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중인. 01 - 매일 아침, 검을 든다
견습기사 로이드의 기록
1부. 영웅의 그림자
2부. 검과 의무
3부.
루어스의 여름은 훈련장의 먼지와 함께 찾아왔다.
쇳소리가 울리는 아침이면 지그프리트 단장은 이미 그곳에 서있었다.
새벽이슬을 밟으며 다가가면, 그는 언제나 같은 자세로 검을 들고 있었다.
"오늘도 기본 동작이다."
단장의 말에 기사들 사이로 한숨이 흘렀다. 마르크는 내 옆에서 투덜거렸다.
"또 기본동작이라니. 도대체 언제쯤 검술의 진수를..."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그프리트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바람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순간적으로 시야가 흐려졌을 뿐인데, 마르크의 검은 이미 땅에 떨어져 있었다.
"진수라는 게 말이다." 단장이 미소 지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이제는 알고 있다. 매일 반복되는 기본자세 속에 숨은 의미를.
폭풍우 치던 밤, 그가 보여준 완벽한 균형은 이 지루한 반복에서 태어났으니까.
"또 졌어." 훈련이 끝난 뒤 마르크가 한숨 쉬었다.
"넌 어때, 로이드? 단장님의 검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겠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뭔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화려하지 않은 움직임 속에 숨은 절대적인 무언가가.
-
어느 날, 야간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지그프리트가 홀로 서재에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촛불 아래서 무엇을 열중하며 읽고 있었다. 과거 영웅들의 전투 기록이었다.
"들어오게."
숨어있던 내가 당황해 문간에 서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이건 비밀이네만... 나도 매일 밤 이걸 읽어.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잊지 않기 위해서."
그의 책상 위에는 닳은 양피지들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빛바랜 전투 기록과 오래된 약도들.
루어스의 과거가, 우리가 지켜내야 할 현재가 거기 있었다.
"예전에... 내 스승께서 말씀하셨지."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진정한 검술은 상대를 베는 법이 아니라,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법을 배우는 거라고."
창밖으로 루어스의 불빛들이 반짝였다.
평화로운 도시의 밤. 그 불빛 하나하나가 우리가 지켜내야 할 것들이었다.
"전설이 되는 건 중요하지 않다." 그가 양피지를 매만지며 말했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우리가 설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하는 것. 그것만이 중요하지."
-
다음 날, 훈련장의 새벽은 평소와 달랐다.
지그프리트의 검이 그리는 궤적이 달라 보였다.
단순한 반복이 아닌, 수백 년의 시간이 응축된 움직임이었다.
"자네들에게 전할 것이 있다."
그가 검을 들어 올렸다. 스무 명의 기사들이 숨을 죽였다.
"이건 '매드소울'이라는 검술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우리의 의무를 다하기에 충분한."
그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이번에는 달랐다.
움직임은 여전히 단순했지만, 그 안에서 무언가가 울렸다. 영혼의 진동 같은 것이.
"매드소울은 그간 보아온 검술이 아닐 것이다." 그가 말을 이었다.
"우리의 영혼을 검에 실어,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의지. 그것이 매드소울이지."
하나둘, 기사들이 검을 들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검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느껴지나?" 마르크가 속삭였다.
"뭔가... 검이 무겁지 않아?"
그랬다. 검은 분명 같은 무게였지만, 다르게 느껴졌다.
마치 루딘왕을 지키던 기사들의 의지가 깃든 것처럼.
-
밤이 깊어갔다.
달빛 아래서도 훈련은 계속됐다. 지그프리트는 한 명 한 명의 자세를 바로잡아주었다.
그의 손길에는 질책이 아닌, 이해가 담겨있었다.
"자네도 느꼈겠지." 훈련이 끝날 무렵, 그가 내게 말했다.
"매드소울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야.
확실히... 우리의 의무를 다하기 위한 의지. 그것을 검에 담는 법을 배우는 거지."
툭- 하고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 검에서 땀방울이 떨어진 것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떨어진 것일까.
"이제 시작이다." 지그프리트가 말했다.
"진정한 기사의 길은, 이렇게 시작되는 거야."
우리는 검을 들었다.
이것이 우리의 자리였다. 전설이 아닌, 현재를 지키는 기사로서.
달빛이 훈련장을 비추었다.
스무 자루의 검이 같은 곳을 향해 움직였다. 화려하지 않은 움직임.
하지만 그 안에는 루어스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전설은 필요 없었다. 우리에겐 지켜야 할 현재가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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