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이유로 광폭해진 몬스터가 마을 침공을 시작하게 되었고,
왕실의 병력만으로는 막아낼 수 없었다.
다행인 것은 마을이 몬스터에게 점령당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각 성의 길드에서 나서기 시작했고,
그들이 몬스터와 격돌하여 일부 마을만 점령당하는 것으로, 위급한 상황은 간신히 모면했다.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세력의 길드가 나섰어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만큼 악령에 잠식당한듯한 몬스터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했던 것이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결국 왕실에서는 '테네즈'라는 카드를 쓰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왕실 내부에선 한창 회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 마인 마을은 이미 점령당한 지 오래고, 점점 세력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
상황을 설명하는 지크프리트 장군의 말을 듣고, 슬레이터는 인상을 쓰며 입을 열었다.
" 타고르 마을의 상황은 어떻소? "
타고르라는 말이 나오자, 모두의 얼굴에 근심이 서렸다.
이 일의 시초가 된 곳으로 현재로서는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 아시다시피.. 현재 접근이 불가하므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하. "
" 답답하군. "
장내는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지고,
이윽고 슬레이터는 결심한 듯 무거운 목소리로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 좋소. 내 악의 힘을 빌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대로 모든 마을이 파괴되는 것은 지켜볼 수 없소.
궁정 마법사가 제안한 대로 봉인된 테네즈를 풀어주고 그를 전면에 나서게 하겠소. "
아주 파격적인 발언에 순식간에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 전하 . . "
크게 당황한 지크프리트 장군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슬레이터가 손을 들고 말을 이었다.
" 그 전에! 내 이대로 검왕을 잃을 순 없소. 그러니 마지막으로 하벨의 구출을 시도해 보고 싶소. "
말을 이어가는 슬레이터의 목소리는 격해져 다색의 감정이 묻어있었다.
그만큼 하벨은 그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신뢰를 하고 있던 소중한 부하였던 것이다.
슬레이터의 말이 끝나고 궁정 마법사가 앞으로 나서 말을 이었다.
" 전하. 마침 밀레스 마을의 란셀 주교로부터 전갈이 있사옵니다. "
슬레이터는 사실 이전부터 하벨의 구출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만, 뾰족한 방법이 없어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어서 성스러운 밀레스 교회에 자문을 구하던
참이었다.
이윽고 란셀 주교로부터 작전에 사용할 아이템들이 도착했다.
왕실 내부 회의실에 도착한 리시나는 슬레이터에게 예를 갖춰 보이곤 아이템을 꺼내 보였다.
" 지난번에 사용했던 고대 아이템과는 격이 다른 것으로 이것은 이아님의 권능이 담긴 목걸이입니다.
이 목걸이를 착용한 자는 어떠한 악의 힘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
과연 리시나의 손에서 빛이 나는 목걸이는 한눈에 봐도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였다.
리시나는 목걸이를 단상에 내려놓고,
옆에 놓인 고풍스러운 장식의 팔찌를 들어 보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 그리고 이 팔찌를 착용하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착용한 자는 저희와 실시간으로 통신할 수 있습니다. "
그 말에 슬레이터가 반문했다.
" 그 악령이 있는 타고르 마을 교회에서도 말이오? "
" 물론입니다. 저희는 이아님께 이 심각한 상황을 전해드렸고,
아이템들은 모두 직접 내어주신 것입니다. "
그동안 검토되어왔던 작전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먼저 최고 수준에 오른 마스터 도적이 타고르 마을의 교회로 침투한다.
그리고 고대 아이템을 통해 고위성직자와 실시간으로 통신하여 하벨의 위치를 찾아낸다.
그와 마주치면 준비한 성스러운 목걸이를 하벨의 목에 채우는 것이었다.
꽤나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성공률이 희박한 작전이었다.
우선 작전을 수행하는 자가 악령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로 아주 뛰어난 도적이어야 하는 점.
그리고 악령에 잠식된 하벨과 맞서 목걸이를 걸게 할 정도로 강해야 했다.
그 때 궁정 마법사가 앞으로 나서 작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 이미 아실만한 분은 아시겠지만요. 이번 작전의 수행자는 도적 길드 마스터 리체의 동생인
루체입니다. "
도적 길드 마스터인 리체.
그는 전의 왕실조사단 임무에서 악령에게 지배된 하벨의 칼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
그가 사망하자 도적 길드는 아주 혼란스러워졌는데, 그것을 바로 잡은 자가 그의 동생인 루체였다.
사실 왕실에서는 그를 작전수행자로 내세우는 것에 대해서 꺼려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미 큰 사건으로 인해 범죄를 일으켰던 범법자였기 때문이었다.
범법자로 낙인이 찍힌 순간 마이소시아 순위 랭크에 정식으로 등록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선택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비공식 암흑 투사 대전에서 세번 이나 연속으로 우승한 엄청난 실력자였기 때문이다.
세간에서는 이미 비공식적으로는 도적에서 만큼은 루체보다 강한 자가 없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루체를 포섭하는 일은 순조로웠다.
그의 친형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루체는 자신이 직접 작전을 수행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결정되었고, 일주일 후 작전을 수행하는 것으로 왕실 회의는 종료되었다.
타고르 마을의 교회.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있었고, 잿빛으로 물들인 건물은 불길한 기운을 잔뜩 집어삼킨 듯하였다.
교회의 뒤쪽으로 조심스레 접근해온 루체는 리시나로부터 건네받은 팔찌에 무어라 주문을 외웠고,
미세하게 빛이 나는가 싶더니 곧 리시나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루체님?! ]
루체는 얼굴을 반쯤 검은색 복면을 내리지 않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 도착했다. "
[ 무사히 도착하셨군요. ]
오는 동안 강력한 마물들과 마주쳤지만, 그에게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 뭐 전투 없이 이곳에 도착했으니 일단은 성공이랄까 "
[ 예정된 날짜와 시간에 정확히 도착하시다니, 역시 루체님이십니다. ]
돌발행동을 할지도 모르는 루체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라는 왕실의 조언에 따라,
리시나는 약간의 아부성이 들어 있는 멘트로 그를 치켜세워 주었다.
그러나 메마른듯한 싸늘한 목소리만 되돌아왔다.
" 오래 있어 봐야 좋을건 없으니 1시간 후 작전을 시작하겠다. 왕에게 전하도록 "
[ 알겠습니다. 루체님. ]
그렇게 하벨 구출 작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