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가 공존하고 있던 시절의, 마이소시아 대륙.
이것은 아직 뜨거운 여름의 열기가 작렬하던 그 어느 시절의 이야기이다.
"길드성" 은 마이소시아 대륙의 정점을 꿈꾸던 많은 이들의 목표이자, 이상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차지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과 눈물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수준의 것이었다.
대륙에 내리쬐는 태양이 수오미 마을의 한 어귀를 비추었을때, 누군가의 얼굴이 반짝 하고 빛났다.
"후우... 이거 승급은 해야하겠고. 아는사람들은 없고. 어떡해야 하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 쉬고 있는 남자는, 자신의 허리춤에 매달고 있던
작은 곡단도를 만지작 거렸다. 모험을 시작한지 어언 수개월 째.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 속에서
그는 일로(一路) 를 발견했고 승급의 문턱에까지 섰다.
하지만, 승급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고 해서 모두가 승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최소한의 조건, 승급던젼을 클리어 해 용기와 능력을 검증 받을것. 이것이 마이소시아에 통용되던
승급의 기준이었다.
남자는 바닥에 털썩 하고 주저 앉아버렸다. 고민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함께 사냥하던 사람들이 가르쳐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길드에 가입하면... 사람들하고 쉽게 어울릴 수도 있고 도움도 받을 수 있어요. 좋은거죠.]
"그래.. 길드라. 하지만 나같은 자를 받아줄 곳도 있을까-? 에이. 고민하면 뭐하나. 일단 가보자!"
남자는 툴툴거리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길드에 가입하는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아는사람의
소개를 통해 가입하는 방법, 자신을 홍보해서 길드에서 발탁해 가는 방법 등.
어떤 이들은, 유명한 길드의 마스터들이 직접 초빙해서 뽑기도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남자와는 아무 연관이 없는 이야기였고, 남자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모든 길드들의 본산인
루어스로 향하기로 했다. 직접 부딪혀 보고 결정하는거다, 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 ♧ ♧ ♧ ♧
남자는 대륙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루어스에 도착했다. 루어스의 발전된 문화와 양식들은
그의 시선을 한번에 사로잡았다. 하지만 한 눈 팔 새가 없었다. 선착순으로 길드원을 모집하는
곳도 있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지 않으면 좋은 자리를 놓칠지도 몰랐다.
남자는 대륙에서 활동하는 모든 길드들이 모인다는 루어스성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루어스 성 어귀에 도착하자, 남자의 눈에 각 길드들의 모집 간판이 하나 둘 씩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저희 길드로 어서 오세요! 친목위주 입니다. ]
[강해지고 싶다면 저희 길드로. 전쟁, 공성. 승급이상]
화려하게 치장된 간판들은 길드원을 모집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남자는 강한 길드에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능력으로는 그런 턱없이 높은 길드에 들어갈 수가 없을것이 뻔했다.
한숨을 쉬면서 성문 앞에 즐비하게 걸려 있는 간판들을 지나쳐 가던 중, 그의 시선에 들어온
한 간판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오래되고 낡은 나무판자에 얼기설기 글자를 새겨 놓은 듯 한
엉성하기 짝이 없는 간판이었다.
[ Ace 길드. 길드원 모집 ]
"뭐야 이거-? 이것도 길드원을 모집하는 간판인가?"
남자는 맥이 풀려 머리를 긁적였다. 화려한 간판들 속에 이런 허름한 간판이 같이 걸려있다니.
물론 성벽 외곽쪽에 붙어있어서 정말로 모집간판인가 의심될 정도였지만. 그 간판에는 너무나도
낡은 글씨로 "길드원 모집" 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런 길드는... 아마 망해가는 길드겠지? 들어가 봐야.. 흐음. "
"... 이거 실례로군요. 망해가는 길드라니. "
".... ?!"
남자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젖혔다. 남자의 등 뒤에는 거대한 칼을 든
금발의 청년이 서 있었다. 남자는, '이 사람은 이 길드의 관계자 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고
험난한 모험을 헤쳐나온 처세술로, 넉살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붙였다.
"하하.. 이거 죄송하네요. 간판이 너무 낡아서... 혹시 길드 관계자 ...?"
