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인가, 12년 전의 일이었던 것 같다.
그 때 당시의 나에게 있어 관심사는 늘 어둠의전설이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의 나는 반에서 2번째로 작을 정도로
키도 작고 외모도 너무도 평범해서 인기가 없던 시절이었다.
화이트데이, 발렌타인데이 등의 로맨틱데이에도 내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둠의전설이라는 게임에 더욱더 집중할 수 있었다.
덕분에 당시 나는 어둠의전설 내에서 어느정도 입지를 가진 유저가 되었다.
그 때문인지 온라인의 익명성을 방패와 무기 삼아 나보다 윗사람에게 공손하지 못하고
아랫사람을 깔보며 흔히들 말하는 '개매너', '키보드워리어'가
그 당시의 나도 상당부분 해당되었던 것 같다.
현실에서는 너무도 소심하고 부정적이던 나는 어둠의전설의 세계로 들어오기만 하면
적극적이고 패도적이며, 오만과 욕심으로 가득찬 사람이었다.
그러던 나를 변화 시켰던 사건이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남들보다 조금 부유하다는 이유로 어둠 속 유저들을
무시하고 비웃으며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재산이 불어나면서 내게는 창고케릭이 여러개 필요했다.
그래서 창고케릭을 육성하던 어느날 우드랜드 대기실에서 한 유저를 만나게되었다.
(그 당시는 2~3써클의 유저는 대부분 우드랜드 대기실에서 파티를 모집하여 사냥하곤했다.)
성직자였던 그 유저는 정말 손도 느리고 컨트롤도 좋지 않은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잘 참아내던 그룹원들도 막바지에는 기분 나쁜 말을 내뱉으며 룹탈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가 저 정도의 심한 말을 듣는다면 현피도 생각해볼 정도의 말들이었는데,
성직자 유저는 놀랍고 긍정적인 언변으로 대처하고 있었다.
결국 모든 그룹원들을 진정시키는 데 성공한 성직자 유저는 사냥을 무사히 끝마치고 있었다.
(물론 사냥을 끝내기까지 사용한 코마디움만 몇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많이 사용했다.)
나는 정말 신기했다.
알 수 없는 호감을 느끼며 나는 평소 나답지 않게 그 유저분에게 귓속말을 했다.
"직자님, 혹시 게임 처음하세요?"
"네^^ 처음인데, 많이 어렵네요ㅠ.ㅠ"
"아, 저는 부캐인데 혹시 제가 게임좀 알려드릴까요?"
"부캐가 뭐죠?"
부캐도 모르던 초보유저였다.
그렇게 그 성직자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면서 피엣던전, 우드랜드, 밀레스던전등을 함께 돌아다녔다.
어둠의전설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친절을 배풀게 되었던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성직자 유저와 친해진 나는 이것 저것 서로 묻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성직자 유저는 나보다 1살이 많은 여성유저임을 알게되었다.
그 뒤부터 어둠을 함께하며 몇개월 간의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동안 여러번 만나서 함께 게임을 하자며 권유했지만, 항상 대답은 NO였다.
하지만 나의 끈질긴 권유에 그녀는 결국 허락을 했고, 마침 남자친구도 없던 그녀와의
첫만남은 머지 않은 크리스마스이브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