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중인. 01 - 매일 아침, 검을 든다
견습기사 로이드의 기록
1부. 영웅의 그림자
2부. 검과 의무
3부. 새벽의 기사
서리가 내린 새벽,
훈련장의 적막을 깨고 이단심문관들이 들어섰다.
그들의 까만 망토자락이 흰 서리를 쓸었다. 열 명의 심문관과 그들을 에워싼 근위기사들.
"오늘은 훈련을 멈추게."
지그프리트가 검을 내렸다. 그의 목소리에 평소와 다른 무게가 실렸다.
심문관들은 어젯밤 도착했다고 했다.
루어스 교단이 보낸 그들은 기사단의 수련법을 조사하러 왔다 했다.
'이단적 기풍'을 단속한다는 명목이었다.
"매드소울." 수석심문관이 내뱉었다.
"그게 정통 기사도와 어긋나지 않는다고 보시나?"
지그프리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검을 땅에 꽂고 무릎을 꿇었다.
우리도 그를 따라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그의 손이 검 손잡이를 놓지 않는 것을.
"기사도는 신성한 것." 심문관이 말을 이었다.
"영혼을 검에 깃들게 한다? 그런 이단적 수련법으로는..."
"심문관님." 지그프리트가 끊었다.
"검술은 이단이 될 수 없습니다. 칼을 쥐는 방법일 뿐."
"하지만 영혼을..."
"영혼이라..." 지그프리트가 미소 지었다.
"그저 이름일 뿐입니다. 우리가 매드소울이라 부르는 건,
의무에 대한 절대적 충실함. 그것뿐입니다."
공기가 얼어붙었다. 근위기사들의 손이 칼자루로 향했다.
"증명해 보이시지."
심문관의 말에 지그프리트가 천천히 일어섰다.
"검은 증명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지키는 도구죠."
순간 근위기사 하나가 검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지그프리트는 움직이지 않았다.
"치욕을 참을 수 없다면, " 심문관이 말했다.
"여기서 끝내도..."
"치욕이라..." 지그프리트의 눈에 깊은 피로가 어렸다.
"기사에게 치욕이란,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가 검을 뽑았다. 하지만 그것은 공격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검을 심문관 앞에 바쳤다.
"이것이 우리의 검입니다. 화려하지도, 강하지도 않습니다.
... 우리의 자리를 지키는 법을 배우는 것뿐."
심문관이 그 검을 집어 들었다. 순간,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 검에서... 무엇인가가..."
"느껴지십니까?" 지그프리트가 물었다.
"수천 번의 반복이 만든 무게일 뿐입니다. 영혼이라 부르기엔 너무나 소박한..."
심문관의 손이 떨렸다. 그는 검을 돌려주었다.
"… 믿겠소."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그들은 떠났다.
-
그날 밤, 지그프리트는 우리를 서재로 불렀다.
책상 위에는 낡은 양피지가 펼쳐져 있었다.
"이게 뭔지 아는가?"
우리는 고개를 저었다.
"첫 기사단의… 그렇지. 루딘왕과 기사들의 서약문이다."
'우리의 검은 베기 위함이 아니라, 지키기 위함이다.'
촛불이 깜빡였다. 양피지의 글자들이 일렁였다.
"심문관들이 두려워하는 건, "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우리가 이단이어서가 아니다. 우리가... 너무 단순하기 때문이지."
"단순하다는 게...?"
"화려한 전설도, 숭고한 이념도 없이... 그저 우리의 자리를 지키려 하니까.
그들은 그게 두려운 거야. 전설이 없는 기사들이,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창밖으로 루어스의 불빛이 반짝였다.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작은 불빛들.
"로이드." 지그프리트가 나를 불렀다.
"자네도 이제 알겠지? 우리가 왜 매일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알 것 같았다.
매드소울은 검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서약이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겠다는.
-
다음 날 아침,
훈련장에는 서리 대신 첫눈이 내렸다. 스무 자루의 검이 눈발 속에서 같은 동작을 그렸다.
그즈음 우리는 느끼고 있었다.. 전설이 될 필요도, 영웅이 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검을 드는 것. 그것이 진정한 기사의 길이었다.
"흐트러지지 마라."
지그프리트의 목소리가 눈발 속에 스며들었다.
나는 검을 들었다.
이제 더 이상 그 무게를 재려 하지 않았다.
-
몇 번째인지 모를 밤의 순찰을 서는 동안,
루어스의 불빛들이 하나둘 꺼져갔다.
지그프리트는 여전히 성벽 위를 걸었다.
달도 없는 밤이었다.
내 발걸음이 그의 뒤를 따랐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어둠 속에서도 그의 걸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누군가의 창가에서 희미한 촛불이 일렁였다.
그 빛이 지그프리트의 검신에 스쳤다가 사라졌다.
"로이드."
"네."
"따라오지 말게.."
그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자네의 자리에서, 자네만의 걸음을 걸어야 하네."
나는 단장을 바라보았다. 그의 발소리가 어둠 속으로 멀어졌다.
창가의 촛불이 꺼졌다.
To.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당신에게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