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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세오
[어둠문학]
3276 2015.09.07. 11:29











"인연이란건 어느정도 때가 됐을때 헤어짐이 있는게 좋다고 생각해?

아니면 최대한.. 서로의 여력이 될때까지 인연을 유지하는것이 좋다고 생각해?"




"또 무슨소리야?"

엉뚱한 재열의 말에, 찬일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난 어둠의전설을 정말 오래해왔잖아.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을 많이 하곤했어.

지금 가 장 그리운건 그때 나와함께 했던 사람들이니까.

그 사람들이 있어서 어둠의전설이 재미있었던 거니까."





찬일의 옆에서 1써클케릭으로 단도복을 입고있는.

누가봐도 허접한 1써클로 보이는 재열의 이야기는 확실히 평범한 1써클이 할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레벨업이나 해야할 시기, 어떤 1써클이 마을에서 저런이야기나 하고 있겠는가.

하지만 재열은 평범한 1써클이 아니었다.




재열은 어둠의전설이 무료화 직후 한창 흥하던 시절, 어둠의전설에서 가장 잘나가던 공식길드를

운영한 길드마스터였다.

높은 랭킹의 고서열 케릭터, 그리고 주위에서 재열을 도왔던 수많은 길드원들.

남부러울거 없었던 아이템들.

수많은 길드원들을 이끄며 최강길드를 꽤 오랜기간 유지했던 재열은 어둠의전설에서 해볼수

있는것들이라면 거의 모든경험을 해본 올드유저였다.

그래서 찬일은 재열의 말에 항상 조금더 흥미를 느낀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길드던 망하지 않는 길드는 없어. 결국엔 서로에게 조금씩 연락이 소홀해지고, 길드에

소홀해지고. 어떤 길드던 '끝'이 존재하지. 장수하는 길드가 있다곤 하지만, 대부분 그냥 간판정도를

유지하고 있을뿐이야. 주위유저들도 마찬가지지. 같이 사냥도 하고, 수다도 떨고 하지만

결국.. 결국에는 또 한쪽이 멀어지기 때문에 늘 그렇게 지낼수는 없어. 항상 끝이란게 존재하지."





"또 시작이네.."

찬일은 어둠의전설에서 경험해볼수 있는 거의 모든것을 경험해봤음에도,

아직도 옛날얘기를 하는 재열이 조금은 안타까웠다.





"어쨌든.. 인연에는 헤어짐이라는게 있기때문에 오히려 아름다운거 아닐까?"

재열이 찬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재열은 찬일이 자신을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대충 눈치챈듯 하다.





"근데.. 헤어짐이 아름다움과 무슨 상관이 있지?"

재열은 찬일의 말에, 다시 자신의 생각을 꺼내기 시작했다.




"결국 인연은 끝이 있으니까 아름다운거 아냐? 어떤형태로 시작했든, 얼마나 돈독한 사이를 유지했든.

그런것과 상관없이 결국 어둠의전설에서 만난 모든 인연들에게는 헤어짐이 있잖아.

싸워서 헤어지게 되던, 서로 연락이 소홀해져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던."



"인연자체를 우리가 추억하게되는 하나의 '그림'이라 생각한다면, 한창 서로의 인연이 이어질때는

그림을 열심히 그리는 과정인거고. 결국에는 그 그림이 마무리 되어야 비싸게 팔린단말이지.

완성되지 않은 그림은 가치가 아주 떨어져."





재열의 말문이 확 트였다.



"하지만. 그 인연의 끝에 사람들은 모두 아쉬워하잖아. 후회하기도 하고.

결국 예전에 더 잘할걸. 끝까지 더 신경써서 연락할걸. 대부분 그런 인연의 끝을 슬프게 생각하던데.."




사실 찬일은 재열이 무슨말을 할지 대충은 알고있었다. 하지만 재열의 생각을 더 듶고싶어졌다.




"그렇지? 인연이 끝난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아쉽게 생각하고 슬프게 생각해.

후련하게 생각하거나, 좋게 생각하는사람은 별로 없지. 그게바로 '끝'의 힘이지.

