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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께 보내는 편지 세오
무서운 이야기 [취사장] 펌
330 2012.03.26. 19:14

저희 부대 식당 앞에는 동물들이 참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매 식사때 마다 나오는 음식 찌꺼기 - 속칭 '짬'이라고 하는 - 를 먹기 위해서였지요. 까마귀 부터 시작해서 너구리까지. 별별 동물들이 다 모여드는 그 곳에서도 최고의 위세를 자랑하는 동물은, 바로 고양이들이였습니다.

사회에서의 고양이야 귀여운 이미지가 강합니다만, 군대 고양이는 귀여운 녀석들이랑은 거리가 멉니다. -_- 짬이라는게 워낙 칼로리가 높은 탓인지, 군대 짬을 먹고 큰 고양이는 거의 100% 비만형이 되지요. 덩치도 어찌나 커지는지 다들 개 만합니다; 게다가 야생에서 사는 녀석들이라 그런지 성질이 지독하게 더럽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짬통이 가득차면 어기적어기적 어디선가 기어나와 짬을 먹기 시작하는데, 자기들이 아직 배부르게 못 먹었는데 짬통을 비우려고 가면 '퀘엑-' 하면서 할퀴려고 덤벼들곤 합니다.

저희 부대에 돌아다니는 고양이들 중에서도 특히 덩치가 큰 녀석이 있었습니다. 통칭 '오야붕'. 태어나서 그렇게 큰 고양이는 본 적이 없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다리 길이보다 조금 작다고 하면 믿으실 수 있으신지? 거기다가 살은 투실투실 쪄서 뱃살이 다리를 완전히 가릴 정도. 덕분에 멀리서 보면 길다란 갈색 고기 덩어리처럼 보였었지요. 그런 녀석이 뱀처럼 스스슥(발이 안 보이니까, 기어 다니는 것 처럼 보입니다-) 움직인다고 생각해 보세요 -_-

사건은 저희 부대가 대대전술훈련에서 우승해서, 전 인원의 1/3이 포상휴가를 나가게 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군대 가 보신 분들이라면 알고 계시겠지만, 취사병이 휴가를 나갈때면 몇명인가 일반 사병들이 뽑혀서 취사 지원이란 걸 나가게 됩니다. 몇백명이나 되는 인원을 먹일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언제나 일정 인원 수 이상의 인력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하루종일 잠깐 잠깐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음식 만드는데 매달려야 하는 피곤한 일인지라, 보통 취사지원은 짬 안되는 이등병들을 많이 보내곤 합니다.

저는 FDC라 원래는 취사 지원을 나갈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만, 대대전술훈련 우승으로 너무 많은 인원들이 휴가를 떠난지라 어쩔수 없이 취사지원에 투입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하려니 죽을 맛이더군요. 안 그래도 FDC는 근무시간이 2시간 40분씩인데 말이지요 -_-

취사반의 최고참은 최모 병장이라는 사람이였습니다. 밥 안되던 시절에 포반에서 근무하다가 멍청한 짓을 너무 많이 해서 취사반으로 빠진 케이스인데, 취사반 안에서 서열이 잘 풀려 일치감치 취사반 서열 일위를 차지했지요. 자기는 이등병 시절에 별 별 삽질을 다 했던 주제에, 짬밥이 좀 되자마자 조그마한 실수 하나에도 후임들을 미친듯이 닥달해서 이래저래 평이 안 좋은 사람이였습니다. 몇번이고 소원수리에도 걸리고 했었습니다만, 워낙 요리를 잘 하는지라 간부들이 뒤를 봐주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취사지원을 가기 싫은 이유 중 하나가 이 인간과 마주치기 싫어서였는데, 재수없게도 취사반에 남아있더군요-_- 동기들이 다 함께 휴가를 나갔는데 혼자 따 당한 겁니다.

당연히 최병장 기분은 최악의 상태. 혹시나 불똥이 튀지 않을까 조심조심 취사지원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는 취사병만큼 망고땡땡이 어딨냐고 생각했었습니다만, 실제로 일을 해보니 장난 아니더군요. 몇백명 분의 음식을 만든다는 건 노가다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안 그래도 더운 여름, 불꽃 앞에서 일하려니 죽을 맛이였습니다.
안 그래도 일손이 모자라는데 조금이라도 도와주면, 아니 요령이라도 좀 가르쳐 주면 좋으련만, 최병장은 귓구멍을 후비후비 거리며 하루종일 스포츠 신문만 뒤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씨바씨바 속으로 분을 삭이면서 불길을 조절하고 있는데, 갑자기 최병장이 내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켁, 뭔가 잘못한건가?' 싶어 움찔하고 있었는데, 최병장은 내 쪽으로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화덕 위로 손을 뻗었습니다. 뭐하는 건가 싶어 봤더니 화덕 위쪽을 뒤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최병장님. 뭐 찾으십니까?"

