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정마법사가 왕실지하감옥에서 테네즈와 마주하고 있을 무렵.
왕성내부에서는 분주한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짧은 사이 악령에 의해 타고르마을은 진입조차 할 수 없을정도로 황폐화되었고,
마인마을을 기점으로 죽음의마을과 카스마늄광산의 몬스터가 날뛰기 시작했다.
보고를 받은 슬레이터왕은 탁자를 내리치며 외쳤다.
" 상세하게 보고해보시오. 도대체 몬스터들이 어떻게 되었단 것이오? "
지크프리트장군은 진땀을 흘리며, 침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죽음의마을 던전의 몬스터와 카스마늄광산의 몬스터들이 이상합니다.
목격된 바에 의하면 이전보다 더 흉측한 모습으로 마을까지 침공해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는 제보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사옵니다. "
그 말을 들은 슬레이터왕은 고개를 숙이고 무거워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이해할 수가 없군. 이 것도 왕실조사단이 목격한 타고르마을의 악령의 짓이라는 건가? "
그 때 왕실조사단의 인원이었던 밀레스교회의 리시나가 급하게 회의실로 들어왔다.
왕이 있는 곳에 갑자기 들어온 것은 다소 궁정예법에 어긋난 무례한 행동이었으나,
상황이 상황인만큼 슬레이터왕은 그것에 대해서 묵인하였다.
" 전하. 마인마을에 침공했던 몬스터의 사체를 확인한 결과 타고르마을의 악령과
같은 성질의 힘이 깃든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
그 말에 주위에 있던 모든 인물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우려했던 것이 사실로 확인되었군. "
왕은 잠시 고민하다 결단을 내린 듯 고개를 들며 근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지크프리트 장군은 당장 군사들을 편성하여 각 마을에 배치하시오. 밀레스 교회의 리시나는
당장 주교께 아 사실을 전하여 이아님께 자문을 구할 수 있도록 하라. "
" 예! 전하. "
그의 명령에 지명된 인물들은 급하게 회의실을 나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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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지하감옥 최심층.
궁정마법사는 떨려오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되물었다.
" 당신을 풀어주면 그 악령을 직접 상대하시겠다는 건가요..? "
" 그렇다. 너희들 중에 가장 뛰어난 마법사가 와도 그 계집의 발끝에도 못미칠것이니라. "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최상위권 수준의 마법사인 자신과 고위성직자인 리시나가 있었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
당시에, 자신이 어둠의 마나를 개방하여 각성했다하더라도 이길수는 없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눈앞에 있는 사내를 쉽게 풀어줄순 없었다.
그는 한 때, 뮤레칸을 등에업고 모든 악의 정점에 올라섰던 자였다.
정복왕루딘이 테네즈를 이길수 있었던건 그보다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신들의 은총을 휘감은 채 그와 싸운 덕분이었다.
물론 그 싸움에서도 테네즈를 압도한 것이 아니라 호각으로 싸우다 끝내
간신히 승리를 얻어낸 것이었다.
그러나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테네즈는 죽지 않았지만 루딘은 병세를 얻어 요절하지 않았던가.
그를 풀어줘서 그 악령을 없애버린다해도, 그의 존재 자체가 또 다른 재앙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 당신을 풀어주는 것은 저 혼자 결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 . "
그 말에 테네즈의 표정이 더욱 더 일그러졌다.
" 당신이 그 악령을 없애준다해도 당신 자체가 또 다른 악이 될 것 아닌가요? "
잠시 궁정마법사를 노려보던 테네즈는 이윽고 표정을 풀고 웃기 시작했다.
" 크흐흐. 생각보다 똑똑하진 않구나 마법사여. 깊은 던전에 가면 마물들이 즐비하지? "
" 그게 지금 중요한가요? "
" 멍청한 것. 너희들이 두려워하는 그것들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른다는게냐? "
궁정마법사는 그 말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긴 늘 의문이었던 점이었다.
마물들이 마을을 침공하지 않고 각자의 영역에 있었기때문에 그 의문은 금방 사그라들었지만,
애초에 루딘과 대전쟁에서 테네즈가 패배함으로서 모두 사라져야했을 몬스터들이었기 때문이다.