끝남으로써 후회하게 만들고 그 후회는 다시 그 인연을 굉장히 소중했던 기억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어.

그래서 모두가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게 해주는거야.

그게바로 헤어짐의 아름다움이자, 이별의 '끝'이 가지는 가치라고 할수있지."




재열의 말이 길어진다.

찬일은 조용히 재열의 말을 계속 들으려 했지만, 재열의 생각에 100% 공감하고, 몰입하기는 힘들었다.

결국 사람의 생각은 다르니까.





"음.."


"아직도 모르겠어? 결국 '끝'이 있기때문에 그 인연을 추억하고, 그리워할수 있는거야.

만약 어둠의전설 속 인연에 끝이란게 없다면 서로를 그렇게 추억하고, 그리워할수는 없다고 봐야겠지.



난 몇몇 인연들을 끝까지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에는 항상 헤어짐이 존재했어.

내가 정말 좋아했던 사람들일수록, 끝에오는 슬픔과 아쉬움은 컸지만

그 슬픔과 아쉬움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까지도 그 사람들은 잊지않고 추억할수 있는거지.

아마 슬픔과 아쉬움이 없었다면, 난 벌써 그사람들은 다 잊어버렸을걸?"




그렇구나.

재열정도의 올드유저라면. 수없이 많은 인연들을 만났을테고, 또 수없이 많은 이별을 경험했겠지.

그리고 수없이 반복했겠지. 친했다고 생각하는 유저들과, 서로 공감하고 있는 유저들과의 이별을.




"그리고 지금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너와의 인연도 언젠가는 끝나겠지.

나는 또 그것을 아쉬워하고, 슬퍼하게 될거고.

참 웃긴건.. 바보같이 뻔히 미래를 알면서도 멈출수가 없잖아."




재열의 말에, 찬일은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재열아. 그건 아니야."

찬일은 컨트롤+1의 생기있는 웃음을 지은채, 재열의 케릭터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둠의전설에서 수없이 많은 인연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지만.

그 수많은 인연들은 평생 네 옆에 있을거야.그리고 나역시 너를 떠나지않고, 항상 네 옆에 있게될거고."




재열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찬일에게 물었다.



"뭔 말도안되는소리야. 찬일아 너도 결국은 어둠의전설을 접을거잖아.

그게 아니라면 내가 먼저 접게될수도 있고.

결국엔 언젠가 우리가 이렇게 대화조차 나누지 못하게될.. 인연의 끝이 다가오겠지.

그걸 어떻게 피할수 있다는건데?"






찬일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어둠의전설이잖아. 전설.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재열은 어처구니 없는 찬일의 답변에 피식 웃음이 났다.

하지만 찬일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느낌만으로 알수 있었다.







재열은 생각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어둠의전설이라는 게임을 플레이하며, 자신을 거쳐간 수없이 많은 유저들이 있었을것이다.



그리고 그 유저들과 재열에게 인연의 끈은 서로 닿아있지 않다.




하지만.



서로를 좋은 기억으로 추억하고, '어둠의전설'이라는 게임 하나로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목적으로 뭉칠수 있었던 그 시절을..

추억으로 남기고, 항상 떠올릴수 있다는것 자체만으로도 그리 나쁜건 아니라고..





재열의 말대로


어떤 인연이던, 어떤 만남이던.

결국 이별과 헤어짐을 맞이하게 되지만

꼭 그것이 그리 나쁜것만은 아니라는걸.




사람이 살게되면 언젠가는 죽듯이,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가슴속에 잊지못할 인연으로 남는다면.

'어둠의전설'이라는 게임을 생각했을때, 한번 떠올릴수 있는 하나의 추억으로 남는다면.




꼭 지금당장 인연의 끈이 닿아있지 않다해도

그리 허무한 일만은 아니란걸.






그사람들과의 나의 추억이 결코 허황된 꿈이나 거짓은 아니기에..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자.

서로의 기억속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기에.





다시 만나지 않더라도, 서로를 자세히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