"응? **야. 몰라도 된다."

...꼭 한마디를 해도 싸가지 없게 해요. 안 보는 척 하면서 흘깃 쳐다보니, 뭔가 고기 덩어리 같은 걸 화덕 위에서 끄집어 내고 있었습니다. 노릇노릇하게 딱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고기 덩어리. 화로의 열기를 이용해서 만드는 일종의 훈제 햄(...이라기 보다는 육포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지만-) 이랄까요; 사병들 식사에 들어갈 고기를 줄여서, 자기가 먹을 간식용 햄을 만들고 있었던 겁니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그런 훈제햄이 한 스무개 정도 숨겨져 있었다는군요. -_-

"이야아. 훈제햄인겁니까?"

"헤에? 너도 좀 아는구나. 한 입 주랴?"

"아, 주시면 저야 좋지요. 헤헤헤."

"웃기고 있네. 이게 이등병 개밥 찌끄레기가 먹을 수 있는건 줄 아냐? 케케케"

....너는 나갈때 특별 다구리다. 동기들 14명을 모아 끝내주는 피의 송별식을 열어주마. 혼자서 이를 바득바득 갈며 생각했습니다. 최병장은 훈제햄을 칼로 쓱쓱 몇 조각 썰어 먹더니, 다시 화덕위에 걸어 놓더군요.

"건드리면 죽인다. 얼마만큼 먹었는지 표시해 놨어."

"...예."

씨바, 더러워서 안 먹는다! 어쨌든 그 날은 별 일 없이 그냥저냥 지나갔습니다. 국 간 잘못 맞췄다고 몇 대 조인트 까이긴 했지만, 그 정도야 일상다반사 였으니까 뭐 :)

다음날 새벽, 졸린 눈을 비비며 취사반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식사용 물을 받아 놓고 이런저런 밑반찬 준비를 끝냈더니, 그제서야 어기적어기적 최병장이 나타나더군요. 잠이 덜 깼는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더니, 원래 취사반에 있었던 제 동기를 손짓해서 불렀습니다.

"야. 오늘은 입맛이 영 없으니까 볶음밥이나 좀 해 봐라. 내 햄에다가 계란 풀어서.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입맛이 없기는. 매일 두 그릇씩 먹으면서 -_-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화덕에 불을 지피는데, 갑자기 화덕 위에서 뭔가가 툭 하고 떨어져 내렸습니다.

"?"

바로 최병장의 훈제햄이였습니다. 그것도 큼직하게 여기저기 뜯어 먹힌 자국이 선명한.

"최병장님!"

"앙?"

귀찮은 듯 걸어오던 최병장의 눈이, 처참하게 뜯어먹힌 훈제햄을 보자마자 휘둥그레 졌습니다.

"뭐야 이건?"

최병장은 손을 뻗어 화덕 위를 뒤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이였습니다.

"우와악!"

손등에 새겨진 선명한 손톱자국. 뚝뚝 떨어지는 피. 모두들 놀라서 입을 딱 벌리고 있는데, 화덕 위에서 뭔가가 퉁 하고 떨어져 내렸습니다. 바로 오야붕이였습니다.

"이런 X팔 X만한 고양이 XXX를 봤나!"

있는대로 열 받은 최병장이 발길질을 했습니다만, 오야붕도 명색이 고양이. 스스슥 여유있게 피하더니, 뱀 처럼 꿈틀거리며 어느새 취사반 문 밖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내가 오늘 저 ** 안 죽이면 사람이 아니다!"

최병장도 야삽을 움켜쥐더니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취사반 인원 모두 음식은 내 버려둔채 오야붕과 최병장의 쫓고 쫓기는 경주를 지켜봤습니다. 야삽으로 고양이를 잡으려 들다니 역시 최병장은 바보라고, 애들 먹을 것 빼돌려서 짱박아 놓더니 꼴 좋다고 다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_- 분통이 터진 최병장이 냅다 던진 야삽에 오야붕이 맞아 버린겁니다. 역시 덩치가 너무 큰 탓이였겠지요. '끼야-' 하는 괴성이 온 부대에 메아리쳤습니다. 최병장은 꿈틀꿈틀거리는 오야붕을 질질 끌고 취사반으로 돌아왔습니다.

"야, 폐유 치웠냐?"

"아뇨, 지금 치우려고 하는 중입니다만."

"거기 불 올려라."

"예?"

"이 *X끼가 사람 말을 X구멍으로 쳐먹나? 불 올리라고!"