" 내가 이렇게 갇혀있어도 나의 수하들은 전혀 그 세력이 줄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 "
" . . . "
테네즈는 비릿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 그 녀석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뮤레칸님의 권능을 얻은 오직 나만이
그들을 통제할 수 있단말이다. "
그의 말에 틀린 사실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결정할 수 없는 이유는,
" 풀어주면 또 다시 세상을 지배하려 들것입니까? "
" 큭큭큭. 멍청하기는 그건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닌것이니라. 내가 당장 나간다하더라도
크게 바뀔 것은 없으니 쓸데없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느니라. "
" . . . . "
궁정마법사는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입을 열었다.
" 그렇다해도 역시 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당신의 말씀을 참고로
왕실소집회의를 통해 결정하겠습니다. "
그녀는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춰보이곤, 뒤로 돌아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멀어져 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녀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던 테네즈가 미소를 지으며
작게 속삭였다.
" 넌 곧 나와 다시 마주하게 되어있느니라. 크하하하하! "
.
.
.
마인마을 중심부.
마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살육의 현장이 펼쳐졌다.
" 저기 내려오는 좀비부대막아! "
" 안됩니다. 대장! 동쪽에서 오는 드라코를 상대할 자가 모자랍니다! "
" 이런 젠장..! 내가 직접 가겠다. "
대장이라고 불린 골든플레이트를 걸친 기사는 그대로 동쪽으로 향해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렘린들과 함께 거대한 드라코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저런 괴물이.. "
그 모습은 광산에서 통상적으로 볼 수 있는 드라코의 모습과 확연하게 차이가 났는데,
날개는 군데군데 찢겨져 나가있었으며, 온 몸 역시 흉측하게 생긴 검은 흉터들로 가득했다.
크르르르르 -
평소엔 불을 내뿜기마련이건만, 입에서는 검은색의 알 수 없는 연기만 끊임없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골든플레이트를 입은 기사는 이미 마스터의 수준에 이른 자였다.
그런 자에게 드라코정도는 해볼만한 상대였다.
" 매드소울로 한방에 잠재워주마. "
기세 좋게 달려나가 드라코앞에서 높이 도약한 기사는 그대로 아스카론을 내려치며,
매드소울을 시전하였다.
파 앗 -
눈부신 빛무리가 새어나가며 작렬했다.
- ! !
" 이..이럴수가 "
정통으로 직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코는 큰 타격을 받지 않은 듯 기사 앞에 굳건히 서있었다.
그리고 이내 거대한 앞발이 들어올려져 기사를 덮쳤고, 그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그들을 지휘하던 대장이 죽고말자 병력은 더욱 더 혼비백산이 되었다.
그 때 건물의 지붕위에서 걸터앉아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 사내는
천천히 일어서며 낮게 읊조렸다.
" 3 "
" 2 "
" 1 "
고개를 숙인 채, 선 자세로 숫자를 읊던 그는 희미하게나마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 대상은?! "
콰 콰 콰 콰 쾅 -
말을 마친 사내의 몸에서 일순간 엄청난 기운이 뻗어져나가나 싶더니,
기사를 죽인 드라코에게 직격되었고 복부에 커다랗게 구멍이 나버린 드라코는
그대로 쓰러지며 숨을 거뒀다.
" 이야, 이게 얼마만에 사용해보는 다라밀공이야 히히히. "
그 때, 사내가 있는 건물 밑에서 눈에 거추장스러운 그렘린들을 베고 있는 여전사가 크게 외쳤다.
" 야! 너 위에서 편하게만 있지말고 내려와서 이 녀석들 좀 상대해! "
그러나 상대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내는 그자리에 누워 빈정거리듯 외쳤다.
" 몰라! 나 다라밀공 써버려서 이제 아무런 힘도 남아있지 않은걸? "
" 이런 빌어먹을 자식! "
거칠게 욕설을 내뱉은 여전사는 자신의 몸집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헬피닉스크로어를 휘두르며 외쳤다.
" 다 뒈져버려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