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삼성동, 코엑스 앞에서 ...
전시회가 끝난 후 밖으로 나왔다.
하늘은 어두워져 있었지만,
비는 여전히, 계속 내리고 있었다.
예전에 한번 갔었던 기억이 있는 커피전문점에 들러
작은 카푸치노 한컵을 산 후 밖으로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 한켠,
나는 그 흐릿한 벤치에 앉아
빗속 풍경을 바라보았다.
등 뒤로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지만,
내 눈앞에는 그저 떨어지는 빗방울들 뿐이었다.
앞 쪽에있는 커다란 전광판과 패밀리레스토랑의 간판등에서
나오는 환한 불빛도, 내겐 보이지 않았고
등뒤쪽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 소리나
이야기소리도, 내겐 들리지 않았다.
카푸치노의 부드러운 우유거품속 쓰디쓴 커피맛도
전혀 쓰다고 느껴지지 않았고,
귀에 꽂은 이어폰 안에서 흘러나오는 촉촉한 옛 노래들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주변엔 참 많은것들이 있었지만
시간이 멈추어버린 것처럼
내겐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고
또 느껴지지 않았다.
바보처럼
가만히 앉아있는 내게 들어오는 것이라곤
눈앞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모습과,
형형색색의 우산들 속 사람들,
그리고 흐릿한 청사진 속처럼 멀어버린 하늘,
아침부터 내 귓가에 맴돌았던 비 내리는 소리 뿐이었다.
왜 나는 네가 내 옆에 있을때
그런 하찮은 것에 집착했을까 ..
이렇게 좋은 것들과 많은 것들을 함께 할 수 있었는데 ..
얼마나 좋을까 .
끝없이 쏟아지는 빗방울을 모두 받아내고도 넘침이 없는
저 회색빛 아스팔트 바닥.
나도 저렇게 모든 아픔과 슬픔들을 받아내고도
넘치지 않는 커다란 용량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면 ..
얼마나 좋을까 .
사람들이 빗속에 들고 있는 형형색색의 우산.
비가 그치면 접어버리고, 비가 내리면 다시 펴는 우산.
내 마음도 이렇게 내 뜻대로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
얼마나 좋을까 .
저렇게 많은 비를 뿌리고도,
다음날이면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밝은 햇빛을 보일 수 있는 저 높은 하늘.
내 마음도 저 먼 하늘처럼
조금은 더 냉정할 수 있다면, 조금만 더 강했다면 ..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을 하다보니
해는 벌써 저녁께가 되어 있었고,
나는 얼른 짐을 싸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비는 그치지 않은 채
계속 내리고 있었다.
"스며오는 향기는 아련한 백매화향 ..."
ㅡㅡㅡ 히무라 劍心 ㅡ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