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검은색 덩어리로 채워진 무언가에 손을 담그고 있다.
" 어머니, 손이 너무 아파요. "
" 여기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요. "
" 불에 타는거 같아요. "
결국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졌고 대다수의 아이들이 잠깐의 시간도 버티지 못하였다.
그것은 죽은지 한달이 지난 몬스터의 속에서 꺼낸 부패물이었다.
아직 여린 살갗에 독기로 가득찬 것이 닿아 진물을 내고 상처를 주었던 것이다.
" 실망스럽군요. 여러분들은 언젠가 잿빛을 손에 담는 그릇이 되야하거늘, 이런 작은 아픔조차 참아내지 못하다니. "
성인도 버티기 힘든 고통이었지만, 한 아이만이 십여분이 지난 시점까지도 손을 담그고 있었다.
검은색 머리칼의 여자아이는 그저 익숙하다는 듯, 표정없이 있을 뿐이었다.
죽은 눈동자.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자 어머니라고 불린 자의 입가가 미소로 번진다.
" 모두 록사나를 보세요. 여러분들은 언젠가 서로 싸우고 싸워서 선택된 한 자리만을 차지해야 합니다. "
그러나 아이들의 시선은 경외감이 아닌, 두려움과 혐오였다.
록사나라고 불린 아이에게 다가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음날 새벽,
누구보다 일찍 눈을 뜬 록사나는 숲속으로 발걸음을 향하였다.
혼자여도 이 순간만큼은 방해받지않고 자유로움을 느낄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숲속을 찾은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 록사나, 괜찮아? "
하늘색 머리의 언제나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아이.
그녀의 이름은 엘레인.
많은 상처와 독기 탓에 검은색으로 물든 록사나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 상태를 확인한다.
" 넌 내게 왜 이렇게 상냥하게 대해주니? "
그러자 엘레인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하였다.
" 우리는 가족이고,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잖아. "
거짓말.
애초에 나를 좋아해주는 이는 없었다.
고아끼리 모인 이 곳에서조차 나는 늘 혼자였으니까.
" 다른 아이들은 무섭다며 나를 피하던데. "
솔직한 마음을 내비쳤으나 되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 나는 그러고 싶지 않은걸? "
손을 내민 관계의 시작에서도 어두운 아이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래, 어차피 언젠가 우리는 서로를 해칠 운명이니까.
" 언젠가 서로 죽이려고 해도? "
그녀는 대답대신 미소를 짓더니, 무어라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은 빛망울이 록사나의 손에 맺히여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 이건 쿠로라고 해. "
" 백마법은 사용하면 안돼. "
"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마음이 편안해지고 다른 사람을 치료해줄 수 있는걸? "
엘레인, 그녀는 어둠으로 얼룩진 이곳에서 유일하게 밝게 빛나는 별이었다.
그 뒤로 록사나와 엘레인은 항상 함께하였다.
하루의 시간을 대부분 고통스럽고 혹독한 훈련으로 보냈지만, 잠깐의 시간을 틈타
나무에서 떨어진 같이 열매를 줍기도 하고,
풀 숲에서 만난 작은 팜팻과 놀기도 하였다.
그런 소소한 잠깐의 행복들이 이 지옥같은 일상에서 버틸수 있는 유일한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열여덟이 된 겨울 밤, 오지 않기를 바랬던 그 날은 결국 찾아오고 말았다.
" 결전의 날이 왔군요. 그동안 여러분들의 어머니로서 많은 것들을 가르쳤습니다. "
광기에 찬 눈빛.
지금까지 우리를 키워주었던 사람이라곤 믿을수 없을만큼 고양되어 보였다.
" 자, 그럼 지금부터 배운 것들을 통해 서로를 죽여주세요. "
잔인한 행렬이었다.
부모없는 아픔을 겪고, 같이 성장했던 우리들은 지금, 서로를 향해 죽음의 칼날을 겨누고 있다.
오직 가장 위에 있는 단 한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처음에 머뭇거렸던 아이들도 다가왔다.
해치지 않으려 하였으나 버티는 것도 한계였다.
그렇게 한명, 두명, 가여운 생명들을 거두기 시작했다.
괜찮다고 합리화를 해보기도 하였다.
이 녀석들은 어차피 나를 싫어하고 혐오했던 아이들이니까.
그러면서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누구보다 소중했던, 그녀마저 칼날을 겨눈다면 나는 어찌해야하지?
' 엘레인, 너도 내게 그럴거니? '
마음속으로 나지막하게 내뱉은 말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덮쳐오는게 느껴졌고, 반사적으로 공격마법을 시전하였다.
