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집 에어콘에 덮개를 씌워줬다.
이제 가을 바람이 제법 선선한게
더 이상 에어콘을 틀지 않아도 될거라는 생각에
에어콘의 필터며 몸체 구석구석까지
마른걸레로 깨끗히 닦아주고 청소한 후
마무리로 덮개를 씌워준 것이다.
깔끔히 정리된 에어콘을 바라보며 난 나즈막히 읊조렸다.
'내년에 또 보자'
헤어짐의 준비, 그리고 대비.
오늘은 준비된 이별이었다.
얼마전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고등학교때 옛 친구를
만났었다.
여느때처럼 이어폰을 귀에 꽂고 내 발에 시선을 두며
걷고 있을때, 누가 내 어께를 두드렸다.
많이 반가웠는지 입에 함박 웃음을 짓고 있는 그 사람앞에서
난 5초? 10초? 그렇게 잠깐을 멈칫했다.
...
기억이 나지 않은 것이다.
분명 아는 얼굴인데..
그 사람을 어디서 만났는지
이름이 뭔지
다행히도 잠깐의 머뭇거림 후,
난 그 친구의 이름을 기억했고
고등학교때 꽤나 함께 어울렸던 친구란 것을
떠올려냈다.
지하철역에서의 잠깐의 만남 이후
집으로 가는 길 내내,
그 친구와의 추억을 되짚어 보았다.
하나 하나 떠오르는 추억의 조각들,
그리고 퍼즐 맞추기.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친구와의 "마지막 만남" 은
기억해낼 수 없었다.
'이상하다.. 고등학교 졸업한 후에도 몇번 만난것 같긴 한데..'
하지만,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몇년간은 연락도, 만나지도 못하게 될
"마지막 만남" 을 우리는 분명 나눴을 것이다.
그냥 언젠가 또 보게 될거라는
안이한 생각에
그 마지막 만남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나쳤을 뿐.
그래서 우린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이별' 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