새디님.. 잘 들으시게. 어쨌거나 한명의 희생으로. 대륙이 위기에서 구해질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숭고한 한명의 희생에, 존경과 찬탄을 아울러 보내면서도.. 그 선택받은 자의 사명을 헛되이 할 수는
없는거라네. 해 주겠나? .."
" .... 저... "
"우리는 새디님에게 이 일을 강요하진 않아. 하지만 대륙 전체의 생명을 대신해서 부탁하고 있는
거라네. "
" 할게요... 제가 하겠어요.. "
내가 그렇게 차분하게 대답하자 로톤 주임 성직자님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두 손을
감싸쥔 채 울듯한 표정으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으아- 역시 신실한 신의 지팡이 이시구나.. 팔짱을 낀 채로 묵묵히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던 레오님은
아빠와 나의 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새디"
" 네.. 레오님"
" 다 큰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을.. 아직 세상을 더 보고 배워가야할 어린 너에게 맡긴다는 것이
가슴 아프구나. "
" ... ... "
" 그래서 나는 조금이라도 네가 사람들을 만나서, 세상이라는 것을 둘려 봤으면 해서 혼자 따로
로톤으로 보낸거였단다. 편지의 내용은 아무것도 아니야. "
"으에... 하지만 이 편지를 저는 정말 소중하게 보관해서 왔는데요.. "
"그래, 잘했다.. "
레오님이 밝게 웃으시면서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 에.. 눈가엔.. 눈물이..
"... 그 표정... 정말 네 엄마를 닮았구나. 써니는 항상 난처한 일이 생기면 그 표정을 짓곤 했지. 후.. "
"엄마가... 그런데 엄마는.. 어디로 가셨죠..?"
"로그스가 떠난 이후에, 로그스를 찾아 떠나버렸지. 지금도 대륙 어딘가에서 모험을 계속하고 있지
않을까?"
"아..아..."
머릿속이 복잡해서 잘 정리가 안되는걸. 휴.. 그나저나 악보를, 연주해야 한다는 건데..
문제는 난 악보도 읽을줄 모르고 노래도 못부르는데다가, 연주할 수 있는 악기도 아무것도 몰라.(글썽)
이렇게 대륙은 멸망하는 것일까 ..
내 표정을 귀신같이 읽어낸 레오님이 다시 싱긋 웃으며 다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말했다.
"괜찮아, 악보를 연주하는데 필요한건 아무것도 없어. 사실 악보 자체에도 이렇다 할 뚜렷한
악보로서의 단서도 나와있지 않아. 다만, 선택받은 자만이 그것을 '느끼고' '표현할' 뿐이지. ... 몸 안에
잠재된 신의 힘을 깨우는 것이랄까. 그 전에 체력적인 대비는 해 둬야겠지만.. 악보를 연주하는 도중에
쓰러져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아. "
그런데, 정말 레오님은 내 표정만 읽고 그런것까지 알아낸거야?. 독심술이라도 쓰는걸까?
아빠는 레오님의 말이 끝나고 나서 다시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아빠의 심장이 쿵쾅 쿵쾅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몸도 조금씩 떨리고 있어..
"이제, 떠나지 않으마.. 사라지지 않겠어.. 그러니 마지막까지 함께 하자꾸나.. "
"아빠.."
하아, 이거. ... 으응-! 아차차.. 궁금한게 몇가지 있는데...우웅
"아참, 저어.. 아빠. 그럼 제가 운디네 수련원에 있을때.. 노래를 부른게 아빠 셨어요? 그리고,
우드랜드에서 우리를 구한것도... 피에트 던젼에서 중간의 몬스터들을 퇴치한것도.. 모두 아빠가..?"
" 그래, 사실은 너를 만나서 함께 로톤으로 오려고 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서, 주변을 맴돌뿐이었지.
이제 너를 만나고 나니 그때 내가 얼마나 바보같고 겁쟁이 였던가 잘 알겠구나. 참 밝은 아이다.. 네
엄마 써니 처럼."
"하아.."
으응.. 왠지 칭찬 들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은데..헤헤.. 아빠의 품은 .. 참 따뜻하구나.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기분.. 휴우 , 아앗..?! 마시들을 잊고 있었어!
"아..앗!! 그러고보니 제 친구들은 어떻게 되는거죠?"
" 너희 친구들이라.. 같이 온 동료들 말이구나. 신의 악보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북의 우드랜드
남서쪽에 있는 산맥으로 올라가야 한다. 산맥의 정상에 3백년전에 쓰던 제단이 있지. 그 산맥의 중간
부분부터는 그 제단의 힘에 의해 자격이 있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게 돼 있지. 전사,도적,마법사,성직자,
무도가 의 각 5 직업이 그룹을 맺은 상태에서만 들어갈 수 있게 돼 있어..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구나.
사실 연주에 필요한건 성직자 뿐인데.. 특히 고대 문헌에서는 무도가가 중요하다고... 나와 있었지만.
힘들때 만난 동료들이니.. 함께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 "
아아.. 그럼, 내가 신의 악보를 연주하러 가는데.. 같이, 마시와 람다들이 .. 가는거구나.
그래서 였나, 레오님이 나를 혼자서 여행하게 한 것은..
"알았어요! 분명 마시와 친구들은 저와 함께 가 줄거에요. 지금 걔들은 어디에 있나요? 빨리 만나고
싶어졌어요.. 이제 함께 웃고 떠들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 중앙 홀에 모여 있을게다. 전국에서 너의 모습을 보러 온 성직자들과 함께 "
하아.. 왠지 부끄러운데.
나는 한껏 기분이 고조되어, 두근거리는 마음을 채 진정시키지 못한채 중앙홀로 향했다.
26부에서 계속(내일) [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