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유우웅... 가을의 바람인데도, 산맥으로 가는 길은 꽤나 추웠다. 다들 이동이 간편한 복장을 하고
있어서 추워보여.. 하지만 마시만은 속살이 훤히 보이는 도복을 입고도 팔팔해 보이는데..
"마시, 춥지않아?"
"응? 춥거나 덥다는 감각은 이미 초월했지. 이정도 바람은 내게 산들바람 정도로밖에 안느껴져."
와..? 무도가 라는 직업은 정말 대단하구나.. 인간의 감각마저도 이성으로, 또 그것을 제어하는 기술로
극복 해 내다니. 새삼 그런 마시에 대해 존경심이 마음속 깊은곳에서 올라오고 있을때, 푸른색 로브를
푹 뒤집어 쓰고 있는 드뉴씨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더 날씨가 험해질겁니다. 해가 지면 정말 살을 에는 추위가 닥쳐올테니.. 지금 체력을
비축해 두시는게 좋아요."
"으엑.. 그정도에요?.. 그럼 우리는 언제 정상의 제단에까지 도착하는거죠..?"
"오늘 뮤레칸의 만월이 북극성과 제단 사이에 수직으로 뜰 때, 즉 자정 전에는 제단에 올라야 시간에
맞춰 신의 악보를 연주할 수 있을겁니다. 부지런히는 걷지 않아도 되겠지만 일단 빨리 올라가서
준비를 하는쪽이 더 나을테죠.."
"후... 아.. 이렇게 험한 산인데.."
"그리고, 중요한것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만.. 산맥을 오르는 도중에 어떤 뮤레칸의 부하들이
습격을 해 올지 모릅니다. 항상 무장을 풀지 말고 긴장을 해 두십시오.."
"지금이 바로 그때인것 같은데. 전방에, 몬스터... 숫자는 대략 여덟 정도군."
눈이 가장 좋은 람다가 산맥 기슭쪽에 매복하고 있던 몹들을 포착해낸 모양이다. 길은 하나뿐이고,
저들과 만나는건 거의 백 퍼센트..? 그럼..
" .. 첫 전투로군."
마시가 조용히 얘기했고, 그 말에 나머지 사람들은 조용히 자신의 무장을 점검하며 앞으로 계속
걸어갔다. 우리가 저들을 먼저 발견했지만, 이정도 거리라면.. 이제 저 녀석들도 우리를 발견했겠지.
조금 더 접근하자 그 몬스터 무리의 모양이 확연하게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배틀해머를 한 손에 쥐고, 가죽으로 만든 끈을 엑스 자로 가로 맨 ... 읔..? 얼굴은 돼지- 잖아?
"오크 가드인가. 귀찮은 녀석들인데. ..."
람다가 자신의 단검을 뽑아들며 내뱉듯이 말했고 - 오크라는 단어를 내 머릿속에서 조합해 보던 나는
그 녀석들의 모습과 내 이미지가 전혀 다른것을 깨닫고는 람다를 향해 조용히 물었다.
" .. 저..저기 람다.. 저녀석들 오크?.. 내가 알던 녀석들보다 훨씬 큰데?"
"응- 오크 무리들 중에서도 계급이 있는데 ... 일반 노동을 담당하는 오크들이 있고 전투를 담당하는
오크 워리어들.. 그리고 그 워리어들을 통솔하며 오크 부족 전체를 이끄는 오크 가드가 그 위에 있지.
뭐, 말하자면 오크들의 우두머리 정도 되는놈들 이랄까. 귀찮아졌어, 아무래도."
" ... 이곳에서 나타난것을 보면, 보통의 오크 가드들은 아닐겁니다. 필시, 뮤레칸의 영향을 받아서..
어떠한 형태로든 그 힘을 받고 있는 녀석들이겠죠.. "
드뉴씨가 람다의 말에 덧붙여 주었고 .. 우리는 그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드디어 오크 가드들과
정면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어라..? 근데 저녀석들 무장은 하고 있지만... 전혀 공격할 기세가
안보이는데. 우리 일행이 그렇게 조심스럽게 그녀석들의 동태를 살피던 중에, 그 무리들 속에서도
가장 흉악하게 생기고, 덩치가 큰 한 녀석이 앞으로 나오더니 입을 열었다.
