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모든 소유욕은 앎(知)에서 찾아온다
아마존 오지에서 살던 원주민이, 세속세계에서 통용되는 돈의 가치라는 것을 모르듯이.
무엇을 "소유"하고 싶다는 마음은 그 대상에 대해서 알아버린 후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본다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은
많은 것을 아는 사람보다, 당연히 소유욕이 덜 할 것이며,
더 많은 것을, 더 고급적인 지식을 갖은 사람일 수록
갖고 싶은 것과 차지하고 싶은 것은 더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곧,
어떤 사물이 필요함에 따라 그 사물을 소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경우 보다
(필요한마음-->소유욕)
어떤 사물을 알게 됨에 따라 그 소물을 소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경우가 우리 일상에는
더 많은 경우를 차지 한다 할 수 있겠다.
(앎(知)-->소유욕)
이런 입장에서 보았을때,
과연 법정스님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알고 계셨을까.
또 법정스님은 과연 얼마나 많은 것들을 "소유" 해 보셨을까.
대학을 졸업하신 직후, 20대에 바로 출가하시고 스님이 된 법정스님,
아마 잘은 몰라도 법정스님은 스님이라는 신분 때문에
속세의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더 많고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고 소유해보시진 못하였을 것이다.
무소유라는 글 속에서도 단지, 자신이 갖은 것들 중에 예를 든 것은 "난"이라는
작은 화분 하나일 뿐이다. (물론 값이 싸고 비싸고에 따라 그 물건의 가치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에 비하면 속세의 사람들은 어떨까.
21세기, 물질과 향락의 시대 라는 말이 걸맞듯
우리는 정말 풍요롭고 화려한 많은 것들을 소유 한 채 살아간다.
핸드폰,책,컴퓨터,옷가지,신발,기타 악세서리 등등등
아직 가난한 학생의 신분인 나 조차도
말로 다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은 물건들을 "소유"하고 있고
또 앞으로 "소유" 하고 싶은 물건들 역시
엄청나게 많고, 또 많다.
그래, 솔직히 말해 우리는 속세적이고 물질적인 것으로만 따진다면
법정스님보다 수백 수천배를 알아버렸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알아버렸다.
알지 말아야 할 것 까지 알아버렸고
알면 안되는 것 까지도 알아버렸다.
그렇다고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들을 싹 다 지워버릴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만약 가능하다면, 그것을 지워버리는 것이 정말 우리가 행복해지는 길일까..
아마 그건 아닐 것이다.
법정 스님은 소유가 없는 상태인 "무(無)"[없을 무]
"무소유"의 단계를 말씀하시며 대중들에게 자신이 갖은 것들을 하나 둘씩 버리라 말씀하셨지만
불가에 몸을 담고 욕정을 금하는 스님의 입장에서도
"소유"에서 "무소유"로 가는 길은
참으로 어렵고 험한 길임을 이미 글을 통해 보여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