발사된 마법체는 접근하려던 자의 뱃가죽을 뚫고 튀어나갔다.
" 미안, 어머니의 명령을 거부할 수가 없었어.. "
익숙한 음성.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연 그곳에선 뜨거운 선혈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너는 훌륭한 사도가 될 수 있을거야. "
죽어가면서도 내내 보여줬던 그 미소를 잃지 않았다.
엘레인.
나의 둘도 없는 친구가, 나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무언가 뚝 끊겨버렸다.
소리가 나지 않았음에도 느낄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밝게 빛났던 유일한 별은 저물어 사라져간다.
모든 것을 전부 잃었으니,
이제는 그냥 죽어버려도 상관없지 않을까?
슬픔에서 공허로 비워낸 마음속이 강렬한 감정의 불꽃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불꽃은 마침내 복수라는 가장 강력한 검을 벼뤄내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타오르는 마음으로 내딛은 발걸음은 순식간에 우리들의 어머니에게로 향했다.
" 하하하, 다 끝난 마당에 이제와서 뭘하고 싶은 거죠? "
한참이나 웃어대던 그녀는 집어든 칼로 주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 주위를 둘러보세요. 피로 가득찬 이 곳을, 모두 당신의 작품입니다. "
그녀의 말대로 고아원이자, 낡은 교회였던 이 곳은 시체와 혈흔으로 가득찬 지옥이었다.
눈물 한줄기가 록사나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 아직도 감정이라는 허울에 휘둘리다니 한심하군요. 테네즈님의 사도가 될 당신은 보다 완벽해져야 합니다. "
" 개소리 집어치워! "
마나를 담아 마법을 쏘아보낸다.
원흉이었던 상대를 눈앞에서 찢어버리고 싶었으나,
어머니라고 불렸던 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모두를 압도할만큼 강력했다.
" 마지막 숙제가 되겠군요. 마음을 비워내세요. "
그러자, 무언가의 주문을 외운 그녀는 어떤 인영을 소환하고야 말았다.
소모니아.
몬스터따위를 소환하는 마법으로 그녀는 방금 차갑게 식어간 엘레인을 불러내고야 말았다.
영혼을 잃은 채, 전방위로 내던진 시선과 마주친다.
나는,
나는...
지금 이 순간, 어둠 속에서 손을 내밀어줬던 너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게 없다.
절망감으로 차오르기 시작한다.
들고 있던 스태프를 떨어트렸다.
' 록사나, '
그 순간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목소리가 마음속으로 울려펴진다.
' 나중에 우리가 어른이 되서도, '
기억의 단편이 분산하여 머릿속을 가득채운다.
' 같이 팜팻을 보러 오기로 한거 잊으면 안돼. '
이제는 멈출수 없을만큼 흐르는 눈물과 함께 다시 한번 강렬한 분노가 내면으로부터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침내 그녀의 손에 작은 무언가를 피워낼 수 있게 해주었다.
잿빛의 불꽃.
록사나는 무엇인지 인지하지도 못한 채, 쏟아내듯 던져버렸다.
마치 거대한 천둥이라도 친 듯한 굉음이 울려펴지며,
잿빛의 마법진은 어머니라고 불렸던 자에게 강타하며, 그녀는 쓰러지고야 만다.
생명이 꺼져가는 와중에도 여전히 고양감에 물든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 축하합니다.. 드디어 해냈군요. "
응시하는 눈동자는 일말의 동정도 없을 뿐이다.
" 이것의 이름은? "
" 단일표적 최강의 흑마법, 세멜리아. "
최강의 흑마법?
겨우 이딴 것을 위해 우리는 지금까지.
그로부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같이 밥을 먹고 자랐던 그 곳에서,
서로를 목적과 명분도 없이 죽였던 그 곳에서,
며칠이 지나도록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그 때, 사악하고 강렬한 기운을 내뿜은 두명의 여성이 다가왔다.
" 시스터 루체를 죽인 녀석이로군. "
" 원래는 폐기처분이 마땅하나, 세멜리아를 피워냈으니 저 아이는.. "
로브를 걷어낸 여성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 마침 제 6사도의 자리가 공석이니 그 쪽이 좋겠군. "
타고르 마을의 쓰러져 가는 낡은 교회.
뮤레칸을 신봉하는 마크로 수놓아진 망토를 두른 검은 머리칼의 여인이,
혼자서 방황하는 아이에게 손을 내민다.
" 따라오거라, 내 너를 키워주마. "
다시는 이전의 실패가 반복되지 않게.
" 냉혹할지언정, 공정한 아버지가 되어. "