"킁..크흥. 너희들이, 뮤레칸님이 켈, 말씀하시던 “사도” 인 모양이군. 케헥 "
이제, 몬스터들이 말하는데엔 익숙해 졌지만.. 그 내용은 들어도 들어도, 정말 모르겠어!
이런 일에 능숙했던지, 드뉴씨가 우리 일행을 대표해서 앞으로 나서며 그 녀석의 말에 답했다.
" .. “사도” 라.. 그럼 너희들은 우리 “사도” 들이 가는길을 막는 방해자 인가?"
"켈켈.. 크하하핫, 넌- 우리들 사이에서 이름이 꽤나 알려진 놈인것 같군.. 감히 뮤레칸님의 성은을
배반하고 인간놈들에게 붙었다지? 퉤! .. 냄새나는 인간놈들에게서 뭔가 긁어낼 건덕지라도 있던가?
켁..크헥... 케케케."
그 흉악하게 생긴 오크가 웃자, 뒤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오크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켈켈, 크하하핫.."
"크헥크헥.. 크하하"
드뉴씨는 저런 비웃음을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은거야?. .. 뭐, 자존심이라던가... .. ...
일단은 가장 이성적이고 지성있는 몬스터라고 했으니 조금은 ..그런 프라이드가... 으 읔...!!
갑자기 나를 찌르듯이 압박해 온건, 드뉴씨의 온 몸에서 피어나는 살기였다. 순수한 살기, 그저
상대방을 일격에 찢어 죽이겠다고 - 그렇게 말하는 듯이 강력한...
뒷모습이라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드뉴씨.. 또 눈에서 광선이 나올듯이 무섭게 저들을 째려보고
있겠지?.. 휴, 뒷모습이라서 다행이야. 그렇게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 쉴때, 약간 피로한듯 하면서도
쉰듯한 목소리로 드뉴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 멍청한 놈들.. 난 내 의지로 판단하고 내 의지로 행동한다. 너희같은 뮤레칸의 종 따위가 뭘
알겠나. .. 그리고 《놈》 이라고 했나? ... 이 버러지만도 못한 놈들이!! 감히 나에게!"
푸와아악!! 등뒤에서 덮칠듯이 피어나오는 거대한 살기의 오오라! 그 오오라에 정면으로 노출된
흉악한 오크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진다. 그러더니, 이내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후, 저 덩치가 주저
앉으니 이제 나랑 좀 눈높이가 맞네.. 그 흉악한 얼굴의 오크는 덜덜 떨면서 입을 열었다.
"클..크익 ! 기..기고만장 하지마라! ... 곧 뮤레칸님이 ..부..부활하시면 너희같은 배신자 놈들을 제일
먼저 처벌하실 것이다. ! 캑...케엑.. "
" ... 그래? 그럼 내가 뮤레칸을 죽이지. "
"괘씸한!, 케켁!"
"이제 너희같은 쓰레기들에겐 볼일이 없다. 여기서 전원 죽을테냐, 아니면 길을 비킬테냐. 길을
비켜도 내가 너희들을 죽이지 않을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조금이라도 내 분을 삭이고 싶다면 지금
당장 그 추한 꼴을 내 눈앞에서 치우는 것이 좋을것이다. "
"히익..!"
와.- .. 정말 박력있어.. 과연 지상 최강, 최고의 몬스터라는 이름 답게.. 강력하다- .. 그저 말뿐이라도.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던 그 오크 가드들의 무리는 그 흉악한 얼굴의 오클르 필두로 해서 부리나케
반대쪽 산맥의 아래로 도망쳐 내려갔다. 그리고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마시만은 조금 걱정스런 표정이 되었지만 - 일단 첫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는 생각에 마시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긴박한 전투태세에서 한순간에 긴장이 풀어진 우리들을 바라보며 드뉴씨는
보일듯 말듯한 입이 살짝 올라가며 미소지었고, 사람들을 다독이며 다시 말했다.
