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오력 916년 여름 온도 31도 풍향 남서풍 풍속 2㎧
어느때와 마찬가지로 난 그 길을 걷고 있었다. 요즘 들어 한층 더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그 가파른 오르막길을 걷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수분이 많은 덥고 습한 공기가 내 말초신경을 자극하며 불쾌지수를 높이고 있었다.
학교 입구가 이렇게 오르막길인줄 알았다면 난 이 학교에 입학원서를 넣진 않았을 것이다. 진실로.
이 어처구니 없는 오르막길 끝엔 구름 한점 없는 높고 파란 하늘 아래 7층짜리 학교건물이 서 있었다.
온통 아이보리색의 학교 건물은 지은지 10년 조금 안됐다고 하는데 붙어있는 창문의 깨끗함은
지루해보이는 건물을 조금이나마 단정한 느낌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강의 시간이 이미 시작됐는지 주변엔 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있어도 강의시간을 못맞춰서
뛰어가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고보니 이미 내가 들어갈 강의도 이미 15분이나 오바된
시각이었다. 서두를건 없었다. 어짜피 들어도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강의였다.
따분하고 지루하기만한 교양과목이었지만 어째 강의 신청자가 70여명에 달하는지 알 수 없을 뿐,
건물안쪽은 고등학교 복도 처럼 한쪽은 거의 대부분이 깨끗한 창문으로 장식되있었다.
마치 창문이 없는것처럼 깨끗한 창은 무더운 여름의 강한 햇살을 그대로 통과시켜 온도상승요인 중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강의실에 도착한 나는 조용히 뒷문으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강의는
한창 진행중이었고, 뒤늦게 들어온 나를 신경 쓰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숨쉬기가 힘들고 시야가 하얗게 변하고 움직이기 힘들었다. 또 시작이었다.
이상하게 이 교양과목을 들으러 이 강의실에 들어오면 자주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 1~2분이 지나면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멀쩡해졌다. 심지어 정신이 또렷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에어콘을 두대나 설치할정도로 큰 이 강의실은 학생 500명도 더 들어올만한 크기였지만 불행하게도
70여명밖에 쓰고 있지 않는 비인기 강의라는 안타까운 현실이 공간활용과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강의가 끝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건물로 향했다. 식당건물과는 건물과 건물 사이를
이어놓은 통로가 있었는데 바닥만 빼고는 둥근 타원형의 유리로 되 있어서 밖의 풍경도 잘 볼 수
있었지만 높이가 3층높이 정도 되서 높은곳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지나가는데 부담이 갈 수 있을것이다.
긴 통로를 걸어가고 있을 때 반대편 쪽에선 한 여자아이가 걸어오고 있는걸 볼 수 있었다.
붉고 긴 생머리에 키는 165정도 되 보이는 청순해보이는 여학생이었다.
그때였다. 시작됐다. 시야가 하얗게 변하고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곤란했다. 서있기 조차 힘들었다.
어째서 그 교양과목시간도 아닌데 아무래도 증상이 악화되고 있는것이 틀림없다. 내일은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붉은머리의 학생은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내 코앞까지 다가온 그녀는 갑자기 손을 하늘로 뻗었다. 그러자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고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멈추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말도안된다고 생각했지만
내 머리속에선 끊임없이 "시간이 멈추어있다" 라고 정신을 속박하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