까라면 까야지 별 수 있습니까? 저와 동기 녀석은 폐유를 모아둔 드럼통에 불을 지폈습니다. 화력을 만땅으로 한 덕분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름에 방울이 보글보글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피를 흘리는 오야붕을 발로 지긋하게 밟고 있던 최병장에게 불 다 올렸다고 보고했습니다.

"이 X발 오야붕**. 미물 주제에 나를 엿먹여? 너도 오늘 한번 X 먹어 봐라."

...설마 했는데 최병장, 끓는 기름에 오야붕을 던져 넣어 버렸습니다 -_-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우와아. 그 소리 죽을 때 까지 못 잊을 겁니다; 눈 앞에서 자식이 참혹하게 죽는 모습을 본 어머니가 낼 만한 소리랄까요? 듣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쫘악 돋았습니다.

"최병장님 이건 좀;"

"좀 뭐 이 *X끼야!"

상병 한명이 최병장에게 한마디 하다가 욕만 얻어 먹었습니다. 한 20초 정도 지났을까요? 드디어 그 괴성이 그쳤습니다. 대신 취사반 안에 구역질 나는 튀김 냄새가 가득찼습니다.

"이거 얼른 치우고, 빨랑 밥 준비해. 뭐 쳐다보고 있냐 이 X만한 **들아?"

결국 짬이 제일 안된다는 이유로 저와 제 동기가 오야붕의 시체를 치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우리 두명은, 하루종일 밥을 먹지 못했습니다. 이등병 주제에 밥 거른다고 맞기도 많이 맞았지만 도저히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의 일입니다.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서 막 눈을 붙이려는데, 누군가 와서 저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이병 이! X! X!"

"조용히 안 해 이 *X야?"

누군가 했더니 최병장이였습니다. 이 X발놈이 왠일인가 싶어 쳐다봤더니 자기랑 같이 취사반에 좀 가잡니다. 일직을 서고 있던 통제관님이 야식을 만들어 오라고 했다는군요.

"씨X. 내 짬에 야식이나 만들어야 되고. 군생활 참 X같네."

...어쩌겠수? 야식 바친 덕분에 영창도 한번 안 갔잖아? 안 그랬으면 군생활 한달은 족히 늘었을 걸?

"그런데 저는 왜..."

말도 마치기 전에 콰앙- 하고 주먹으로 한대 얻어 맞았습니다.

"이 X새가. 그럼 나 혼자 가서 준비 하랴?"

"...예."

그냥 한대 후려치고 영창에나 다녀올까 순간 생각했었습니다만, 얼마전에 사고를 한 번 친 적 있어서 참기로 했습니다. 삼두멸각이면 불도 얼음이나니. 삼두멸각이면 불도 얼음이나니. 마음을 진정 시키고 최병장과 함께 취사반으로 향했습니다.

취사반 문을 막 따려는 데, 취사반 안쪽에서 뭔가 묘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최병장님. 이거 무슨 소립니까?"

애기가 울어대는 소리와 여자가 목 졸릴때 내는 소리를 반반 나누면 이런 소리랄까요? 귀를 기울여야 겨우 들리는 희미한 소리였습니다만, 듣는 순간 소름이 온몸에 돋아났습니다.

"고양이 발정난 소리 아냐? 암고양이라도 X먹고 있는가 **."

최병장은 케헤헤 웃으며 취사반의 문을 열어 젖혔습니다. 그 순간이였습니다.

저는 봤습니다. 어둠속에서 빛나는 수백개의 눈을.

저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 했습니다. 최병장은 '우와악-' 하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비명을 지르고 싶은 걸 꾹 참고, 일단 형광등 부터 켰습니다.

새벽에 오야붕을 죽인 폐유 수거용 드럼통 주변에, 수백마리는 되어 보이는 고양이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부대 주변에 있는 고양이란 고양이는 죄다 모인 듯 하더군요. 아까 들은 기묘한 소리는 이 녀석들이 내는 소리였습니다.

고양이들은 나를 흘끗 바라보더니, 별 흥미 없다는 듯 곧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최병장을 바라보더군요. 그 순간 모든 소리가 멈췄습니다.

모든 고양이들이 꼼짝도 않고 최병장을 노려봤습니다. 그 많은 고양이들 모두가. 한마리도 빠짐없이. 아무런 소리도 없이.

저는 그 눈에서 분명 증오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고양이들은 흩어져 밤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최병장은 그날밤 이후 삼일간 내리 앓아 누웠습니다.

제가 일병 달때 제대했던 최병장은 제가 상병 2호병이였던 99년 10월, 가스폭발사고로 사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