"네. 안녕하세요. 음... 처음에 말씀하신 '망해가는' 이라는 부분은 잊도록 하죠. Ace 길드의
길드마스터 신시 입니다. "
"... 길드마스터?"
"뭐가 잘못됐나요?"
"... ...아..아뇨."
"길드에 가입하시려고 하는건가요? 음... 길드는 잘 고르시는것이 좋아요. 어떨때는 길드마스터가
종적을 감추고 사라져서 길드원들이 금전적인 손해를 보기도 하고, 전쟁을 일삼는 난폭한
길드마스터가 있는 길드는 매일 매일 피튀기는 싸움만을 하죠. 처음 길드를 선택하시는 거라면
조금 더 친목 위주의 길드가 좋을거에요. "
"아.. 예. 조언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승급도 아니고... "
"후후. 비승급인 분들만 있는 길드도 있으니까요. 잘 찾아보시면 될거에요. "
"그쪽 길드는... 어떤가요?"
"저희 길드...에 가입하고 싶으신가요?"
"아..딱히 그런것은 아니지만... 길드마스터 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자기 길드에 대해서는
잘 설명해 주시지 않을까 싶어서."
"저희 길드는, 총 길드원이 5명 뿐이에요. 적죠? 하지만 소수정예 라고 생각해요, 정말. 하하"
신시는 밝게 웃었고, 남자는 어떤 부분이 우스운지 몰라 좀 황당한 기분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미소를 짓고 있는 청년의 몸에서 풍겨나오는 기도는, 보통의 범인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정말로 소수정예 인걸까, 하고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저도 가입할 수 있나요? 가입 조건이 어떻게 되죠?"
남자의 질문에, 신시는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잘 노시는 분이라야 됩니다."
"... 에...?"
"하하하... 농담이예요."
"....으음...."
"그럼 세바스찬 앞으로 가서 이야기를 계속 나눠볼까요? 여기서 이런 이야기는 적당치 않군요."
"네에. 뭐."
신시는 그 거대한 칼을 어깨에 턱, 하고 걸치더니 먼저 걸음을 떼었다. 남자는 엉거주춤
하면서도 그 뒤를 따랐다. 성 안으로 들어선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신시와 남자는 거대한 홀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신시는 그들 사이를 요령껏
헤집고 들어가서 루어스의 모든 길드를 관리하는 세바스찬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세바스찬. 요즘 어떤가요?"
"아? 신시인가. 뭐 전쟁때문에 골치가 아프지. 덕분에 예산은 충분히 확보하고 있지만."
"음... 그래요? 그거 잘됐군요. 오늘은 길드원 한명을 더 등록하려고 왔어요. "
"하! 그 Ace 길드에 신규 길드원이? 어떤자인가? 궁금한데."
세바스찬은 눈을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고, 그 시선에 맞닥뜨린 남자는 멍 하니 그의 눈을
마주 바라볼 뿐이었다. 세바스찬은 싱긋 미소지었다.
"글쎄. 자질은 썩 괜찮은 것 같군. 좋아. 그럼 바로 수속 절차를 진행 할텐가?"
"그래 주시겠어요?"
세바스찬은 주머니에서 부시럭 부시럭, 뭔가를 찾더니 종이와 펜 같은것을 꺼내 들었다.
남자는 멀뚱히 서서 세바스찬이 하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세바스찬은 엄숙한 표정으로
남자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매우 중요하네. 장난으로 흘려 들어선 안돼. 루어스 국왕폐하와
그 위대한 통치를 받는 백성들을 대신하여 내가 공증하는 것이네. 자네는 Ace 길드의 길드마스터에게
충의를 다할것을 서약하고, 길드를 위해서 전쟁도 불사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 ... ... 네"
"대답 소리가 적군. 이래서야 원. 좀 더 기백 있게 못하겠나?"
"네!!"
"좋아. 자네는 Ace 길드의 길드원으로 등록되었네. 앞으로 자네는 Ace 길드와 함께 수많은 고락을
함께 하며 그들의 창과 방패가 되겠지. 그 앞날에 세오의 이름으로 축복을.
그럼, 마지막으로 자네의 이름은?"
남자의 두눈이 초롱히 빛났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오고간 후. 남자는 조용히
입술을 떼었다.
"제 이름은 "혼" 입니다. "
2부에서 계속 [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