"저 녀석들은, 하급의 문지기 같은 놈들일겁니다. 주인이라는 개념은 있지만 자기 목숨을 더 중히
여기는 놈들이죠.. 조금 더 올라가면, 좀더 고위급의 몬스터들이 나타날겁니다. 적어도, 나와 같거나
비슷한 정도의 놈들이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내 살기로도 놈들을 제어할 수 없어요. 그땐,...
싸워서 이기는게 답일겁니다. 이번에 어떻게 요행으로 잘 넘어갔군요."
턱을 긁적이던 마시가, 그 말을 듣더니 드뉴씨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드뉴..씨. 당신... 정말 우리편 맞는건가?.. 당신의힘은- 인간이 받아 들이기엔 너무 거대해.. ..
뮤레칸의 만월이 뜰 때 쯤 되면... 뮤레칸의 영향 아래에서 당신도 무사하지 못할텐데.."
" .... 저와 레오, 로그스도 그런 걱정을 했습니다만.. 괜찮습니다. 신력으로 제 이성은 보호받고 있고
제 스스로가 그 보호의 신력을 깨트리고 나오지 않는 이상은- 뮤레칸의 영향 아래에서도 여전히
여러분들 편입니다. "
"그렇다면,, 뭐.. 다행이지만.."
그렇게 간단한 대화가 오고간 후, 우리는 다시 추위에 벌벌 떨며 산맥을 오르기 시작했고 고개를
오르는 동안, 다들 서로 아무말도 없이 오직 앞을 보고 걷기만 했다. 선영이도, 람다도, 마시도 그리고
드뉴씨도.. 산맥을 오르면 오를수록 더 강력한 몬스터들이 기다리고 있을거라는 긴장감에 바짝 얼어
있는거겠지. 목숨까지도 걸어야 하는 일이라고 - 그리고 실제로 난 목숨을 걸었다구!-
로톤의 주임 성직자님께서 우리 일행들에게 일러 두셨으니..
에헴, 그럼 이 쯤 해서..
"- 에, 산을 오르는 동안 좀 적적하고 하니.. 16세 새디, 노래 한곡 하겠습니다! "
" 응?"
"뭐야-?"
람다와 마시가 나를 홱 돌아보며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고 선영이도 내 옆에서 궁금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에구?.. 말을 잘못했나.. 시선을 한꺼번에 받으니까 헤헤,, 왠지 부끄러운데.
"아니... 그게.. 3일동안 연습한것도 있고.. 그리고 나 원래 노래 잘한단 말야!!"
"그러니까, 지금- 노래를 하겠다고?"
"으응.. " "푸하핫"
에? 웃어?.. 노래를 듣고 웃는거면 몰라도.. 듣기전에 웃다니. 날 무시하는거야?! 드뉴씨도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살짝 웃더니 내게 와서 살짝 귓속말로 이야기 해 줬다.
'새디님, 여기서 노래를 하면 산맥 근처에 살던 몬스터들이 그 소리를 듣고 다 몰려들겁니다. 구태여
우리 위치를 적들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그래도 , 잘하셨습니다. 분위기가 다시
살아났군요.. '
읔.. 내 생각이 거기에까지밖에 미치지 못했다니.. 그..그래도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거야.
"오호호홋! 다..당연히 농담이지! 내가 너무 하이(high)한 수준의 개그를 구사한거야? "
람다와 마시는 어이없다는듯이 웃었고, 선영이도 살짝 웃엇다. 흑.. 그런 반면에 내 고개는 아래로
수직 하강... 푸욱... 내 얼굴 벌개져 있나?..
그렇게 , 북으로 향하는 우리들.. 산맥을 오르다 보면 더 강력한 몬스터들이 출현할거야, 하지만..
우리 팀은 분명 나를 제단으로 데려가 줄거라고 믿어..!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오늘 밤... 마지막 생명을 건 연주를 하게되고 ...
으음, 안돼! .. 우울한 생각은 모두 로톤 수련원에서 버리구 왔다구.. 휴! 웃자 웃어!
우리는 그렇게 , 산맥의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는 결계를 향해 일차적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33부에서 계속 [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