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게임실행 및 홈페이지 이용을 위해 로그인 해주세요.

시인의 마을 세오
무제
746 2025.01.23. 05:09








세오 222년 3월 16일 10시

5일 42분 만에 어둠으로.


2001년에 만들어진 착한제국 케릭터에 접속하는 일은 5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원하면 언제든 편지함에서 지난 20년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죠.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게임의 대부분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지만,

어둠의전설과 착한제국 케릭터만큼은 여전히 제 손이 닿는 거리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님을 잘 아는데요.


제가 1년을 쉬던, 2년을 쉬던 마이소시아엔 누군가가 접속해 있습니다.

그 유저들이 게임을 지키며 또 다른 유저가 돌아올 시간을 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죠.

그 안에서 내 존재를 확인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달라진게 있다면

이제는 나를 반겨주는 사람도, 더 이상 갈 장소도 없다는 것이겠죠.



-



저는 커뮤니티의 즐거움을 뤼케시온에서 처음 느꼈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왜 온라인 게임이 즐거운가? 라는 물음에

근본적인 답을 느낀 시기이기도 합니다.



NPC와 다르게 옆에 있는 유저들은 내 말과 행동을 기억해 주었습니다.

슬플 땐 같이 울어주고, 기쁜 일이 있을 땐 그 즐거움을 나눌 수 있었죠.

지금처럼 서로에 대한 경계심이 크지 않았던..

온라인 게임의 황금기엔 더욱 그랬습니다.



접속하면 반겨주는 이가 있고

접속하면 당장 뛰어갈 장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엔 근본적으로 나와 같은 게임을 즐기는.

비슷한 환경에 놓인 '사람'이 있었어요.


뤼케시온에 정착하는 유저들은 대부분 정액비를 감당할 수 없어

케릭터를 육성할 수 없는.. 어린 유저라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어둠의 매력에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던 꼬맹이들.


그 동질감은 우리를 더 끈끈하게 만들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이 게임을 계속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게임을 비판할 겨를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게임에 접속해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고

그들과 함께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을 뿐

Role-Playing Game의 취지에 가장 적합한 플레이를 하고 있지 않았나 싶네요.



-



시간이 흘러 두번째 기억은 호러캐슬의 비승 유저들인데요.

그때만해도 공통점이 있을 거라곤 생각치 못했는데

지나고 보니 뤼케시온과 별반 다르지 않았더라구요.


비승을 하는 유저들은 대부분 텔깃을 꾸준히 구매하기 어려운

20대 초반의 라이트 유저들이 많았거든요.

자연스럽게 비슷한 처지에 놓인 유저들이 모여 커뮤니티가 만들어 진 것이죠.


따로 연락하지 않더라도, [호러캐슬]이라는 공통된 장소가 있었고

그곳에 가면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릴때는 초성 이벤트가 너무 즐겁다고 생각했고

한때는 비승 문화가 그립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어요.

초성 이벤트라서 즐거웠던 게 아니고 비승이 재미있었던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

그리고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커뮤니티.

그것이 저를 이 게임에 빠져들게 했고, 추억 대부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결국 게임이 아니라 사람이었어요.

나와 비슷한 환경에 있는, 함께 울고 웃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있었기에 저는 아직까지도 어둠의전설을 그리워할 수 있습니다.




-



저는 오늘도 게임에 접속했지만 달리 갈 장소가 없습니다.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 지금

당연히 게임에 머무를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되었죠.


저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유저분들이 이 과정을 겪고 계실 거에요.


변한 게임의 모습에 실망하신 분들도 많겠지만

의외로 그건 그렇게 중요치 않은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스스로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게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이제 어둠의전설에서 그런 관계를 다시 만들긴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예전과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가지기 힘들뿐더러

이제 타인과 마음을 터놓고 지낼 만큼 어리지도 않기 때문이에요.

시간적 여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도, 착한제국이란 케릭터에게도

한번쯤 그때와 같은 시간이 흐르길 바랍니다.



누군가와 함께하기 위해..

교복도 벗지 않은 채 어둠의 전설부터 키던 날들이

이 게임을 추억하고, 돌아오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에요.


비록 지금이 아니더라도..


먼 훗날 안식처로 생각하고 돌아올 수 있는 게임이기를.

그리고 그 시간이 올 때까지 꾸준하게 자리를 지켜주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